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다시 뜨겁게!] '아바의 나라' 스웨덴 "나에겐 꿈이 있어요"

이정찬 기자 2018. 5. 31.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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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4인조 팝음악 그룹 '아바'가 36년 만에 재결합했습니다. 1972년 결성된 아바는 1982년 해체될 때까지 4억 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세계적인 그룹이죠.

그리고 '아바의 나라' 스웨덴 역시 꿈과 같은 스토리로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릅니다. 유로 2016 본선에서 E조 꼴찌로 탈락한 뒤 극적인 반전 드라마를 썼습니다. 러시아 월드컵 유럽 예선 프랑스, 네덜란드와 함께 '죽음의 조'에 속하고도 2위로 플레이오프에 올랐습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상대는 이탈리아. 60년 동안 본선에 꾸준히 올라 4차례나 정상에 섰던 이탈리아의 '빗장수비'를 뚫고 스웨덴은 본선행 티켓을 따냈습니다.

이탈리아를 꺾고 러시아월드컵 본선행의 기쁨을 만끽하는 스웨덴 선수들

30년 전 아바는 꿈을 노래했습니다.

I have a dream. If you see the wonder of fairy tale You can take the future even if you fail (나에겐 꿈이 있어요. 동화 속 놀라운 일들을 이해한다면 비록 실패할지라도 미래를 향해 나갈 수 있어요.) - I have a dream(1979)
 

[SBS 뉴스 사이트에서 해당 동영상 보기]


스웨덴 축구대표팀도 꿈을 꾸고 있습니다. 월드컵 최고 성적은 1958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차지한 준우승입니다. 러시아로 향하는 길목에서 그 언제보다 놀라운 일들을 해냈기에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안데르손 동화의 시작

그 중심에 얀네 안데르손 감독이 있습니다. 그는 무명 선수였습니다. 주로 스웨덴 하부 리그에서 뛰었고, 당연히 국가대표 경력도 없습니다. 2011년 처음으로 스웨덴 1부 리그 노르셰핑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4년 뒤 기적을 썼습니다. 스웨덴 리그의 '절대 강자' 말뫼를 꺾고 정상에 선 겁니다. 최근 5년 동안 말뫼가 우승을 놓친 건 이때가 유일합니다. 안데르손 감독은 인구 13만의 작은 도시 노르셰핑의 영웅이 됐습니다. 이듬해 위기에 처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걸출한 경력이 없던 안데르손은 축구 감독으로서 동화 같은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 원맨팀을 원팀으로

안데르손 감독은 곧바로 대표팀 체질개선에 나섰습니다. 스웨덴 축구 사상 최고의 스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LA갤럭시)의 그림자를 지워나갔습니다. 즐라탄은 A매치에서 스웨덴 사상 최다인 62골을 넣은 세계적인 공격수입니다. 즐라탄이 유로 2016 직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면서 안데르손 감독은 조직력을 다지는 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자신을 버리고 팀을 위해 희생하는 선수만 중용했습니다.

먼저 수비를 두텁게 쌓고, 빠르고 간결한 역습으로 승부를 냈습니다. 개인기와 기술이 화려한 선수보다는 힘과 스피드, 킥이 좋은 선수를 선호했습니다. 그 결과 조별예선과 플레이오프 12경기에서 실점이 9골에 그쳤습니다. 그 사이 27골을 넣었는데 역습(5골)과 세트피스(5골), 페널티킥(4골) 득점이 절반을 넘었을 정도로 효율이 좋았습니다.

● 즐라탄과 밀당

지난 석 달 동안 즐라탄 복귀와 관련한 안데르손 감독의 일관된 입장은 지도 철학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지난해 무릎 부상으로 그라운드를 떠났던 즐라탄은 지난 3월 미국 LA갤럭시로 이적 후 대표팀 복귀 가능성을 스스로 꾸준히 끌어올렸습니다, 미국 프로무대 데뷔전에서 환상적인 동점골과 역전 결승골로 조명을 받자 발언 수위를 점차 높여갔습니다.

"스웨덴 축구대표팀과 계속 연락하고 있다", "러시아 월드컵에 뛸 가능성이 무척 높아졌다"더니 "러시아월드컵에 뛸 것이다. 내가 없는 월드컵은 월드컵이 아니다"며 스웨덴 대표팀 복귀를 기정사실화 했죠. 그의 골장면이 워낙 강렬했기에 "월드컵 본선행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은 즐라탄이 합류하면 조직력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비판론도 조금씩 수그러들고 있었습니다.

안데르손 감독은 끝내 즐라탄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데르손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즐라탄과 어떤 연락도 한 적이 없다", "즐라탄이 대표팀 은퇴를 했다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고 재차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특급 대우를 바라는 슈퍼스타와 팀워크를 중시하는 감독 사이 자존심 싸움처럼 보였던 논쟁은 결국 스웨덴 축구협회가 "즐라탄이 대표팀에 복귀할 의사가 없다는 걸 직접 만나 확인했다"고 발표하며 조금 싱겁게 끝났습니다.

안데르손 감독으로선 경기 분위기를 한 번에 바꿀 '특급 조커' 한 명을 포기하면서 즐라탄에게만 미디어와 전술의 초점이 맞춰져 팀 분위기가 깨지는 걸 막아낸 셈입니다.

● 안데르손 동화의 결말은?

스웨덴 팬들은 이 동화가 '해피엔딩'이길 바랍니다. 라이프치히에서 활약하는 분데스리가 도움왕 출신 포르스베리, 알 아인에서 연일 골 행진을 펼치고 있는 베리 등 특정한 선수가 주인공이 되기보단 팀으로서 아름답게 승리하길 꿈꾸겠죠.

'한 방'이 있는 즐라탄의 복귀 불발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안데르손 감독의 결정을 지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 일간지 아프톤블라데트에서 20년 넘게 스웨덴 대표팀을 취재한 마이클 바그너 기자는 "스웨덴은 한국처럼 월드컵에 꾸준히 출전한 팀은 아니지만 본선 무대에 설 때면 늘 강한 모습을 보여줬다"며 "3월 평가전 결과(칠레전 1:2패, 루마니아전 0:1패)가 좋지 않지만 많은 팬들은 러시아에서도 안데르손 감독이 유럽예선에서처럼 스웨덴을 하나로 묶어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재결합한 아바가 연말 36년 만에 공개할 신곡의 제목은 I still have faith in you. (나는 여전히 당신을 믿고 있어요)입니다. 대표팀을 향한 스웨덴 축구팬들의 마음도 같을 겁니다.   

이정찬 기자jayce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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