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 사로잡은 소프라노 여지원.. 강렬한 아리아에 "브라비!"
"공주님, 들어주세요! 당신의 얼음 같은 냉정함은 겉모습뿐…. 당신이야말로 그분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이 새벽이 오기 전에 저는 피곤에 지친 눈을 감겠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을 이기고 싶으니까요…."
오페라 '투란도트'에서 칼라프 왕자를 사모하는 여종 류는 왕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7월 1일 0시 40분(현지 시각), 류의 아리아 '당신은 얼음에 싸여 있군요(Tu che di gel sei cinta)'가 2000년 전 지어진 이탈리아 베로나 고대 원형 경기장을 강렬하게 휘감았다. 확신과 사랑의 감정을 짙게 실은 아리아의 여운이 사라지는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브라비!" 함성이 터져 나왔다. 관객들은 발을 구르며 류의 아리아를 성원했다.

올해로 96회를 맞은 베로나 오페라 축제 역사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 순간. 6월 30일 밤 9시 20분 시작한 '투란도트' 첫 공연에서 소프라노 여지원(37)은 이 작품의 주요 배역인 '류'를 열연해 극찬을 받았다. 지난해 잘츠부르크 축제 '아이다'에서 아이다 역을 맡은 데 이은 중요한 사건이다.
베로나 오페라 축제는 로마 시대 원형 경기장을 사용하는 여름철 야외 오페라 축제로 가장 오랜 역사와 규모를 지녔다. 올해는 6월 22일 개막, 9월 1일까지 베르디의 '아이다', 푸치니의 '투란도트', 비제의 '카르멘'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등 오페라 5편과 로베르토 볼레 댄스 컴퍼니의 무용, 베르디 오페라 나이트로 이뤄진다.
'투란도트' 공연은 모두 5회. 그중 가장 중요한 첫 공연을 여지원이 맡았다. 푸치니는 유작 '투란도트'에서 유달리 류에게 큰 무게를 두었는데, 1막을 류의 아리아 '시뇨레, 들어주세요!(Signore, ascolta!)'로 시작해 칼라프 왕자의 '울지마오, 류(Non piangere, Liù)'로 이어진다.
베로나 축제의 투란도트는 원로 영화감독 프랑코 제피렐리의 연출을 바탕으로 대니얼 오렌이 연출했다. 제피렐리가 1980년대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연출한 투란도트는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는데, 제피렐리는 2010년 베로나 오페라 축제를 위해 이를 재연출했다. 중국풍의 궁전과 탑 등 무대 디자인의 기본을 대부분 유지한 채 다양한 군중 장면과 춤을 가미한 이 무대는 미니멀리즘이 지배하는 최신 오페라 흐름 속에서 시대를 거스르는 듯 보였지만, 화려하고 장식적인 디테일로 자기 목소리를 냈다.

베로나 축제가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오페라 무대임을 자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마이크 같은 음향 증폭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날 투란도트와 28일 공연한 아이다 모두 성악가들의 육성이 공연장 곳곳에 잘 전달됐다. 투란도트 공주 역 안나 피로치, 칼라프 왕자 역 그레고리 쿤데같이 극적이고 강한 소리를 내는 배우들에 비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소리를 특성으로 하는 류나 아이다 역할을 맡은 배우도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전달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지원의 류는 '사랑에 목숨을 버리는' 순정 가련형 인물이 아니라, 진정 중요한 것을 위해 자기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여전사였다. 둥글고 풍부한 성량으로 투란도트와 맞서는 장면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여지원은 "류는 현대의 눈으로 봐도 자기 결정권을 가진 강인한 여성"이라며 "12년 전 학생 시절 제일 싼 표를 사서 보던 그 오페라 축제에 참여하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봄까지 리카르도 무티와 함께 베르디의 '레퀴엠' 콘서트 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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