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깎고 입대했더니 귀가하라?
ㆍ병무청 신검선 입대 판정·입영부대 신검선 귀가 판정… 한 해 1만명 넘어
대학 휴학 중인 박모씨(21)는 지난 2월 가족과 친구들의 작별인사를 뒤로 하고 경기도의 전방사단 신병교육대로 입소했다. 그러나 박씨는 사흘 뒤 다시 신병교육대 문을 나서야 했다. 입소 후 신체검사에서 재신체검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군복무의 맛도 보기 전에 영문을 나선 박씨는 잠깐의 해방감을 맛보기는 했지만 이내 ‘꼬여버린’ 향후 일정을 걱정해야 했다. 당초 계획대로면 내년 11월에 전역해 다음 봄학기에 복학할 수 있었지만 재입대 날짜가 밀려버린 터라 봄학기 개강 전에 제때 전역할 수 있을지가 불투명해졌던 것이다.

군생활을 대비해 바짝 자른 짧은 머리로 돌아온 박씨를 보고 가족과 친구들은 모두 놀랐다. 사단 신교대에서 박씨를 집으로 돌려보낸 이유는 박씨가 과거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박씨는 “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한동안 우울해 하며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걸 보다 못해 부모님이 치료를 받게 했고 다행히 빨리 회복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부대 신체검사에서 과거 진료이력을 말하라고 할 때 우울증 치료 경험을 말한 게 이런 결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병무청 병역판정 신체검사를 받을 때도 당시 치료 받던 병원의 진단서를 가져가긴 했지만 엄격한 양식의 ‘병무용 진단서’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당의사에게서 현역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은 바 있다. 박씨는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싶었기 때문에 별다른 조치는 하지 않고 넘어갔다.
재입대 과정 복학 시기 안맞아 발동동
부대에서 집으로 돌아온 박씨는 바로 재신검 날짜와 함께 재입영 신청이 가능한 때가 언제인지 알아봤다. 박씨가 앓았던 우울장애는 6개월 이상 치료를 받는 등 상태가 중하면 4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박씨는 현역병으로 복무하고 싶었고, 실제로 박씨의 치료 이력으로는 4급 판정을 받기도 어려웠다. 문제는 재입영 날짜였다. 대학생들이 전역 후 ‘칼복학’이 가능한 2월 입대는 입대 신청을 할 때도 나름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하지만 박씨가 현 시점에서 가장 빨리 재입영할 수 있는 달은 올해 6월이다. 내후년 3월 중에 전역하게 되므로 복학 일정이 꼬이고 마는 것이다. 박씨는 “우울증 치료 받은 게 군생활에 문제가 되면 차라리 병무청 신검에서 인성검사할 때 거르거나, 문제가 없으면 신교대까지 간 사람을 굳이 귀가시킬 필요가 없게 해야 할 텐데 두 곳에서 서로 다른 소리를 한 탓에 정작 입대하고 싶은 사람은 몇 달을 허비하게 된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박씨처럼 한 번 입소했다가 귀가조치를 받고 다시 군대 문을 두드리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최근 들어 이렇게 귀가조치를 받는 병역의무자들이 늘고 있는 추세다. 병무청 검사에서 현역병으로 판정 받아 입대했다가 입영부대 신체검사에서 질병 등을 이유로 귀가하는 병역의무자는 2017년 1만206명에 달했다. 2013년의 4577명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많아진 것이다. 귀가자 수는 2014년에는 4827명으로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보였으나 2015년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7140명을 기록했고, 2016년에는 처음으로 1만명을 넘겨 1만997명에 달했다. 지난해는 전년인 2016년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015년부터 입영 후 귀가조치를 받은 인원이 급증한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 국방부와 병무청 관계자들은 명확한 이유는 알기 어렵다며 원인을 파악하려는 조치가 없었음을 내비쳤다. 가장 많은 병력을 운용하고 있는 육군본부에서는 보충대가 없어지고 각 사단 신교대로 입영하는 정책이 실시된 것을 원인으로 추정했다. 경기 의정부시에 있던 306보충대가 2014년 12월 해체되고, 강원 춘천시에 있던 102보충대도 2016년 9월부터 입영장병을 받지 않으면서 육군 현역 입영자들은 육군훈련소나 각 사단 신교대로 입소하게 된 것이다. 