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worldcup] 개최국 러시아의 잃어버린 10년

편집팀 2018. 5. 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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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포투=Michael Yokhin]

‘우리나라’에서 FIFA월드컵이 열린다. 희망과 기대가 넘쳐야 한다. 지금 개최국인 러시아 팬들은 그렇지 않다. 16강만 올라도 성공적이라는 분위기다.

국민 대다수가 A조 탈락을 예상한다. 첫 경기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꺾지만, 이집트와 우루과이에 패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2010년 남아공에 이어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두 번째 개최국. 지금 러시아 국내의 분위기는 딱 이렇다. 월드컵을 7년이나 준비한 국가대표팀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월드컵 유지 확정(2010년) 당시만 해도 러시아 축구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유로2008에서 러시아는 4강에 올랐다. 네덜란드를 3-1로 꺾었던 경기력은 환상적이었다. 스타플레이어인 안드레이 아르샤빈을 보유했고, 로만 파블류첸코, 콘스탄틴 지르야노프, 파벨 포그레브냑, 이고르 아킨페프 등도 수준급 선수들이었다.

러시아는 2010 남아공월드컵 본선행에 실패했다. 유럽 플레이오프에서 슬로베니아에 원정득점에 밀린 충격적 결과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시적 좌절로 보였다. 중립 팬들도 남아공월드컵에 나서지 못하는 러시아를 동정했다. 좋은 선수들을 보유한 팀의 뛰어난 경기력을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클럽 무대에서도 러시아는 실적을 남겼다. CSKA 모스크바가 2005년 UEFA컵(현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했고, 2008년에는 제니트가 같은 업적을 남겼다. 두 팀은 러시아 국가대표팀에 선수들을 제공하는 양대산맥이었다. 유럽 최정상 수준은 아니었지만, 격차는 크지 않았다. 러시아 국민이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할 수 있다고 기대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우승권은 아니더라도 다크호스로서는 손색이 없었다. 유로2012를 앞둔 시점에서 러시아는 정확히 그런 평가를 받았다. 거스 히딩크에 이어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하는 러시아는 공격 축구로 매력을 발산했다. 유로2012 첫 경기에서 러시아는 알란 자고예프를 앞세워 체코를 4-1로 대파했다. 그러나 폴란드와 비긴 다음에 그리스전에서 뜻밖의 패배를 당하는 바람에 조 3위에 그쳤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자고예프를 짚고 가야 한다.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 자고예프는 아르샤빈을 뛰어넘을 능력을 지녔다고 호평받았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설이 나올 정도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자고예프는 CSKA에서 뛴다.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한 채 성장이 멈춘 느낌이다.

주된 원인은 동기부여 부족이었다. 쉽게 말해 자고예프는 거물이 될 필요가 없었다. 아르샤빈과 파블류첸코는 빅리그에서 뛰고 싶어 했기 때문에 소속팀은 두 선수를 프리미어리그 구단으로 보내야 했다. 2018년 월드컵 유치에 성공한 직후, 러시아축구협회는 국내 리그 경기의 외국인 출전 수를 줄이기로 했다.

국내 선수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조처였다. 정책은 역풍을 맞았다. 러시아 국내 유망주의 몸값이 폭등했다. 마땅한 외국인 경쟁자가 없는 덕분에 국내 선수들은 치열한 주전 경쟁 없이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환경을 누렸다. 자국 스타들은 고액 연봉과 주전 경쟁이 보장되는 국내 리그를 굳이 떠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러시아 스타들은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빅클럽에서 적당히 뛰어도 큰돈을 벌 수 있었다.

한편, 러시아 구단들은 씀씀이를 키워 외국 유명 선수를 영입했다. 당시 어려움을 겪던 포지션은 대부분 중앙수비수였다. 외국인 수비수들이 점령한 러시아 리그의 중앙수비수 포지션에서 이제 러시아 중앙수비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 CSKA의 알렉세이와 바실리 베레주츠키 형제, 세르게이 이그나셰비치를 제외하곤 수준급 러시아 중앙수비수는 멸종했다.

