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의 '나라살림을 제대로 바꾸는 법']'채무 제로' 꼼수, 무엇을 위한 채무 제로인가

입력 2018. 5. 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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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채무 제로를 선언한 용인시와 시흥시의 경우에도 4985억원과 1조9045억원의 부채가 남아있다. 채무 제로를 선언한 20개 지자체 모두 부채가 남아있다. 즉 채무 제로 선언은 꼼수라고 비판 받을 여지가 다분한 셈이다.

“경기도 채무 제로 선언은 거짓말” “잘못된 팩트에 대해 사과하라.”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이재명 후보와 남경필 후보(전 지사)의 논쟁이다. 지방선거가 본격화하면서 ‘채무 제로’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남경필 후보는 출마선언에서 “지난 연말까지 2조6600억원의 빚을 갚았고, 민선 6기가 마무리되는 6월까지 100% 채무를 상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재명 후보 측에서 경기도 및 행정안전부 공시자료 수치가 완전히 다르다며 채무는 여전히 2조9910억원이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 후보(위)와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의 '채무 제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 권호욱 기자 연합뉴스

그러자 남 후보 측은 이 후보 측이 제시한 2017년 결산 기준이라는 표현을 문제 삼았고, 이 후보 측은 남 후보의 3대 거짓말이라며 ▲3조원에 가까운 지방채 채무가 남아있는 점 ▲본인이 다 갚았다는 가짜채무(미지급금과 기금차입금)조차 5063억원이 남아있다는 점 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는 민선 6기에 도래하는 채무를 다 갚았다는 것이고, 남은 것은 7기에 갚으면 된다고 밝혔다. 결국 채무 기준에 대한 해석이 다른 것이다.

이는 민선 6기에서 치적 선전의 일환으로 채무 제로를 선언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양상이다. 하지만 양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디서 상반된 주장이 나타나는지 알 수 있다. 채무와 부채는 상당히 논쟁적인 요소가 많다.

문제는 부채가 아니라 재정관리 상태

먼저 개념부터 알아보자. 채무는 날짜와 금액이 정해져 있는 반면, 부채는 매년 변하기도 또는 변하지 않기도 한다. 또 채무는 현금을 빌려 이자를 지불하는 빚을 이야기하지만 부채는 이자지불이 없다. 부채는 ‘갚아야 할 빚’이라는 커다란 분류만 있을 뿐 매우 다양한 요소로 존재한다. 따라서 부채는 채무보다 큰 개념이다. 채무와 부채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채무는 부채에 포함된다.

따라서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빚’인지 아닌지에 따라 논란이 일게 된다. 이번에 문제가 제기된 채무 중에 ‘지역개발기금’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해당 기금은 자동차 등록, 건축 인·허가에서 발생하는 의무적 매입채권에서 발생했다. 이를 두고 갚고 한쪽에서는 발행하는 ‘돌려막기’이기 때문에 빚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쪽에서는 이자 2.5%를 지급하기 때문에 명백한 채무라는 상반된 주장을 한다. 이런 맥락을 보면 ‘채무 제로’ 선언은 정치적인 선언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내역을 이해하기 힘든 시민들은 채무가 없어진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게다가 이런 논쟁 대부분은 본청 예산을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상 시가 재정을 운영하는 산하기관이나 공기업의 부채는 제외하고 이야기한다는 의미다. 게다가 본청 예산만 본다고 해도 공무원의 퇴직금 등 부채가 있기 때문에 ‘채무 제로’라는 말이 성립하기는 어렵다. 얼마 전 채무 감축을 자축하며 ‘재정위기 탈피’를 선언한 인천시도 여전히 공기업 등에 10조원가량의 부채가 남아있어 논란이 됐다. 작년에 채무 제로를 선언한 경기도 용인시와 시흥시의 경우에도 4985억원과 1조9045억원의 부채가 남아있다. 채무 제로를 선언한 20개 지자체 모두 부채가 남아있다. 즉 채무 제로 선언은 꼼수라고 비판 받을 여지가 다분한 셈이다.

채무 제로 선언이 등장한 때는 2010년 즈음이다. 당시 지자체들이 재정위기를 겪고 있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모라토리엄’(지급유예) 선언은 그런 상황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이 시장은 부채의 대부분을 갚고 탈출을 선언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이재명 시장의 성남시는 채무 제로를 선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이라고 보인다.

빚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재정의 상태이다. 과도한 빚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줄여야 한다. 하지만 아예 없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재정구조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지자체들이 채무 제로를 선언하려면 부채의 규모와 내용을 정확히 알려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빚을 줄였느냐를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한 지자체는 한 곳도 발견되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지사 시절 발표한 채무 제로 선언도 그런 의미에서 논란이 됐다. 홍 후보는 채무를 갚았다고 주장했으나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은 빚을 줄인 방식을 문제 삼았다. ▲무상급식 등 사업을 중단해서 남은 돈과 ▲시·군 조정교부금 ▲매칭사업 도비 지원 등 시·군에 주어야 할 돈 ▲오랫동안 적립된 기금의 여유재원으로 갚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채무 제로를 선언할 때 그 내역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기도의 지자체들처럼 땅을 매각하여 빚을 갚는다든지 하는 것은 재산을 줄인 것이므로 본래적 의미의 채무탕감이라고 보기 어렵다.

빚도 문제지만 돈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자금관리의 문제가 있다. 수치상 빚이 없는 것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수치상 부채를 줄이기 위해 산하기업이나 공기업, 더 나아가 민자사업 등으로 빚을 이전하는 풍선효과가 나기 쉽기 때문이다. 또 차라리 본예산에서 지방채로 남아있으면 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노력할 유인효과라도 있는데 이전되어 있으면 그만큼 책임성이 약화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단체장들은 치적 쌓기 일환으로 채무 제로를 선언하고 수치상의 빚만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나아가 엄연히 존재하는 빚도 사실상 빚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또 재미있는 점은 지자체들이 늘 빚에 허덕이는 것 같지만 실제 지자체들의 수입은 매년 10% 이상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초과세입 등 사용이 정해지지 않은 순세계잉여금이 전체 지방자치단체 예산의 20%가 넘는다. 경상남도 진주시의 경우 2016년 결산 결과 예산액수의 38%나 잉여금이 남아서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100원 수입에 38원이 남아있다는 이야기이고, 전국은 20원이 남아있는 것이다. 즉 빚도 문제지만 국민들의 세금을 사용할 곳도 못 찾고 있는 셈이다.

이제 민선 7기 새로운 지방자치단체가 한 달 후면 출범한다. 과도한 빚은 줄여야겠지만 있는 돈을 어떻게 잘 사용할 것인가 하는 중대한 과제가 남아있다. 정책은 타이밍이다. 돈을 아껴 안 쓰는 것은 낭비하는 것에 못지않게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정책 목표이다. 재정은 그 수단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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