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완식이 만난 사람] 가짜와 진짜, 그 모호한 경계를 침범하다

편완식 2018. 4. 2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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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액세서리로 '창작'하는 오세린 작가 / 길거리서 파는 이미테이션 수집 / 가짜 조합해 오리지널리티 제작 / 명품만 강요하는 사회에 메시지 / 작가만의 '진짜'에 관객들도 호응 / '진짜란 무엇인가' 또 던진 질문 / 카피캣 공장에서 대량복제 작업 / 짝퉁의 생산, 작가 세계로 편입 / " 최상과 최하 소통서 쾌감 느껴"

나는 왜 거리 액세서리들의 반짝임에 눈이 팔릴까. 다른 사람과 달리 나는 왜 유독 저렴한 것에 눈길이 갈까. 대학 시절 오세린 작가의 고민(?)이었다. 원인을 파고들다 보니 20대 특유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지난 주말 찾은 그의 전시회는 보석 장신구 전을 방불케 했다. 반지 등이 진열장에 놓여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고급 액세서리숍이었다. 대학 시절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생각했지만 또래 학생들의 소비패턴에 주눅이 들었다. 액세서리의 아이템이 달랐던 것이다. 치장 욕구가 강했던 시절, 유사보석으로 대리만족의 탈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비슷해져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저가 액세서리를 모티브로 작업하는 오세린 작가. 그는 “가짜와 진짜의 팽팽한 경계 같은 것들을 허물어 사람들에게 숨쉴 수 있는 숨통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예술의 몫”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의 나는 유난히 명랑했지만 나보다 부유한 친구들에 대한 자격지심이 컸고 같이 어울리는 미대 친구들과 옷차림새를 비슷하게 꾸미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기도 했다. 돈으로 구분된 계층은 눈에 보이는 것이었고,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 것 같다. 그러던 중 틈틈이 금속공예 수업을 들었고, 만드는 재미가 너무나 컸던 나머지 ‘장신구’ 수업을 무려 4학기에 걸쳐서 연달아 수강했다. 전공 수업보다 열심히 작업대 앞에 앉아있었고 디자인을 하고 망치질을 하며 브로치도 만들고 목걸이도 만들었다.”

창작자의 관점에서 명품 브랜드보다 더 멋있게 만들자는 오기가 발동하기 시작했다. 명품보다 더 잘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자위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우선 명품 모조품인 길거리 이미테이션들을 수집했다. 중국과 베트남 등에서 만들어진 저가 액세서리들이다. 대부분 명품디자인을 베낀 것이다. 그것들을 조합해 나만의 명품을 만들어 갔다. 하나둘 붙이거나 떼어내는 방식이다. 이미테이션을 모아 명품 오리지널리티를 만드는 것이다. 일종의 융합방식이다. 스케치로 디자인의 윤곽을 잡아가고 본을 떠 액세서리를 만들어 갔다. 가짜들의 합창이 얼마나 진짜같이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은밀한 계략도 숨겨져 있었다. 가짜를 조합해 작가만의 진짜를 만들었던 것이다.

관건은 최고 상류층을 매혹시킬 수 있느냐 하는 문제였다. 구매를 유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소비피라미드를 해소시키고 전복시키고 싶었다.

“일종의 나만이 부릴 수 있는 사치였다. 세상에 대한 심술의 크기만큼 가짜와 진짜를 구분 지었고, 흉내내기 위해 만들어진 값싼 액세서리 중에서도 가장 가짜다운 것들을 모았다. 그 물건들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꿔주고 싶었다. 내가 느껴온 계급의 피라미드를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전복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렇게 설정해놓은 틀 속에서 작업은 격하게 환영받기도 했고, 세상의 톱니바퀴 틈으로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작품 ‘모방과 속임수’시리즈
보그코리아 모델소품
작품들의 갤러리 전시가 이어졌고 국공립미술관과 박물관에 몇 개월간 전시가 되기도 했다. 압구정과 신사동에 있는 고급 매장과 백화점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작품들이 놓여졌다. 유명 패션잡지 속 모델의 소품으로도 등장했다. 100여점의 작업 아이템을 그렇게 세상속으로 쏟아 놓았다.

