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의미? 난이도와 숙련도 변화에 따라 달라져
[게임의 법칙-82] ◆난이도와 숙련도의 긴장:게임의 의미발생 지점
게임의 의미는 어디에서 나올까? 나는 주로 난이도와 숙련도가 만드는 긴장에서 나온다고 보는 편이다. 게임이 가상의 공간에 현실적인 무언가를 그려내는 방식은 대개 무언가를 일련의 규칙화를 통해 그려냄으로써 이루어지곤 한다. 규칙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계 안에서 플레이어는 때로는 생존하려 하며, 때로는 누군가를 정복하려 들고, 무언가를 만들려 하거나 주어진 퍼즐을 풀려고 한다.
이 과정은 타 매체들과 다른 게임의 의미를 규정 짓는 과정이다. 의미의 발생 지점이 매체가 담아낸 메시지나 콘텐츠가 아니라 실제 매체 수용자로서-수용자라는 표현이 무의미할 정도로-게임의 플레이어와 콘텐츠의 사이, 다시 말해 콘텐츠의 바깥에 잡히기 때문이다. 게임은 단지 세계를 설계할 뿐이고, 그 세계의 창조적 완성은 이러한 의미에선 게이머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난이도와 숙련도에서 나오는 긴장은 게임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만들어지는 지점이다. 이 둘의 긴장은 단순한 자동 기계에 동전을 넣는 시대 이후 플레이어의 숙련도가 개입하기 시작한 이래 언제나 중요한 테마였다.
이 둘의 대비는 대체로 고정된 게임의 난이도 제시와 사용자의 경험에 따라 변화하는 숙련도의 대응이라는 형태로 이해돼 왔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게임의 규칙이 제시하는 난이도는 결코 불변의 법칙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게이머의 숙련도 또한 단지 고정된 의미로만 머무르는 것도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 둘의 의미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게임의 해석에 있어 새 분류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의미를 갖기도 한다.
◆숙련도의 변화-게이머의 신체에서 데이터베이스로
2018년 초반을 뜨겁게 달구는 인기 게임 '몬스터 헌터:월드' 는 시리즈 대대로 만만한 게임이었던 적이 없었다. 어려운 난이도로는 이제 인터넷 밈의 경지에 오른 '다크 소울' 시리즈는 'YOU DIED'라는 문구가 대명사가 될 정도로 플레이에 상당한 숙련도를 요구하는 게임이었다. 얼마 전까지 각종 인터넷 게임 스트리밍을 휩쓸었던 이른바 '항아리 게임' 'Getting over it'은 한 번의 미스로 가까스로 올라선 곳으로부터 한순간에 시작 지점으로 리셋되는 가차없는 규칙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들 게임의 공통점은 괴랄한 난이도에 대응하기 위한 게이머의 숙련도가 신체에 쌓인다는 점이다. 꾸준한 실패와 좌절 속에 게이머들은 점차 게임 속에서 자신의 컨트롤과 센스를 익혀 나간다. 처음에는 어려웠던 콤보 동작이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적의 움직임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시절을 지나 미세한 사전동작 하나만으로도 다음 대응을 반사적으로 끌어낸다. 말과 글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컨트롤 방식은 어느새 손에 익어 자신의 의지대로 게임 속 캐릭터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마냥 어려워만 보이던 보스 몹을 잡아내고 불가능해 보이던 언덕을 넘으며 이루어지는 난이도 극복은 좀처럼 맛보기 힘든 성취감이다.
그러나 모든 게임이 이러한 성취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근 대세를 이루는 흐름은 그 반대 측면에 자리한다. 모바일 액션롤플레잉 게임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하는 별도의 숙련을 이들 게임은 요구하지 않는다. 반대로 간편하고 손쉬운 조작으로 강력한 플레이를 뽑아낼 수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게임들에서 게임이 제시하는 난이도를 넘어설 수 있는 무기로 플레이어에게 제시되는 것들은 숙련도가 아니라 게임 캐릭터의 레벨과 아이템 달성도다. 현재 내 캐릭터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레벨에 도달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스킬 사용과 무빙을 연습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받지 못한다. 대신 플레이어는 좀더 낮은 난이도를 이른바 '뺑뺑이' 돌며 레벨업을 하거나, 더 강한 장비를 파밍하거나, 아니면 캐릭터를 강화할 수 있는 현금결제를 제안받는다.
