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노 팬츠' 유래는 고온다습 필리핀 점령한 미 육군의 작업복
[남보람의 전쟁 그리고 패션-46] 1. 치노(Chino)는 스페인어로 '중국'이란 뜻
'면바지' 하면 우리 머릿속에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대개 아래의 사진과 같을 것이다.

위 사진 속 바지의 총칭은 '면바지'가 아니라 '치노 팬츠(Chino Pants)'다. 치노 팬츠의 사전적 의미는 '염색한 능직 면바지'이다.
원래 '치노(Chino)'는 스페인어로 '중국'이란 뜻이다. 기원전 3세기의 통일국 진(秦)을 뜻하는 '친(Ch'in)'에서 왔다. 어원을 따라가보면 라틴어의 '사이노(Sino)', 산스크리스트어의 '시내(Sinae)'도 만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염색한 능직 면바지'를 치노 팬츠 즉, 중국 바지라고 부르는 것일까.
2. 필리핀 주둔 미 육군의 작업복 바지
1898년 필리핀은 스페인 전쟁에서 승리한 미군에 할양됐다. 미국 육군은 곧 필리핀에 상륙했다. 필리핀 국민은 오래전부터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 투쟁을 해왔다. 필리핀 독립군은 상륙한 미 육군과 교전을 벌였다. 그러나 중과부적이어서 1913년께 미 육군이 필리핀을 안정적으로 점령하게 되었다.
필리핀에 상륙한 미 육군을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고온다습한 날씨였다. 여름철 온도는 33도고 우기는 연중 7개월에 달했다. 국면이 전환되어 주둔이 장기화될 것으로 본 미 육군은 필리핀 환경에 적합한 장비와 물자를 보급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가 면직물로 만든 통 큰 작업복이다.
미 육군은 작업복을 제작하기 위해 중국에서 면직물을 대량 매입했다. 중국산 면직물로 만든 새 작업복은 통기성이 좋고 땀 흡수가 잘됐다. 시제품을 입어본 장병의 반응은 기대를 훨씬 웃돌았다. 마침 매입한 면직물이 능직으로 짠 것이어서 시원하고 편한데다가, 부드럽고 신축성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3. 능직의 기능성
직물을 짜는 대표적인 방법 세 가지로 평직(平織), 능직(綾織), 수자직(繡子織)이 있다. 평직은 씨줄과 날줄을 한 줄씩 교차시켜 짜는 것이다. 능직은 씨줄과 날줄을 두 줄 이상 교차시켜 가며 짠다. 수자직은 씨줄과 날줄을 네 줄 이상 교차시켜 짜는 것이다.
그중 능직으로 짠 직물은 튼튼한 평직과 부드러운 수자직의 장점을 골고루 갖췄다. 외형적 특징은 비스듬한 사선 문양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문직(斜紋織)이라고도 부르는데 아래의 그림, 사진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4. 왜 중국 바지라고 불렀을까?
어쨌든, 질기고 두꺼운 군복 바지를 입다가 능직 면으로 된 바지를 입었으니 얼마나 시원하고 편했겠는가. 필리핀 주둔 미 육군은 당시 막 유행하기 시작하던 카키색(Khaki)으로 작업복을 염색하여 전 장병에게 보급했다.

그래도 여전히 남는 질문이 있다. 중국에서 가져온 면직물로 바지를 만들었다고는 해도 왜 그것을 '중국 바지'라고 불렀던 것일까. 파키스탄에서 수입한 양모로 코트를 만든다고 해서 '파키스탄 코트'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말이다.
아마 새 작업복 바지를 지급받은 병사들이 나눈 아래와 같은 대화를 통해서 이름이 그렇게 굳었던 것은 아닐까?
(필리핀 주둔 미 육군 병사가 작업을 하다 말고) "어이, 찰리 상병. 우리가 입고 있는 이 작업복, 엄청 시원한데 이거 무슨 바지인 줄 알아?"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나눠줄 때 보급관이 '치노' 뭐라고 하는 것 같긴 했어…."
"치노? 그거 스페인 말로 '중국'이라는 뜻이잖아. 이게 아마 중국 바지(치노 팬츠)인가 보네?"
"아, 어쩐지 좀 다르다 했더니 이거 중국 바지였구나…."
[남보람 전쟁사 연구자·육군군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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