“나는 기뻤다. 그러나 이내 회의감이 들었다. 무엇이 가짜이고 무엇이 진짜인가에 대하여. 내가 구분 지어 놓은 가짜와 진짜라는 근본적인 개념에 대하여. 싸구려 모조품은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값비싼 브랜드 또한 저마다의 가치가 있지 않은가. 무수한 가짜로부터 나는 위로받지 않았던가. 지금도 내 작품들은 저마다의 운명이 있는 듯 이곳저곳에서 전시되고 있다. 하지만 나의 고민은 좀 더 깊어지고 오래 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가짜는 무엇이고 진짜는 무엇일까.”

어쩌면 작가들은 가치 혁명을 꿈꾸는 자들인지 모른다.

“작가 하나가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이런 시도가 마치 게임처럼 사람들한테도 조금씩 자극이 될 것 같다. 사람들에게 숨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술의 역할이 그런 것이 아닌가. 가짜가 명품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작은 숨통이 돼 준다는 점에서 예술과 상통되는 아니러니가 있다.”

오 작가는 지난 몇 년간 거리 액세서리를 수집해,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반지와 브로치 등을 만들어왔다. 2016년과 2018년에 전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액세서리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공장이 몰려 있는 중국 이우와 베트남 동반을 방문해 사진과 영상작품을 만들어 ‘진짜란 무엇일까’ 질문을 던져보기도 했다. 아예 베트남 동반 액세서리 공장엔 디자인을 제공해 제품을 만들기도 했다. 한정된 제품은 작품으로 돌아왔고, 대신 동반 액세서리공장엔 디자인을 무상으로 넘겼다. 자칭 ‘카피캣(copycat·오리지널 제품을 베껴서 비슷하게 흉내 내 만드는 것)’ 전문으로, 어떤 브랜드의 상품이라도 일주일이면 대량 복제가 가능하다.

“애초에 ‘가짜와 진짜의 경계’를 화두로 삼아 왔기에 나의 원본을 그들의 생산방식에 던져 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론 그들의 생산구조를 작가세계로 끌어 와 흡수해버린 꼴로도 생각할 수 있다.”

끌고 오고 던져 보는 예술의 열린 자세를 상기시켜 준다.

“사실 우리 주위의 물건들은 모방한 것들의 천지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게 진짜일 수 있다.”

동반 공장에서 만들어 가져 온 것과 동반 공장에서 자체적으로 대량 복제한 것을 가짜냐, 진짜냐 프레임에 넣어 논란을 일으키는 것조차 무의미해졌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것이다.

“보석전문컬렉터들이 제 생각에 동의해 수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와 진주 등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고 있다. 내 방식대로 만든 액세서리에 세팅해 전시도 하고 있다. 결국 보석컬렉터들은 자신만의 보석액세서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작가와 컬렉터의 가치 소통이란 얘기다. 가짜 싸구려와 명품의 조인트인 셈이다.

“이것이 작가만이 누릴 수 있는 쾌감이다. 소비피라미드에서 가장 바닥의 것을 끌어올려 최상의 것과 매치시키는 일, 다시 말해 최상의 것을 최하의 것으로 끌어내리는 일은 예술만이 할 수 있다.”

오 작가는 오는 5월5일 서강대역 근처 문화공간 숨도에서 색다른 라운드테이블을 연다. 4개의 케이크에 120개의 포크가 펼쳐진 토크무대다. 싸구려 플라스틱 포크에서부터 20세기 중반 호텔 은포크, 니케아 포크, 작가 작품 포크 등으로 케이크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펼치는 무대다.

다양한 포크의 매력을 논하면서 작가는 어떤 태도로 작업을 해야 하나를 모색하는 자리다.

서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금속공예를 부전공한 오 작가는 늘 색다른 시도로 주목을 받아 왔다. 대학 졸업전에선 동대문시장에서 구해 온 옷감샘플로 수묵화를 구현해 눈길을 끌었다. 천을 잘게 조각내 붙여 수묵화의 붓 선을 살렸다. 액세서리 작업은 대형 설치작업으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분명 그의 ‘아름다운 실험’이 한국미술을 더 풍요롭게 가꿀 것이다.

편완식 객원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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