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민의 푸스발 리베로] '무관심 경기' 파나마-튀니지, 절실함이 명승부 만들다

김현민 2018. 6. 2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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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월드컵 첫 선제골. 튀니지 메리아, 월드컵 역사상 50번째 자책골. 벤 유세프, 월드컵 역사상 2500번째 골. 에이스 카즈리 1골 1도움. 튀니지 주장 마틀루티 골키퍼 안면 선방. 튀니지, 40년 만에 월드컵 승

[골닷컴] 김현민 기자 = 튀니지가 사란스크에 위치한 모르도비아 아레나에서 열린 파나마와의 2018 러시아 월드컵 32강 조별 리그 G조 최종전에서 혈전 끝에 2-1로 승리했다.

일반 축구팬들에게 있어 가장 관심 없을 만한 경기에서 의외의 꿀잼이 쏟아졌다. 기승전결이 확실했고, 희노애락의 드라마도 있었으며, 심지어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골들까지 터져나왔다.

월드컵 조추첨이 끝난 시점에서 튀니지와 파나마는 G조 2약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파나마는 축구보다 야구가 더 유명한 국가로 이번이 첫 월드컵 참가였다. 튀니지 역시 이번까지 포함해 월드컵 5회 진출이 전부였고, 그마저도 모두 조별 리그에서 조기 탈락했으며, 무엇보다도 이 경기 이전까지 월드컵 통산 승리는 단 1승이 전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나마와 튀니지는 황금세대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벨기에와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 한 조에 묶였다. 당연히 파나마와 튀니지는 이번 월드컵 조별 리그 첫 2경기에서 모두 패하며 조기에 월드컵 탈락이 확정됐다. 이번 월드컵에 참가한 팀들 중 최약체에 해당하는 두 팀이 이미 탈락이 정해진 상태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만큼 자연스럽게 이 경기는 양국 국민들을 제외한 일반 축구 팬들 사이에선 '무관심 경기'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파나마와 튀니지에게 있어서 이는 단순한 경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먼저 월드컵 첫 진출팀 파나마에게 있어선 한 경기 한 경기가 역사와도 같았다. 파나마의 역사적인 첫 월드컵 경기였던 벨기에전에 국가가 흘러나오자 눈물을 흘리며 감격을 표하던 RPCTV 파나마 중계진의 눈물은 전세계 축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월드컵 무대에 첫 국가가 울리자 감격해하는 파나마 중계진)

이어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1-6으로 대패했음에도 파나마가 월드컵 첫 골을 넣자 파나마 관중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환한 미소로 울면서 기뻐했다. 이들에게 월드컵 한 경기는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나마의 월드컵 첫 골이 나오자 기뻐하는 파나마 중계진)

(파나마의 월드컵 첫 골이 나오자 광분하는 파나마 팬들)

튀니지 역시 감격적이었던 첫 월드컵 경기(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 멕시코에게 3-1로 승리한 이래로 13경기 연속 승리가 없었다. 그러하기에 승리가 절실했다. 이에 튀니지 감독 나빌 말롤은 파나마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선수들은 월드컵을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 선수들에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40년 동안 월드컵 본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꼭 이겨야 한다. 그 동안 뛰지 않았던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라며 포부를 전했다.

전체적으로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파나마에 앞서는 튀니지가 경기를 주도했다. 실제 튀니지는 점유율에서 69대31로 크게 우위를 점했고, 코너킥 역시 6대0으로 파나마를 압도했다. 하지만 파나마 역시 육탄 방어를 선보이며 튀니지의 공세를 제어하면서도 효과적인 역습으로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슈팅 숫자에선 9대14로 점유율 대비 선방하는 모습을 보인 파나마였다.

심지어 파나마는 33분경 선제골마저 성공시켰다. 파나마 중앙 수비수 피델 에스코바르의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튀니지 주장 아이멘 마틀루티가 선방한 걸 공격수 가브리엘 토레스가 잡아서 뒤로 내준 걸 또 다른 중앙 수비수 로만 토레스가 슈팅으로 가져갔으나 튀니지 수비수 야시네 메리아에게 차단됐다. 하지만 이어진 혼전 상황에서 파나마 측면 미드필더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의 중거리 슈팅이 메리아의 발에 맞고 굴절되어 골로 연결됐다.

다소 행운이 따른 골이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달아 리바운드 슈팅을 시도했기에 가능했던 골이었다. 이는 파나마의 월드컵 역사상 첫 선제골이었다. 반면 메리아 입장에선 불운하게도 이는 월드컵 역사상 50번째 자책골이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 월드컵 역사에 이름을 남긴 메리아였다.


사진캡처: OptaJean

다급해진 튀니지가 파상공세에 나섰으나 파나마는 몸을 아끼지 않는 육탄방어로 공세를 막아냈다. 특히 전반 종료 직전 에스코바르가 튀니지 에이스 와흐비 카즈리의 슈팅을 몸으로 차단한 데 이어 카즈리가 재차 시도한 리바운드 슈팅마저 파나마 수문장 하이메 페네도가 선방하며 전반전은 파나마가 1-0으로 앞선 채 마무리됐다.

