[임의진의 시골편지]까막눈 할매
[경향신문]
지붕은 검정 기와. 빨간색이면 장대비가 정조준할까봐 검은색. 뒤꼍에 바위들이 많아서 위장색깔. 동네엔 빨강 파랑 노랑 지붕들. 내 집보다 강우량이 더 많을 거야 분명.
“벽토로 지어 푸른색으로 문을 칠한 집들, 이슬람 사원의 뾰족탑, 사모바르 주전자에서 솟아오르는 김, 그리고 강가의 버드나무. 대마초 부스러기를 연상시키는 검은 구름 사이로 흘러나온 빛이 황새들이 부리를 딱딱거리며 둥지를 튼 평평한 지붕에 스며들었다. 중심가는 챙 달린 검은색 모자를 쓴 시아파와 챙이 없는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의 펠트 모자를 쓴 조로아스터교도들, 작달막한 키에 터번을 쓰고 쉰 목소리로 격론을 벌이길 즐기는 쿠르드족이 이방인들을 빤히 쳐다보는 웅덩이 같은 곳.” 사진가, 시인 니콜라 부비에의 여행기 <세상의 용도>를 읽다보면 이런 마을에 대한 색깔론(?)이 흥미롭다. 우리 마을도 ‘수많은 빛깔이 깃발로 모여’ 펄럭거린다.
오래전 할매가 대문 앞에서 내 이름을 물었다. 대문에 명패가 턱하니 붙어 있는데도 묻는 건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 앞이 캄캄하다고 해서 까막눈. 교회 있을 때도 앞이 캄캄한 할매들을 만났다. 나는 성경책을 자주 덮어버렸고, 같이 읽자고 청하지도 않았다. 그까짓 검은 글씨를 누구들은 성스럽게 모시지만 사람이 더 귀한 법. 사람의 자존심이 더 웅혼한 것이리라.
겨울엔 온통 희고 검었던 세상이 7월 타오름달, 울긋불긋 마치 화투짝 같구나. 마을회관은 피서지로 인기다. 전기세 무서운 에어컨도 솔솔 돌아간다. 죽마고우란 죽치고 마주앉아 고스톱을 치는 친구. 그 자리엔 백설공주도 꼭 한분씩 있는데, 백방으로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아리. 점당 십원짜리 화투가 아직도 펼쳐지는 곳. 까막눈 할매가 이맘쯤 경로당을 끊고, 고도리가 든 화투도 던져버리고, 세상을 등진 날. 우리집 깜장 차우차우 마오쩌순이가 며칠 곡기를 끊고 앓다가 노환으로 죽은 날. 새까만 털을 다시는 못 만지다니. 산밭에 개를 묻고 검은 기와를 하나 덮어주었다. 평안하라고 기와에 십자성호를 그어주었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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