CSKA 중앙수비수 3인방은 자연스레 러시아 국가대표팀 내에서도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아쉽게도 그들을 대체할 후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올여름 이그나셰비치는 만 39세, 알렉세이 베레주츠키는 36세가 된다. 유로2016을 끝으로 은퇴한 지금, 러시아의 중앙수비수 포지션에는 큰 구멍이 뚫린 채로 방치되었다. 2018년 월드컵을 목전에 두고 이그나셰비치는 대표팀에 복귀해야 했다.

2012년 러시아축구협회는 장기발전계획 수립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유명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게 된 이유였다. 최대 거물은 연봉 1천만 유로를 약속하고 선임한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었다. 러시아는 이탈리아 명장이야말로 러시아 대표팀을 강하게 만들어줄 적임자로 믿었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카펠로 감독의 지도 방식은 구식인 데다 러시아 선수들의 사고방식도 이해하지 못했다. 부임과 동시에 카펠로 감독은 아르샤빈을 내쳤다. 2014 브라질월드컵 기간 중 대표팀 캠프를 군대처럼 강한 규율을 강요한 것도 패착이었다. 어린 선수를 발굴하지 않으면서 자고예프도 신뢰하지 않았던 탓에 대표팀 분위기가 망가졌다. 선수 선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언론과 관계를 스스로 악화시켰다.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직후 협회는 카펠로 감독을 해임하지 못했다. 시간만 허비한 채 이듬해 7월 유로2016 본선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진 다음에야 카펠로 감독은 짐을 쌌다. 러시아축구협회는 후임으로 레오니드 슬루츠키 감독을 선택했지만, 소속팀이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슬루츠키 감독은 파트타임 감독으로 유로2016에 나서야 했다.

유로2016 개막 전까지 밝았던 분위기는 대회가 진행되면서 무너졌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에 슬루츠키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다. 러시아축구협회는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뚜렷한 적임자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러시아는 스타니슬라프 체르체소프 감독을 선임했다.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는 지도자였지만, 다른 후보들은 수준이 더 떨어졌기 때문이다.

체르체소프 감독은 난제를 떠안았다. 2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러시아 대표팀의 모든 문제를 고쳐야 했다. 중앙수비수와 최전방 스트라이커를 찾아야 했다. 국내에서만 뛰는 대표팀 선수들이 큰 무대의 빠른 템포에 따라가지 못하는 문제도 개선해야 했다. 2017년 FIFA컨페더레이션스컵 조별리그에서 러시아는 포르투갈과 멕시코에 패해 탈락했다. 오랜만에 살아난 투지가 위안이었다.

운도 체르체소프 감독을 돕지 않았다. 컨페더레이션스컵의 최대 수확은 게오르기 지키야, 빅토르 바신, 피오도르 쿠드리야쇼프가 선보였던 수비 조직력이었다. 최고의 실력을 갖추진 못했어도 최소한 동기부여는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2018년 지키야와 바신이 무릎 부상으로 고전하고 있다. 골잡이 알렉산드르 코코린도 곤경에 빠졌다. 2017-18시즌 초반 게으르다는 이미지를 버리는가 싶었지만, 무릎 연골이 찢어져 월드컵 꿈이 산산이 조각났다.

몇 년 전부터 러시아축구협회는 외국인 선수의 귀화까지 동원했다. 우크라이나 태생 독일 국적의 로만 노이슈테터와 브라질 국적 골키퍼 길헤르메는 러시아 유니폼을 입고 유로2018에 출전했다. CSKA의 브라질 라이트백 마리우 페르난데스도 러시아월드컵에서 선발 출전이 유력하다. 시베리아에서 태어났다가 어린 시절 독일로 이주한 독일 국적의 콘스탄틴 라우슈까지 불러들였다.

현재 러시아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춘 선수는 아킨페프가 유일하다. 그러나 2014년 월드컵과 2017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연달아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평소 안정적 방어를 펼치지만, 큰 무대에 설 때마다 불거지는 실수는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다.

희망이 아예 없진 않다. 최근 젊은 미드필더들이 희망을 던진다. 스파르타크의 로만 조브닌, CSKA의 알렉산드르 골로빈, 제니트의 달레르 쿠즈야에프가 기대를 모은다. 로코모티프의 쌍둥이 형제 알렉세이와 안톤 미란츄크도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인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여전하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 러시아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싶어 한다. 그런데 월드컵 중은 물론 이후까지 터널이 이어질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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