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빌딩·주상복합이 죽은 상권 살릴 것"..세운상가 일대 '술렁'
호텔·상가 18층짜리 복합공간..12년 만에 아파트도 분양
"세운4구역 속도 내자 투자 문의 3배 늘어"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바로 옆에 들어선 1만평 규모(3만2224㎡)의 예지동 85번지 일대. 허름한 옛 골목길 사이로 귀금속 전문점과 전자부품 매장이 즐비한 이 구역(세운4구역)이 30여년 만에 재개발 사업에 본격 속도를 낸다는 소식에 주변 상권이 술렁이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43만9356㎡) 내 사업 속도가 빠른 세운3·6구역에서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에 주상복합아파트가 12년 만에 분양할 예정이라 주거 인프라 확충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이미 서울시가 ‘다시 세운 프로젝트’ 1단계 사업을 진행, 리모델링 전후로 세운상가 내 점포 몸값이 두 배가량 뛴 경험이 있어 벌써부터 재개발 주변지로 투자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최문규 종로상가부동산 중개사무소 대표는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 사업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세운4구역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다른 구역들도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최근 일주일 새 투자문의가 2~3배나 늘었다”며 “사업지 인근인 종로 3·4가 상가의 평균 임대료는 유동인구가 많은 인사동이나 종각역의 약 60~70% 수준인데, 대규모 업무지구와 호텔·주거시설 등이 들어서면 단시간 내 이를 따라잡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세운상가 일대는 1970~80년대 국내 전자·전기산업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번성했지만, 이후 용산구 등에 전자상가가 들어서고 강남 개발에 상권이 이동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부터는 낡은 건물들이 방치되면서 사실상 슬럼화가 상당히 진행된 ‘죽은 상권’으로 불렸다.
낙후된 세운상가를 살리기 위해 2006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팔을 걷어붙였다. 이 일대를 전면철거 후 고층 주상복합과 상업 판매시설 등으로 채운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이 집권한 이후로는 사업 방향은 확 바뀌었다. 박 시장은 기존 6개 구역 중심에 있는 세운상가 7개동을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는 방식의 리모델링을 진행하기로 했다. 또 세운상가를 거쳐 남산까지 이어지는 남북으로 공중에 보행교를 설치, 상권 활성화를 이룬다는 ‘다시 세운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지난해 9월 종로~세운상가~청계·대림상가로 이어지는 1단계 구간 개발을 완료했다.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 사업은 크게 8개 구역(2, 3, 4, 5, 6-1, 6-2, 6-3, 6-4구역), 세부적으로는 169개 구역으로 쪼개 추진 중이다. 이 중 핵심 지역은 세운4구역이다. 이 곳은 사대문 안의 마지막 남은 대규모 개발지이자 끊어져 있던 광화문과 동대문 사이 보행축을 이어준다. 북쪽으로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종묘가, 남쪽에는 청계천, 동·서쪽으로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광장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종로구에서 사업시행 인가를 받은 이 곳에는 2023년까지 최대 18층짜리 호텔 2개동, 업무시설 5개동, 오피스텔 2개동 등 9개동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하철 2·5호선 을지로4가역과 붙어있는 세운 6-3-1구역에서는 내년 4월 대우건설이 입주할 새 사옥(지하 8층~지상 20층) 공사가 진행 중이다. 6-2구역에는 지난달 지하 4층~지상 12층 규모의 관광호텔이 들어섰다.
주상복합 단지도 조성된다. 세운3-1구역, 3-4구역과, 세운6-3-3구역, 세운6-3-4구역 등 4곳은 현재 관리처분계획 수립 단계로 내년 하반기 중 총 2326가구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를 공급할 예정이다. 2006년 이후 12년 만에 첫 분양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관리처분인가를 완료하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일으켜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라며 “참여 의사를 밝힌 건설사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공동화 진행된 사업지구내 상가는 ‘잠잠’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주변 상가건물 시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세운상가와 인접한 대로변 인근 역세권 근처 상가의 몸값이 크게 뛸 수 있다고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종로3가역 인근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유동인구가 많고 역과 가까운 대로변 상가 1층 7~8평(23~26㎡)짜리 점포는 권리금이 2억~2억5000만원에 달하고, 임대를 놓으면 평당(3.3㎡) 최소 30~40만원을 받아 월 200만원 이상을 챙길 수 있다”며 “걸어서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쳐 1년 새 몸값이 10~20%가량 뛰었다”고 말했다.
다만 이미 상인의 상당수가 빠져 나가 공동화가 진행된 세운재정비촉진사업지 내에는 아직 별다른 변화가 감지되고 있지 않다. 현재 사업 진행이 가장 빠른 세운3·4구역과 6·3구역 등은 사업시행사(SH공사·한호건설)가 토지 소유주들을 상대로 재개발에 따른 보상과 분양 여부 등을 확정짓는 관리처분계획을 진행할 예정이다. 인근 D공인 관계자는 “기존 소유자들이 분양을 받는다고 해도 현 시세와 크게 다르지 않아 실익이 없기 때문에 투자 문의는 많지만 정작 손바뀜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상업지구에 속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재개발은 서울시가 세운상가를 비롯해 종로4가, 청계4가 주변을 획기적으로 바꿔 이 일대를 영등포 타임스퀘어급으로 변모시키는 대규모 사업이다. 하지만 사업 기간이 길고 기존 제조업 중심의 상인들이 쫓겨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상혁 상가정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운상가 리모델링 후에도 기존 전자부품 도소매상인들의 매출이 늘지 않고 있다. 주변 재개발이 진행되면 노후 건물의 가격과 임대료가 더 상승할 것이고,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 현상도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며 “기존 제조업 기반을 육성·보호한다는 서울시 의도와는 달리 기존 자영업자들이 쫓겨나는 등 세대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기덕 (kidu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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