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 '좋은 남자'로 키우려면⋯ "엄마표 성교육 시작하라"

신혜민 조선에듀 기자 2018. 6. 18.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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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 전문가, 손경이 소장이 조언하는 아들 성(性)교육법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는 손경이 관계교육연구소장은 "사춘기 자녀에게 몸의 변화가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부모가 나서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연 기자


“내 아들만큼은 정말 ‘좋은 남자’로 키우리라.”

17년째 성교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는 손경이(48·사진) 관계교육연구소장은 23년 전 갓난쟁이 아들을 처음 마주한 순간부터 이 같은 다짐을 되뇌었다. 아들을 둔 엄마라면 누구나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는 조금 달랐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여자란 이유로 입을 꾹 다물어야 할 때가 잦았다. 한창 꽃다운 20대 초반엔 낯선 남자에게 며칠간 납치·감금된 채 성폭력을 당했다. 이후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시작한 결혼생활은 남편에 의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던 해 결국 파경을 맞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나 남편 등 여태껏 제가 살면서 만났던 남자들은 참 별로였어요. 그래서인지 제 아들만큼은 그 누구보다 건강한 성(性) 의식을 가진 남자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먼저 엄마인 저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아이 눈높이 맞는 성교육 중요⋯ ‘소통’이 핵심

손 소장은 아들이 다섯 살 무렵 ‘부모 교육법’ 공부를 시작했다. 이 가운데서도 그는 성교육에 초점을 맞췄다. 아들을 일명 ‘좋은 남자’로 키우기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아들의 성을 이해하고, 아이 역시 엄마를 통해 여자의 성을 존중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성교육은 앞으로 성평등 의식이 점점 더 강해질 미래를 살아갈 아들에게 무엇보다 꼭 필요한 교육”이라며 “아들을 가르치기 이전에 제가 먼저 다른 성별의 입장이나 사상 등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아들의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을 시작했다. 그가 택한 첫 번째 방법은 바로 ‘소통’이다. 아들이 유치원생 시절부터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몸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주고, 얼토당토않은 질문에도 끝까지 들어주고 답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처음 좋아하는 여자친구가 생겼을 땐 같이 잘 어울려 놀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했다. 그는 “성교육은 단지 성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닌 ‘관계’에 대한 교육이 핵심”이라며 “사회적 차원에서 어느 특정 시기에 반짝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가 어릴 적부터 소통을 통해 지속적으로 꾸준히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성교육은 일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쉽게 할 수 있어요. 예컨대, 엄마가 어린 아이에게 스킨십할 때 ‘우리 아들, 엄마가 뽀뽀해도 될까’라고 먼저 허락을 구하는 거죠. 이를 통해 아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자연스레 익힐 수 있어요. 평소 부모가 아이의 몸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 모두 성교육의 일환이 될 수 있습니다.”

◇ 사춘기 아들 위해 ‘존중 파티’·’자위용 수건’ 마련하기도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손 소장은 보다 적극적으로 성교육에 나섰다. 첫 사정을 축하하는 ‘존중 파티’를 열어주고, 자위할 땐 손에 묻어나는 휴지보단 수건이 좋다며 따로 ‘자위용 수건’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행동이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엄마의 모습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춘기에는 2차 성징으로 인해 몸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데, 아이들 입장에선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이때 부모가 마찬가지로 함께 당황해 하고 모른 척 회피한다면, 성은 무조건 감추고 혼자 감내하는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심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사정’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어느 시기가 되면 음경에서 하얀 액체가 나오게 될 텐데, 나중에 아빠가 될 수 있는 아주 멋진 일이니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말이죠. 그랬더니 아이가 몇 년간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더라고요. 실제로 아이가 첫 사정을 했을 때 케이크에 초를 꼽고 파티를 열어줬습니다. 이후 올바른 자위 방법과 뒤처리에 대해서도 알려줬죠. 이처럼 아이에게 몸이 변화하는 게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닌 행복하고 즐거운 일이라는 걸 부모가 나서서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미디어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아들이 한창 관심을 가지는 영화나 TV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을 함께 보며, 아이의 젠더 감수성(Gender Sensibility)을 확인해보고 이를 올바르게 알려주는 소재로 사용했다. 일례로,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억지로 껴안는 장면이 나온다면, 이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물어보는 식이다. 그는 “이런 질문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성 가치관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이때 부모가 단순히 질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닌, 올바른 방향까지 제시해준다면 아이의 젠더 감수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연 기자


◇ 아들 성교육, 엄마도 충분히 ‘가능’⋯ 결코 포기해선 안 돼

손 소장은 지금도 올해 23살 난 아들과 거리낌 없이 성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시작한 성교육 공부는 어느 순간 그의 업(業)이 됐다. 현재 17년 경력의 성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며, 자신처럼 아들 성교육을 고민하는 엄마들을 위해 강연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엔 아들과 함께 ‘엄마와 아들의 자위 토크’ 영상을 유튜브에 게재해 조회 수 21만을 넘겼다. 얼마 전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아들 성교육하는 법(다산에듀)’도 펴냈다. 그는 “아들 성교육은 무조건 아빠가 해야 한다는 건 ‘편견’”이라며 “여성의 몸, 심리 등 아들이 궁금해하는 성적 지식을 여자의 입장에서 보다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성교육은 단순히 성 지식을 알려주는 교육 그 이상입니다. 아이에게 어떤 태도와 주관으로 앞으로 살아가게 할 것인가에 대해 배우는 일종의 ‘인성 교육’이에요.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아들도 이런 교육이 부족하면 결코 누군가에게 ‘좋은 남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저 역시 아들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절대 멈추지 않았어요. 아이가 올바른 성 의식을 갖출 수 있도록 부모의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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