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월드컵 시즌 '단골손님' 태극기가 사라진 까닭은?
월드컵 시즌 단골손님 중 하나가 사라졌다. 대한민국 국기, 태극기다. 예년에는 월드컵이 시작되기 한 달 전부터 거리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현수막이나 광고 등에서 태극기를 볼 수 있었다. TV나 신문에서도 기업들이 각종 월드컵 광고를 내보내면서 태극기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는 월드컵 마케팅 자체가 지지부진한 것은 물론, 그나마 있는 관련 광고에서도 태극기가 실종 상태다.
한국 대표팀의 예선 첫 경기가 열린 지난 18일 오전 발행한 종합 일간지와 경제지 11개의 지면 광고에 실린 월드컵 관련 광고는 총 14건. 그중 태극기가 들어간 광고는 하나뿐이었다. 이날 지상파 3사 의 한국 경기 TV 중계에서도 전·후반 사이에 방송된 월드컵 관련 광고 5건 중 태극기가 그대로 드러난 것은 1건이었다.
월드컵 한국 대표팀 경기가 있는 날이면 맥주나 치킨은 '필수품'. 하지만 이 대목 날조차도, 관련 유통업체들이 내세운 월드컵 마케팅 광고에 태극기가 노출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런 태극기 실종 사건의 주요 원인으로 '태극기가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처럼 돼버린 탓'을 꼽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분노'하는 박 전 대통령 지지 세력은 태극기를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 '태극기 부대'라고 명명하고 자신들이 여는 집회를 '태극기 집회'라고 부른다. 언론에서도 이런 명칭을 그대로 통용하면서 태극기가 자연스럽게 친박(親朴)을 상징하는 것처럼 돼버린 시대, 기업에서는 오히려 이를 마케팅 도구로 내세우기 부담스러운 상황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월드컵 마케팅을 기획하면서 태극기 이미지를 쓸 것인가에 대한 토론이 격렬했다"며 "무엇보다 월드컵의 주 시청층인 20~30대에게 태극기를 쓴 광고가 일종의 조롱 대상처럼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안 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태극기뿐 아니라 한국 대표팀과 응원단의 상징색인 붉은색을 활용한 광고도 줄어드는 추세다. 자유한국당의 상징색이 붉은색인 데다 월드컵이 6·13 지방선거 일정과 겹치면서 일부 기업은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며 월드컵 관련 광고에 붉은색 쓰기를 꺼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월드컵 응원단이나 거리 응원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붉은색 티셔츠를 맞춰 입고 태극기를 들고 응원에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에서 대표팀 거리 응원에 참가했던 김용희(33)씨는 "친박이나 자유한국당이 생각난다고 태극기나 붉은색을 피한다는 건 또 다른 의미의 '레드 콤플렉스' 아니냐"며 "월드컵 자체가 국가 대항전인데, 국가를 상징하는 것들은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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