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온몸 짜릿하게.. 하늘로 가는 길

왜 이 길을 선택했을까란 후회가 수십 번 들 수 있다. 반면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자란 생각도 수십 번 든다. 그런 사이 어느새 중간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 돼 버렸다. 이쯤 되면 밑을 보지 말아야 한다. 뒤돌아보는 순간, 수백m 상공에 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 느끼는 시원함 외에 등골이 오싹해지는 서늘함이 동시에 전해진다. 밑에서 봤을 땐 금방 도착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후회를 해도 내려가는 것보다는 올라가는 것이 더 낫다. 힘들더라도 멈추면 다시 발을 옮기기 힘들 수 있으니 천천히라도 움직여야 한다. 그것이 끝까지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한여름 담력훈련이 따로 없다. 등장인물은 본인 외에 없지만 웬만한 공포물보다 더 섬뜩하다. 달랑 계단을 오르는 것일 뿐인데 덥다란 생각은 온데간데없다.


아래서 올려다봐도 봉우리와 기암단애 등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케이블카 하부정류장에서 상부정류장까지는 금세다. 5∼6분 정도 타고 가면 상부정류장에 이른다.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정류장에서부터 바로 걸어 오른다면 하부정류장 왼쪽 길로 가면 된다.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정류장에서 내리면 금강구름다리를 거쳐 마천대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정류장 위 휴게소를 지나면 구름다리 이정표가 있다. 이곳부터 대둔산 최고의 풍광을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암벽길을 지나면 금강구름다리와 바위에 걸려 있는 삼선계단, 기암괴석들이 이루는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강구름다리는 길이 50m의 철제다리로, 해발 670m에 놓여 있다. 구름 다리 중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천 길 낭떠러지’란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면 철제 다리이지만 흔들린다. 발은 다리를 딛고 있지만 허공을 걷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다리를 건너면 전망대 역할을 하는 작은 바위에 오를 수 있다. 바위에 올라서 보면 구름다리의 아찔함이 더 확연히 다가온다. 이미 지나왔으니 무서움보다는 암봉 사이에 걸쳐 있는 구름다리와 산 아래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의 두려움만 이겨내면 한 폭의 산수화가 자신의 것이 된다.

너덜바위로 이뤄진 돌계단을 오르면 약수정 휴게소에 이른다. 여기선 고민에 빠진다. 왼편으로는 대둔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인 삼선계단 가는 길이다. 일단은 그 길로 가보고 다시 돌아와도 된다. 계단을 오를 수 있을 것 같으면 가면 되지만, 만약 자신이 없다면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된다. 삼선계단은 오를 수만 있는 일방통행길이다. 총길이 36m, 계단 127개, 경사 51도다. 오르기 시작하면 계단 중간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 좋다. 끝없는 낭떠러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오를 때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계속 오르면 살 수 있다는 일말의 안도감이 교차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발은 계속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

이런저런 푸념을 하다 보면 계단 정상이다. 탄성은 기본이다. 눈 아래 구름다리와 다양한 기암괴석들, 멀리 보면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펼쳐진 풍광에 감탄하며 서 있게 된다. 오래 서 있을 순 없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는 다른 이들을 위해선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삼선계단은 삼선바위가 있어 이름 붙었다. 고려말 한 재상이 딸 셋과 함께 이곳에 들어와 망국의 한을 품은 채 여생을 보냈고, 딸 셋이 선인으로 변해 삼선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아픈 역사의 아릿한 흔적
대둔산은 인적이 드문 두메산골의 험준하고 큰 산봉우리라는 뜻의 한듬산이 원래 이름이다. 명당자리를 계룡산에 뺏겨 ‘한이 들었다’해서 ‘한듬산’이라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한듬산이란 이름을 문서에 남기는 과정에서 ‘큰 대(大)’와 ‘진칠 둔(屯)’자를 쓰면서 이름이 대둔산으로 바뀌게 됐다. 명당자리뿐 아니라 원래 불렸던 이름조차 뺏겨 산이 한을 품은 것일까. 대둔산은 우리 역사의 많은 우여곡절이 벌어진 곳이다. 막연히 멋진 풍광만 품은 곳이 아니라 옛 아픔이 서려 있기에 더 애달프게 다가온다.

권율 장군과 의병 1500명은 왜적 1만 병력과 처절한 전투를 벌였고 많은 희생 끝에 이겼다. 이 전투에 패한 왜적은 전주 방면 침공을 포기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한산도대첩, 진주대첩, 행주대첩을 말하는데, 권율은 사위인 이항복에게 “내가 여러 전투에서 공을 세웠으나 이치대첩이 최고이고 그다음이 행주대첩이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조선말에는 우금치전투에서 대패한 동학 농민군들 중 20여명이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들은 대둔산에서 마지막 항전을 벌이다 대둔산 벼랑에서 몸을 던져 자결했다. 삼선계단에 가기 전 ‘대둔산 동학군 최후 항전지’ 표시가 있다. 농민 군중 접주 김석순은 한살배기 딸내미를 품에 안고 벼랑에서 뛰어내렸다고 한다.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당연한 꿈조차 과분했던 것일까. 걷지도 못하는 딸을 살리기보다 ‘역적의 피’라며 온전치 못한 삶을 살 것을 우려한 ‘애비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진다. 6·25전쟁 때는 빨치산들의 활동무대로 민초들의 한이 그대로 서려 있는 곳이 바로 대둔산이다.


이곳에서 보관하던 쌀은 기차를 통해 군산항으로 옮겨졌다. 이 기찻길이 비비정을 들렀다. 비비정은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고, 소양천과 고산천이 만나 만경강이 시작되는 한내라는 언덕 위에 있는 정자다. 정자에서 만경강을 내려다보는 풍광도 멋지지만, 이제는 사용되지 않는 옛 철교 위 비비정예술열차가 더 눈길을 끈다. 무궁화호 4칸을 그대로 가져와 철교 위에 올려놓고, 예술공간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철교 중간까지 갈 수 있는데, 강 위에 놓인 철교와 평야를 가로지르는 기찻길의 이색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벌겋게 녹슨 철교로 대표되는 수탈의 흔적이 지금은 낭만의 공간을 탈바꿈한 것이다.
완주=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방배동 1만 평·3000억 가문”…이준혁·이진욱, 집안 배경 숨긴 ‘진짜 왕족’
- “왕십리 맛집 말고 구리 아파트 사라”… 김구라, 아들 그리에게 전수한 ‘14년 인고’의 재테
- “화장실만 한 단칸방의 기적”…양세형, ‘월급 70% 적금’ 독종 습관이 만든 109억 성벽
- “자기, 잠만 자서 먼저 갈게”…소름 돋는 ‘모텔 살인’女 메시지 [사건 속으로]
- 920억 김태희·1200억 박현선…집안 자산에 ‘0’ 하나 더 붙인 브레인 아내들
- “매일 1만보 걸었는데 심장이”…50대의 후회, ‘속도’가 생사 갈랐다
- ‘냉골방’서 ‘700억’ 인간 승리…장윤정·권상우, 명절에 ‘아파트 한 채 값’ 쓰는 클래스
- “검색량 2479% 폭증”…장원영이 아침마다 마시는 ‘2000원’ 올레샷의 과학 [FOOD+]
- 부산 돌려차기男 ‘충격’ 근황…“죄수복 터질 정도로 살쪄” [사건 속으로]
- “허리 아플 때마다 받았는데, 이제 끝?”…도수치료비 ‘95%’ 환자 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