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우아한 노력..연필 회화의 정점

전지현 2018. 7. 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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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집약 화가 차영석 개인전..신사임당 '초충도'처럼 작은 사물도 섬세하게 묘사
주변에 자연뿐인 작업실서 정밀 소묘에 열정 쏟아부어..14일까지 이화익갤러리 전시
조선 중기 화가 신사임당(1504∼1551) '초충도(草蟲圖)'는 풀과 벌레를 섬세하고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 닭이 살아 있는 곤충인 줄 알고 쪼아댄 바람에 종이가 뚫어질 뻔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화가 차영석(42·사진)은 2005년부터 한지에 연필로 '현대판 초충도'를 그린다. 신사임당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가치 있는 주변 사물들을 화폭에 담았다. 분재와 꽃병, 러시아 인형, 운동화, 숯, 부엉이, 스노볼 등을 정밀하게 묘사한다. 그가 다니던 서울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주변에서 누군가 폐고무타이어 안에 정성 들여 키운 화초를 그리기 시작하다가 시선을 넓혔다.

`우아한 노력`(137×200㎝). [사진 제공 = 이화익갤러리]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화면에 사물들을 수집한다. 어찌보면 잡동사니 같은 풍경이다. 일상적인 사물을 통해 삶의 풍경을 담고 싶다"고 설명했다. 이 시대 정물화·풍경화가 된 그림에는 누군가의 취향이 반영된 물건들이 섞여 있다. 사물을 취사선택하다보니 어느새 작가의 개인적 취향이 그림에 드러나게 됐다. 화면에 긴장감과 조형성을 불어넣기 위해 그만의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림은 미세한 나뭇결과 잔가지, 화병 무늬, 바느질 자국 등 눈에 잘 띄지 않은 부분까지 다 잡아냈다. 마치 조금이라도 생략하면 사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듯이. 그래서 그의 작업은 노동집약적일 수밖에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자연뿐인 파주시 월롱면 위전리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서 열심히 묘사한다. 6H부터 6B까지 다양한 강도 연필 12종과 금색펜, 컬러펜,수채화 물감 등을 사용해 치밀한 소묘를 한다.

그래도 이 힘든 노동에 대해 작가는 '우아한 노력'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어떤 것' '건강한 정물' '은밀한 습관' 시리즈 등 전작과 최근작 25점을 내건 그의 개인전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그려왔는지 알 수 있다. 작가는 "건강한 정물을 우아하게 보여주기 위해 애절하고 치열한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치밀한 연필 소묘 내공은 오랜 미술학원 강사 이력에서 비롯됐다. 21세부터 직접 생활비와 학비를 벌어야 했다. 영남대 서양화과를 다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8년간 대학을 다녔다.

"학원에서 가르치던 학생들과 같이 시험을 쳤는데 덜컥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합격했어요. 석고 소묘를 가르치면서 진절머리나게 연필을 썼죠. 손이 까매질 정도로요."

2006~2007년 미술계 호황으로 또래들이 화단에 데뷔할 때 그는 다른 작가를 흉내내기보다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소묘를 선택했다. 선배에게 판화지를 얻어와 펼치니까 평소 관심 없었던 석관동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차영석 `우아한 노력`(108.5 x 78.5cm)
"과거 재주 부렸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풀었어요. 내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 정면을 명암 없이 그려봤죠. 예쁘면 과대하게 묘사하고, 거친 사물도 그려보고….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묘한 맛이 있더라고요."

장지와 검은 종이에 연필을 댄 부분이 들어가면서 오돌토돌한 입체감이 살아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자수를 놓은 것 같다. 전시는 7월 14일까지.

19세기 조선민화 `화조도`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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