육군본부 관계자는 “한 번에 200~300명 정도의 입영장병을 받는 사단 신교대와는 달리 과거 보충대에서는 많은 병력을 한꺼번에 모아 신체검사를 실시해 군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장병들을 걸러내는 데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현재는 각 사단에서 관리 가능한 비교적 소수의 입영장병을 신검 후 훈련시키기 때문에 군복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된 입소자들을 귀가시키는 비율이 좀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충대 해체 후 건강상의 이유 등을 문제로 각 사단 신교대 신검에서 귀가조치를 내리는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 병무행정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였다고 볼 수만은 없다. 현재 입소 후 귀가조치를 내리는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3개월 이상의 치료기간이 필요한 경우와 1~2개월 경과 후 재신검 없이 다시 입영하는 경우, 그리고 병무청 신검의 병역판정을 바꿔야 할 필요가 커 즉시 재신검을 신청할 수 있는 경우다. 일정 기간의 치료기간이 필요한 경우나 즉각 재신검 후 병역판정 변동이 필요한 경우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병무청에서는 충분히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다고 판정했는데, 일선부대에선 1~2개월 동안 더 지켜봐야 한다고 보류하는 경우 일관성 없는 병무행정으로 병역의무자만 시간상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병무청 자료를 보면 귀가조치를 받은 병역의무자들은 재입영까지 평균 4.5개월을 대기한다. 입영과 귀가조치, 재입영이 반복돼 5회 이상 귀가조치를 받은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최대 22개월 이상을 허비하기도 했다.
“신체검사 주체 일원화해야” 중론
특히 귀가조치를 받은 병역의무자 가운데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경력이다. 2017년의 귀가자 중 55.3%가 정신과 치료 문제를 이유로 집으로 돌아갔다. 병영 내 사건·사고가 발생하면 지휘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일선부대에서는 정신과 치료 이력 때문에 해당 병역의무자를 회피하려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한편 병무청의 신체검사 역시 많은 인원의 병역등급을 동시에 판정해야 하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부분도 크다. 병역 회피를 막기 위해 엄격한 기준으로 발급되는 병무용 진단서 제출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검을 받는 피검사자들이 발급해 가져오는 일반 진단서는 사실상 보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까지 병무청의 신체검사를 담당했던 징병전담의 출신의 한 의사는 “진짜 판정이 어려울 때는 3급과 4급 사이 현역이냐 아니냐의 기준에 걸쳐 있을 때인데, 해당 진료기록을 준비해 오면 판정은 쉽다. 하지만 서류가 부실하면 결국 현역 판정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그래서 막상 부대에 입소하면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군복무에 적합한지 여부를 가장 판정하기 어렵기도 한 진료과가 정신과이기도 하다는 것은 병무청 징병전담의나 일선부대 군의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특히 일선부대에서는 정신과를 전공한 전문 군의관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미 입소한 상황에서 장병의 과거 개인 진료기록에도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판정을 보류해 결국 귀가조치를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선부대에 복무 중인 한 군의관은 “군 의무대나 병원이 전문성 없는 ‘야매’라고 욕하는 거야 현실을 아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혹시라도 군생활에 부적합한 병력이 입대했다가 사고라도 치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며 “오히려 현역 판정 비율을 보다 엄격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래서 병역판정 신체검사를 전문성 있는 기관으로 일원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입소 후 귀가조치를 줄여 병역의무자의 불필요한 시간낭비를 줄이는 과제와 최대한 군복무에 적합한 병력을 선별해 병무 효율성을 높이는 과제 모두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군입대 신체검사의 주체를 일원화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은 “징병제 국가에서 현역 복무 여부를 결정하는 신체검사는 병무행정의 신뢰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신체검사를 주관하는 주체를 입영부대에서 병무청으로 일원화하면 입영 후 귀가자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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