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아 낙인 찍어 격리..'국가가 만든 지옥' 선감학원

신재웅 입력 2018. 6. 22. 20:31 수정 2018. 6. 23.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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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 앵커 ▶

우리나라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저도 뉴스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됐는데요.

아이들 수천 명을 부랑아로 낙인 찍어 집단수용한 뒤 강제 노역과 폭력을 휘두른 섬이 있습니다.

1940년부터 40여 년간 벌어진 일이라고 하는데, 국가로 인해 벌어진 폭력이라는 인권위의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신재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리포트 ▶

경기도 안산의 선감도, 1km 가까운 다리가 섬과 육지를 연결하고 있습니다.

섬 한가운데는 폐교처럼 변한 선감학원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어린이들을 부랑아라며 모아 수용하던 곳입니다.

일제시대 때 처음 만들어져,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대규모 격리 시설이 됐습니다.

군사정권이 갱생이라는 이름을 붙여 전국의 어린이들을 모아 수용했습니다.

['대한뉴스'(1961년 6월)] "700여 명의 거리의 천사들을 구해서 불쌍한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는데…"

최소 13살이 넘는 아이들이 대상이었지만 실적을 채우려는 공무원과 경찰은 10살도 안 된 아이들까지 섬으로 보냈습니다.

더러운 옷을 입었다는 게 끌려온 이유였습니다.

[김영배/1960년대 '선감학원' 피해자] "옷이 좀 남루해서…그 당시에 옷 깨끗이 입고 다니는 사람 몇이나 됐어요. 어린 아이들이 대상이 된 것이죠."

축사나 염전의 강제 노역, 성폭행과 일상이 된 집단 구타로 어린 아이들이 죽어갔습니다.

[곽은수/1970년대 '선감학원' 피해자] 물을 뿌려 놓고 맞았어요. 나는, 물을…지금도 증인이 다 있으니까. (회초리 10개가) 다 부러졌어요. 피투성이가 됐는데도 때리는 거야. 안 되니까 곡괭이 자루로 때렸고…"

견디다 못해 섬을 탈출하려는 경우도 있었지만 살아서 바다를 건넌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김영배/1960년대 '선감학원' 피해자] "도망가다 실패한 사람은 대개 한 3~4일 지나면 선감도 쪽으로 이렇게 떠밀려 올 때도 있어요. 퉁퉁 불어서…"

죽어서도 섬을 떠나지 못한 아이들은 선감학원 주변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암매장됐습니다.

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런 이름 없는 무덤들 위에는 수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선감학원에 몇 명이 수용됐었는지는 기록이 아예 없습니다.

이곳을 퇴원한 아동만 공식적으로 4,710명.

이 중 830여 명이 중간에 사라졌습니다.

인권위 조사결과 피해자의 절반이 부랑 생활이 아닌 가족과 함께 살다 갑자기 끌려왔습니다.

이들은 나간 뒤에도 평생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조영선/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대부분 경찰 또는 관계 공무원들에 의해서 본인의 의사와 반해서 왔다는 점에서 국가의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시설은 40년간 운영되다 1982년 폐쇄됐습니다.

인권위는 선감학원이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설립됐으면서도 경기도의 직할 기관으로 운영됐다며 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김영배/1960년대 '선감학원' 피해자] "제가 8살 때 여기 들어왔는데요. 8살짜리가 뭘 알아요. 8살짜리가 잘못을 했으면 무슨 잘못을 해."

MBC뉴스 신재웅입니다.

신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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