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륭 "욕 많이 먹어도, 내겐 행복했던 '예쁜 누나'"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참 ‘찌질’하다. ‘못 났다’는 표현이 제일 적당할까.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속 윤진아(손예진 분)와 말 그대로 ‘지지고 볶는’ 처절한 이별을 하는 이규민.
'찌질한 구 남친'의 나쁜 예는 모두 이규민에게서 볼 수 있었다. 여자친구에게 모욕적인 말을 해 상처를 주고, 연애시절 찍은 사진을 회사로 보내고,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같이 죽자'며 교통사고를 낸다. 그러면서도 '다 사랑해서 그렇다'며, 윤진아를 미치게 만든다.
어찌나 캐릭터를 잘 소화했는지 시청자로부터 '개규민'이라는 별명까지 들었다. 이규민을 연기한 배우 오륭은, 그것조차도 행복한 일이라며 웃었다.
'예쁜 남자'를 통해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오륭(38)을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스물 다섯살 우연히 본 연극을 통해 연기에 입문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07학번'으로 입학해 나이 어린 동기들과 함께 연기를 배웠다.
꽤 '드라마틱한 전개'라고 했지만 그의 대답은 '그런가요?.' 덤덤했다. 오륭에게 연기란 방황하는 청춘일 때 만난 돌파구였고, 불안하지만 강렬한 에너지를 쏟아부을 창구였다. 10년이 흐른 지금, 연기는 그에게 늘 책임감을 갖고 살게 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Q. 경제학을 공부하다가 다시 처음부터 연기를 하게 되다니,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다.
“쉽지는 않지만 큰 결정은 아니었다. 유학생활은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IMF 영향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뭔가 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만약 내가 그때 무용을 봤다면, 무용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내겐 출구가 필요했고, 그때 마침 연극을 보게 된 것이다. 연기는 나와 다른 세계의 것이었고 시기적으로 확 끌릴 무언가가 필요했던 때에 내 앞에 놓인 것이었다. 또 너무나도 매력적인 것이지 않나. 덥썩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운명적’이라고 표현하면 될까.) 마음이 움직였다고 하고 싶었다. 이쪽(미국 유학생활)하고는 결별을 하고 싶기도 했고 솔직히 밀하자면 내겐 출구이자 돌파구이자 도피처였다. 나로서는 무언가 강렬한 것이 필요했던 것 같다.”
Q. 그렇게 운명처럼 느낀 시기를 지나, 지금 오륭에게 연기는 어떤 것인가.
“어쨌든 연기는 내 일이다. 설렁설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무대든 카메라 앞에 서든 기록은 영원히 따라다니는 것이지 않나. 어떤 표정, 어떤 것, 어떤 생각 등 고스란히 그 안에 담긴다.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다. 또 연기로 밥을 먹고 살고 있고. 단순히 재미와 호감이 커져 의욕적으로 시작한 것이지만, 지금은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진다.”

Q. 늦은 나이에 연기에 입문했다. 대학 생활도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 아닌가.
“늦게 연기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도 많아서 내가 특별히 늦은 편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학생활이 쉽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했던 기억, 장학금에 목을 맸던 기억이 많이 난다. 장학금을 타서 학교를 다녔고 3학년에 조기졸업했다. ‘학교 다닐 때 더 놀았어야 돼’라는 말도 들었는데, 실제로 후회도 된다. 사람들을 더욱 많이 만날 생각을 못 했고, 학과 수업에 열을 올렸다. 영상원, 미술원 등 다양한 전공 공부를 했다. 여유가 없다? 맞다. 그때 나는 여유가 없었다. 관성은 아니었을까 싶다. 연기에 확 끌린 그대로 연기공부를 했다.”
Q. 안판석 감독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안판석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이번이 세 번째다. ‘아내의 자격’에 단역으로 나왔다. 비리 영어 강사 역할이었다. 영어도 조금 할 줄 알고, 나이도 있어야 하는 역할이니 내가 하게 된 것 같다. (웃음) 그 이후 ‘예쁜 누나’ 출연을 제안하셔서 성사됐다. 안 감독님의 연락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Q. 처음에는 단역이었지만, 이번에는 극 중반까지 비중이 큰 인물이지 않았나.
“밤에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일단 안 감독님은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많은 분이시고, 정말 좋은 분이시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하시더라. (웃음) ‘나쁜 놈’ 역할이 있다면서 말해주셨다. 전화를 받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 했다. 나중에 대본을 봤는데 엄청 나더라. 규민이가 워낙 사건을 만드는 인물 아닌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는 부담감이 컸다. 대본을 받고 연기 연습을 정말 많이 했다. 부담감이 연기에 대한 압박감으로 바뀐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대본을 많이 보고 연습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굴 같은 연습실에 틀어 박혀 있었다.”
Q. 실제로 촬영을 해보니 어땠나.
“아니나 다를까. 내가 준비를 너무 과하게 한 것이었다. 상대역인 손예진씨와 마주 보고 대사를 맞추고 있는데, 정말 많이 떨렸다. 손예진씨도 연기 내공이 대단하지 않나. 너무 떨려서 계획했던 이런 저런 것들을 다 해보는데 (감독님이) ‘륭아 우리 진실하게 하자’고 하시더라. 뒤통수를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나름대로 연기를 한다고 했는데, ‘가짜’를 만들었구나 싶었다.”
“너무 힘이 들어간 것이었다.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이었다. 내가 진짜로 느껴야 할 것을 하지 않고 가짜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었다. 그 후에는 다 버리고, 극 안에 살아 있으려고 했다.”

Q. 이규민이 어떤 인물이라고 해석했나.
“결과적으로는 진아 준희 커플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도록 연결해주는 역할이었다. 이규민을 통해 나쁜 사람 연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규민의 집착은 그것이 잘못인지 모르고 하는 행동이다. 진아가 집착의 사랑과 진짜의 사랑을 구분하고 성장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이규민은 ‘이게 사랑이야!’를 말하지만, 사실 진짜 사랑은 진아와 준희의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규민은 참 매 순간이 ‘찌질’하다. 서툰 사람인 것 같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 한계를 넘어야 할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상식적인 데이터가 없다고 할까. 진아와의 일을 겪고 규민이 역시 성장하고 뭔가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Q. 호흡을 맞춘 손예진은 어땠나.
“왜 손예진이라는 배우를 다들 높게 평가하는지 제대로 알게 됐다. 기술적으로도 월등히 잘 하는 것은 물론, 감성적인 부분도 대단했다. 캐릭터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연기도 잘 하는데 착하고 배려심까지 넘친다.”

Q. 이규민 역할을 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승호(위하준 분)야 개규민 데리고 곤지암 가라’는 댓글을 봤다. 엄청 웃겼다. 영화와 드라마 상황을 합쳐서 위트있게 쓴 댓글 아닌가. 정말 대단하다.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방송의 파급력이라는 걸 느껴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예쁜 누나’를 통해 욕을 먹었지만, 그럼에도 내겐 행복한 작품이다. ”
Q. 앞으로 오륭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성장하는 인물을 맡아서 연기하고 싶다. 연기자도 ‘인간’이지 않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뭘 해야 하나 늘 고민한다. 이런 질문이 담긴 작품을 하고, 그 안에서 내가 맡은 인물이 성장까지 한다면 나도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보는 분들에게도) 위로를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Q. ‘예쁜 누나’로 주목받은 지금이 무척 중요한 시기인 것 같다.
“노잣돈을 얻었다는 느낌이다. 감사하고 또 다행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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