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성자가 된 청소부
[경향신문]
남들 취미 생활을 일로 삼아 살다보니 취미에 대해 묻는 이는 드물다. 내 취미를 밝히자면 밀고 쓸고 닦는 ‘청소하기’. 가방에다 물티슈를 항상 담고 다니니 별명조차 물티슈. 밥 먹고 나면 곧바로 설거지를 해놓아야 직성이 풀린다. 글을 쓰기 전엔 책걸상 청소를 마쳐야 개운한 마음가짐. 병적일 정도는 아니나 더럽고 어지럽혀진 곳에 있으면 안절부절 마음조차 산만해진다. 오지여행에선 자포자기하고 침낭을 머리끝까지 올린 채 눕곤 한다. 하루 쉬고 갈 집이라도 화장실 청소를 꼭 한다. 당신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면 내 물티슈로 똥을 닦는 불행 중 다행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주리반득(출라판타카)’이라는 제자가 있었다. 하도 머리가 안 돌아가 멍텅구리 멍청이 소리를 들었다. 경전도 한 구절 못 외우는 형편. 부처님은 측은한 마음에 빗자루를 하나 들려주시곤 “사원 곳곳 먼지를 쓸어내고, 도반들이 앉는 데마다 반짝거리게 닦아놓으시게” 부탁하였다. 그날부터 주리반득은 죽어라 청소에 전념. “청소란 마음에 쌓인 번뇌의 먼지를 털어내고, 마음에 낀 사념을 닦아내는 일”이란 깨달음을 얻은 주리반득은 부처님의 10대 제자로 우뚝 섰다.
청소뿐만 아니라 신변정리가 반듯이 되어 있지 않으면 더 큰 문제. 산만한 인간관계로 어질러진 약속들. 관리를 못해 무너진 건강도 ‘청소’에 소홀한 때문이리라. 이건 로봇청소기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일.
마방이나 외양간을 날마다 청소하는 이들, 밤새 도심을 청소하는 미화원. 음식물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들과 온갖 눈뜬 벌레들. 떠난 사람을 깨끗이 잊고 새 출발을 한 친구도 마음의 청소부.
꽃잎을 슬픔처럼 달고 살던 나무가 있었다. 제 몸을 바람과 빗물로 깨끗이 씻고 구석구석 숲 주변을 청소하던 나무. 가을겨울 청소를 잘한 나무일수록 건강한 봄여름을 지낼 수 있다. 성자가 된 나무와 청소부들이 밤의 절벽에다 새라새로운 꽃을 피운다. 그대 성자가 되려는가, 바보가 되고픈가.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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