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아들 둔 엔지니어 출신 엄마, 의료정책 바꾸다
피 뽑지 않는 혈당 측정기 들여와 직접 제작한 데이터 전송기 달아
"희귀 질환 환자와 보호자보다 질병 정보에 더 밝은 공무원은 없었어요. 정부가 환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김미영(41) 한국1형당뇨병환우회 대표는 작년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허가받지 않은 의료 기기를 불법으로 수입해 사용했다'는 이유였다.
김씨의 아들 정소명(9)군은 '소아 당뇨'(1형 당뇨) 환자다. 김씨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의료 기기를 찾아 한국에 들여왔다. 당시 국내에는 정식 수입되지 않던 기기다. 식약처는 작년 3월과 12월 관세법, 의료기기법 위반 혐의로 김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김씨는 재작년까지 대기업에서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개발하던 엔지니어였다. 대학에선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그는 엔지니어 경력을 살려 '데이터 전송기'를 직접 만들어 혈당 측정기에 달았다. 측정한 혈당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보낼 수 있는 기능이다. 아이가 어디에 있든 김씨는 아이 몸 상태를 알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소아 당뇨 아이를 둔 부모들을 위해 기계 구입법과 데이터 전송기 제작법을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소아 당뇨 환우들을 위해 더 힘써 달라"는 요청이 밀려들었다. 그는 해외 제조 업체에 메일을 보내 '연속 혈당 측정기를 한국에 공식 출시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업체들은 낮은 수익률을 이유로 "한국 진출은 어렵다"는 답변을 보내왔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고 업계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을 때마다 이들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김씨를 막아선 것은 식약처였다. 무허가 의료 기기를 들여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 설명했지만 소용없었다. 김씨는 "법까지 어겨가며 자식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부끄럽고 속상했다"고 했다.
한 변호사 단체가 무료 변론에 나섰다. 변호인들은 "희귀 질환 환자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진 법이 더 문제"라며 용기를 줬다. 이후 김씨의 사연이 언론에 소개되며 정부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올 4월 식약처는 국내에 대체 치료 수단이 없는 의료 기기에 한해 개인이 허가를 받고 수입·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바꿨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검찰로부터 "혐의는 인정되나 수익을 목적으로 한 수입·사용 활동이 아니었다"며 사실상의 선처인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작년 3월부터 1년3개월간 진행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김씨는 "홀가분한 마음이 들지만 여론이 들끓어야만 움직이는 정부 부처의 무사안일은 여전하다"고 했다. "이번 법적 공방이 의료 사업을 하는 대기업 입장이 아니라 환우와 그 보호자를 위한 의료 정책이 만들어지는 시금석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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