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 4m에 얼룩진 분단의 상흔..판문점 T2~T3 사이 65년

유선의 입력 2018. 4. 24. 20:17 수정 2018. 4. 2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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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의 현장'서 '평화의 현장'으로

[앵커]

사흘 뒤면 김정은 위원장이 걸어내려올 판문점을 우리측 자유의집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북측 판문각과 우리 측 자유의집 사이에는 하늘색 건물 세 동이 있는데 왼쪽부터 T1, T2, T3라고 불리우죠. T는 '임시의'라는 뜻을 가진 영어 Temporary의 앞 글자입니다. T1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이고 그 옆의 T2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끝에 있는 T3는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의 이름입니다. Temporary…말 그대로 임시로 쓰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건조물인데, 그 예상은 빗나갔고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 65년동안 이 'Temporary'라는 이름의 건물은 남북의 경계선이 됐습니다.

65년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T2와 T3 사이 콘크리트 경계석을 넘어가고 또 넘어오면서 환호하기도 하고 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도 사흘 뒤에 바로 분단 역사를 상징하는 T2와 T3 사잇길을 밟아서 내려올 가능성이 큽니다.

폭 4m에 불과하지만 분단의 상흔으로 얼룩진 T2와 T3 사이의 역사를 유선의 기자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기자]

1978년 6월 13일 판문점 T2와 T3 사잇길.

길이 20m, 폭 4m 남짓 공간에 남북과 유엔사 소속 병사 수십명이 늘어섭니다.

한 달 전 우리 해군에 붙잡힌 북한의 무장 선박 승무원 8명이 이 길을 따라 북측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들이 갑자기 남측 물건은 필요없다고 소리치며 선물을 집어던지고 옷을 내팽개칩니다.

그리고 속옷 차림으로 판문각 계단을 오르며 만세를 외쳤습니다.

폭 50㎝, 높이 5㎝의 콘크리트 경계석을 넘자마자 벌어진 일입니다.

1976년 8월 북한군의 '도끼만행 사건'으로 그어진 군사분계선입니다.

1989년 8월에는 세계 청년학생축전 참석차 평양에 갔던 대학생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도 T2, T3 사잇길로 돌아왔습니다.

2010년에는 평양에서 두 달 넘게 머물다 돌아온 한상렬 목사가 이 곳에서 체포됐고, 2012년에는 꽃다발을 든 노수희 범민련 부의장이 군사분계선 앞에서 만세를 외쳤습니다.

[노수희/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 조국통일 만세!]

노씨 역시 군사분계선을 넘자마자 체포됐는데 수사관들과 거칠게 몸싸움을 벌여 환송 나온 북측 인사들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T2, T3의 사잇길은 한동안 한 쪽에선 박수를 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체포하는 게 공식이 돼버렸습니다.

발등 높이에 불과한 군사 분계선은 영화 속에서도, 바람에 날려간 모자조차 주우러 갈 수 없는 한없이 높기만한 벽입니다.

흑백사진으로만 남아있는 1953년 군사분계선 확정 직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입니다.

훨씬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고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의 옷도 세련돼졌지만 남북 대립의 역사가 새겨진 군사분계선을 둘러싼 긴장감만큼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27일 오전 전 세계의 관심 속에 T2, T3 사잇길에서 또다른 역사가 시작됩니다.

(화면 출처 : 유튜브 (KTV 대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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