이는 앞선 숙련도 개념을 다시 가져온다면 조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게이머의 신체에 축적되던 숙련도가 현대 모바일 액션롤플레잉 게임에서는 레벨과 아이템이라는 데이터 축적으로 대체되었다는 점이다. 난이도에 대응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숙련도가 게이머의 신체에 있거나, 혹은 게임 안의 데이터로 자리한다는 점은 앞서 언급한 대로 게임의 의미가 게임과 수용자 밖의 사이 지점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함께 고려한다면 두 분류의 게임이 갖는 의미를 완전히 갈라놓는 중요한 포인트다. 게임의 숙련도는 적어도 지금의 게임 현실에서라면 한 가지 의미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난이도의 문제:규칙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관하여
CD롬이나 디스크를 넘어 롬팩 형태로 게임 콘텐츠가 유통되던 시절,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기기 자체에 게임 소프트웨어가 탑재되던 시절의 게임들이 갖는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지금에 비해 고정된 난이도였다. 물론 오락실 주인 아저씨는 기판의 스위치 세팅을 통해 난이도를 조정할 수 있었고, 게임 시작 시 플레이어는 자신의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는 게임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지금 이야기하려는 난이도 변화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맥락의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가 비교해 볼 대상은 온라인 네트워크 시대를 맞이해 변화하기 시작한 게임의 난이도다.
PC방 등을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여러 종류의 온라인 대전 기반 게임들을 생각해 보자. 게이머들 사이에서 이른바 '메타' 라는 표현이 존재하는데, 이는 특정 게임에서 유리한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캐릭터, 아이템, 전략의 유행을 가리키곤 한다. 사실 전략이라는 단어와 바꿔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이 개념의 흥미로운 점은 패치마다 주류 메타가 변화를 겪는다는 점에 있다.
단순한 버그 패치 등의 문제가 아니라 잘 돌아가는 게임 안에서도 제작사들은 운영의 측면에서 게임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내기 위해 기존에 구성된 난이도의 규칙을 변경하곤 한다. 세계적인 e스포츠로 성장한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경우 공식적으로 매번의 e스포츠 리그 일정에 맞물리면서 새로운 게임의 메타를 패치를 통해 주도하고 있다. 또 신규 캐릭터의 등장과 기존 캐릭터의 기능 변경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게임의 난이도를 바꿔 나간다. 이 과정에서 일부 억울함을 호소하며(심각하지는 않다) 자신의 주력 캐릭터가 바보가 되는 상황을 한탄하는 이들도 나타난다. 반면 늘상 '고인'으로 분류되던 자신의 애정 캐릭터가 상향되면서 기뻐하는 경우도 생긴다. 어쨌든 주목할 지점은 자신의 숙련도로 만들어 둔 난이도의 도전 상황이 난이도의 변경에 의해 바뀌었다는 사실을 대다수의 게이머들이 어느 정도 수긍하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비단 사람 대 사람의 대전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레이드' 등의 이름으로 게임 안의 거대 보스와 전투를 벌이는 것이 중심이 되는 게임들에서도 간혹 난이도 조정이 이루어지곤 한다. 이러한 난이도의 변경은 난이도와 숙련도의 긴장으로 만들어지는 게임의 의미가 스탠드 얼론 시절에는 불가능했던 난이도의 변경이라는 방식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새로운 경우의 수를 만들어낸 것이 된다.
난이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팩맨'의 유령 이동 속도가 어느 날 게이머들이 이제 너무 익숙해져 갑자기 빨라지게 됐다면 이를 게이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지금의 온라인 기반 게임들의 패치 내역과 같은 의미가 될는지 아니면 달라진 게임의 방식을 '팩맨 1' 과 '팩맨 2'로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다만 입장이 달라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꼽는다면, 게임의 난이도가 변화했을 때 그 정도에 따라 이를 게임 콘텐츠의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구분은 가능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난이도와 숙련도는 상호 긴장이라는 측면에서는 한결같지만, 여러 게임에서 그 의미는 다양하게 변화돼 나타난다. 고정된 난이도와 변화하는 난이도, 게이머에게 누적되는 숙련도와 데이터베이스로 기록되는 숙련도 외에도 다양한 변수가 추가되면서 변화하는 난이도와 숙련도의 문제는 더 다양한 층위를 나타낸다. 변화하는 난이도라면 그 변화의 이유가 게이머의 숙련도 향상으로부터인지, 게임 플레이타임을 조절하기 위한 제작사의 의도로부터인지가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데이터베이스로서의 숙련도라면 그 숙련의 축적이 단지 게임 플레잉타임만으로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게임 콘텐츠 외적인 측면에서의 추가 결제로 소화되는 것인지 등이 한 번 더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의 의미를 만드는 난이도와 숙련도는 추가적인 고찰을 통해 게임의 분류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서도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이경혁 게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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