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에 스낵바·레스토랑.. 젊은이들 찾는 섬 됐다
제주도 남서쪽 운진항에서 남쪽으로 15분 배를 타고 달리면 바다에 몸을 바짝 낮춘 섬 '가파도'가 나타난다. 섬의 가장 높은 지대가 해발 20m에 불과하고, 느린 걸음으로 25분이면 횡단할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이곳 주민들은 가파도를 '사람이 그리운 섬'이라고 부른다. 20여년 전 900명이었던 거주민은 10년 전 600명으로 줄었고, 지금은 150명만 남았다.

"해녀들은 자기 자식 절대 물질 안 시키려고 하거든. 섬에선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거지."(김동옥 가파리 이장)
희망이 없던 가파도에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현대카드가 2012년 제주특별자치도와 함께 '가파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부터다. 섬의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동시에 '관광지'와 '문화·예술 중심지'로 섬을 개발하는 장기 프로젝트다. 앞서 현대카드는 전통시장을 활성화하는 사회 공헌 활동으로 '봉평장 프로젝트'(2014년)와 '광주 송정역시장 프로젝트'(2016년)를 진행해 좋은 성과를 냈는데, 이번엔 섬 경제 활성화에 도전했다. 6년여에 걸친 새 단장 끝에 지난 4월 문을 연 가파도를 찾았다.
◇"젊은이들이 찾는 섬으로"
'가파도 프로젝트'는 현대카드 기획, 제주도 재정 지원, 섬 주민 참여 등 3박자로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의 바람은 청·장년층이 함께 사는 젊은 섬을 만드는 것이다. 가파도는 인구의 90%가 어업에 종사하고 절반 이상이 65세 이상인 고령 마을이다. '청보리 축제'가 열리는 5월에만 단체 관광객이 몰려 서비스업만으론 생계를 잇기 어렵다. 현대카드는 가파도를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섬으로 만들고자 했다.

우선 기존 건물과 폐가(廢家)들을 리모델링해 '가파도 터미널'과 '스낵바', '레스토랑', '가파도 하우스'(숙박시설) 등 현대적 디자인의 관광 시설로 탈바꿈시켰다. 주민 60여명이 출자한 마을 협동조합이 시설물을 운영하고 수익이 나면 주민들에게 나눈다. 프로젝트의 과실을 토착민들이 향유하도록 만든 개발 모델이다.
지난 25일 스낵바에선 해녀 조합원 이일순(58)씨가 현대카드 요리사에게 전수받은 조리법으로 '뿔소라 버터구이' '가파도 맛건빵'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냈다. 해녀들이 한창 물질을 하는 때인데, 이씨가 자원해 스낵바를 맡았다. 이씨는 "물질보다 적게 벌지만 프로젝트가 빨리 자리를 잡아야 관광객들이 더 많이 오고, 섬을 떠났던 젊은 주민들도 돌아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돌미역, 모자반, 청보리 등 가파도 특산물의 포장 용기를 새로 디자인하고 용량도 다양화했다. 가파도를 연상시키는 그림이 들어간 도자기컵 등 기념품들도 제작했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첫 달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진명환(57) 가파도 마을 협동조합 이사는 "한 달 결산을 해보니 가파도 프로젝트에서 총 1400만원 매출이 났다"며 "인건비 1100만원과 초기 투자 비용을 제하면 150만원 적자이지만, 초기 성과로는 '희망적'인 결과"라고 했다.
프로젝트 소식을 접한 20·30대 관광객도 예년보다 15%가량 늘었다. 가파도 터미널에서 만난 강지수(23·창원)씨는 "'인스타 감성'에 맞는 장소(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좋은 풍경이나 장소)가 많아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난개발 막고 문화 명소로 탈바꿈
가파도 프로젝트의 또 다른 핵심은 '난개발을 막고, 문화예술의 섬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주민들은 다른 섬들이 관광지로 인기를 끈 뒤 난개발로 엉망이 된 것을 보며 걱정했다고 한다. 진명환 이사는 "어느 섬을 가보니 마을 주민끼리 관광객 팔을 양쪽으로 잡아끌고 있더라"며 "그런 식의 개발은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지난달 12일 오픈 행사에 참석해 "가파도가 난개발의 악순환을 겪지 않고 생태계를 보전하면서도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길 바란다"고 했다.
국내외 유망 예술가들도 가파도로 모이고 있다. 가파도 터미널에서 서쪽으로 해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예술가 7팀이 거주하며 가파도를 소재로 창작 활동을 하는 '가파도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가 나온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영국의 테이트 모던,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추천한 예술가들이 6개월간 머물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주민 참여 예술 활동도 한다. 페루 출신의 예술가 일리아나 오타 빌도소, 영국 예술가 제인&루이스 윌슨 자매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설치 예술가인 양아치·정소영 작가 등이 입주해 있다.
김동옥(63) 가파리 이장은 "작가들이 어구(漁具)나 벌레를 그려와 이름을 묻기도 하면서 주민들과 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별도의 전시 공간에서는 누구든지 그들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 현대카드는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예술 활동을 활발히 전개해 가파도의 '문화적 가치'를 높여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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