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미술 소환]늙지 못해 어쩌면 슬픈
[경향신문]
“나는 사람들이 얼굴에 자신의 세월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보는 것이 좋다. 사람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래서 그의 어떤 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이 흥미롭다.” 미국의 화가 엘리자베스 페이튼은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뮤지션, 영화배우, 셀러브리티를 비롯하여 나폴레옹 같은 명화 속 위인과 작가 주변의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명사’들의 초상을 그린다.
페이튼에게 누군가의 모습을 묘사하는 일은 습관적인 얇은 붓질이 아니라 대상의 인생에 한발 다가가는 시도다. 순간을 축적하여 시간을 담는 것이 회화이고, 그렇게 시간과 함께하기 때문에 회화가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에 집중한다.
특히, 감정과 경험을 쌓으며 인생의 밀도를 높여나가는 젊은 날의 한 순간에 주목하는 그는 ‘청춘’의 생동감은 캔버스 밖으로 밀어내고, 창백하게 침잠된 표정을 빠른 붓질로 끌어낸다. 그렇게 펼쳐 놓은 그의 그림은 담담하면서도 쓸쓸하고, 어쩐지 냉소적이다. 화면을 뒤덮는 젊음의 공허함이 “한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으며, 왜 사람이 역사의 일부인지,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 나가는지” 이야기하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과 만나는 건 아이러니하다.
1994년 사망한 커트 코베인의 초상에서, 창백하게 멈춘 그의 젊음을 본다. 더 이상 세월을 쌓을 수 없는 그의 얼굴은, 더 이상 나이 들지 못하는 이들의 영혼을 향한 애도의 마음에 가닿는다. 늙지 못하고 그저 멈춘 얼굴은 슬프다.
<김지연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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