하지만 튀니지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중앙 미드필더 페르야니 사시를 빼고 공격수 아니스 바드리를 교체 출전시키며 공격을 강화한 튀니지는 후반 5분경 카즈리의 크로스를 측면 미드필더 파크레딘 벤 유세프가 골문 앞에서 가볍게 밀어넣으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이는 월드컵 역사상 2,500번째 골이었기에 한층 의미가 있는 골이었다.


사진캡처: OptaJoe

명승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바로 튀니지 에이스 카즈리였다. 이미 동점골을 어시스트한 카즈리는 후반 20분경 측면 수비수 우사마 하다디의 크로스를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하며 천금같은 역전골을 성공시켰다. 에이스의 품격을 확실하게 보여준 카즈리였다.

튀니지에게 있어 이번 월드컵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월드컵 기간 내내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고전해야 했던 튀니지였다. 월드컵 개막을 앞둔 시점에선 간판 공격수 유세프 음사크니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끔찍한 부상을 당해 월드컵 본선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다. 잉글랜드와의 1차전에선 선전 끝에 아쉽게 1-2로 패했으나 경기 시작 15분 만에 주전 골키퍼 무에즈 하센이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있었다.

이어진 벨기에와의 경기에선 전반전이 끝나기도 전에 주전 측면 수비수 딜란 브론(18분경 벨기에를 추격하는 골을 넣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다)과 중앙 수비수 시암 벤 유세프가 부상을 당하며 일찌감치 교체 카드 두 장을 소진해야 했다. 결국 튀니지는 무기력하게 벨기에에게 2-5 완패를 당해야 했다.

파나마전을 앞두고도 튀니지는 주전 골키퍼 하센의 빈 자리를 대신하던 파루크 벤 무스타파가 부상을 당하는 악재가 이어졌다. 이로 인해 파나마는 보결 골키퍼 모에즈 벤 체리피아를 호출했고, 베테랑 골키퍼 마틀루티가 대신 골문을 지켜야 했다. 마틀루티는 후반 17분경 공중볼을 잡으려다 놓치는 실수를 범했으나 파나마 측면 공격수 에드가르 바르세나스의 리바운드 슈팅을 안면으로 막아내는 투혼을 보여주었다.

결국 튀니지는 파나마를 2-1로 꺾고 40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서 기념비적인 승리를 올렸다. 파나마 역시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선전을 펼치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 32강 조별 리그 최종전에선 축구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졸전들이 있었다. B조 1위와 2위를 사이좋게 차지한 프랑스와 덴마크는 패스 돌리기를 반복하면서 지루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에 팬들이 야유를 하다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어진 일본과 폴란드의 경기에선 전세계 축구팬들에게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일본이 폴란드에게 선제 실점을 허용하면서 탈락 위기에 몰렸으나 동시간에 열린 타구장 경기에서 콜롬비아가 세네갈에게 골을 넣으면서 일본이 페어플레이 점수에서 세네갈에 앞서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으로 바뀌자 마지막 15분 가량을 의미없는 시간끌기로 일관한 것.

결국 일본은 폴란드에 0-1로 패하고도 페어플레이 점수 덕에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모습을 중계한 영국 공영방송 'BBC' 해설자들은 "옐로 카드가 적다는 이유로 16강 진출팀이 갈리면 안 된다. 이 경기가 바로 그 대표적인 이유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 멋진 경기가 많았으나 이 경기는 정말 황당했다. 특히 경기 종료 직전 모습이 그랬다"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세네갈 감독 알리우 시세 역시 경기가 끝나고 기자회견에서 "세네갈 선수들은 헌신적으로 뛴다. 그들에게 옐로 카드를 받지 말라고 지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축구는 신체 접촉을 요구하는 종목이다. 규정을 존중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런 규정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적용됐다는 점이 실망스럽다.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탈락했다면 나았을 것이다. 우리가 더 헌신적으로 뛰어서 옐로 카드를 더 많이 받았을 뿐이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사진=BBC 중계화면 캡쳐

한국은 비록 탈락했으나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혈투 끝에 FIFA 랭킹 1위인 디펜딩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이 덕에 전세계 축구팬들로부터 찬사를 들을 수 있었다.

튀니지와 파나마 역시 혈전을 펼치며 무관심 경기를 명승부로 이끌어냈다. 파나마는 비록 전패로 탈락했으나 선전하며 자국민들에게 자긍심을 안겨주었다. 튀니지도 부상 악재 속에서 40년 만의 감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승리한 팀도, 패한 팀도 탈락에도 웃으면서 월드컵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월드컵을 즐기는 이유이자 월드컵이 단일 스포츠로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이벤트로 자리잡고 있는 이유이다. 월드컵은 하나의 축제가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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