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세월호 4주기 맞아 갈 곳 잃은 416 기록물

안승진 2018. 4.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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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유가족·시민의 기록이 담겨있는 '416 기억저장소'/ 기록물 양만 40만여 건에 달해/ 분향소 옆 3개 컨테이너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4주기 추모식 이후 철거예정/ 유가족·안산시가 새로운 보관 장소 물색 중이지만 주민 반대와 유휴부지 부족으로 고민
경기도 안산 416기억전시관에 전시된 세월호 관련 기록물들. 엄마를 기다리며 아들이 걸었던 길(왼쪽)과 시민들이 남긴 편지함(오른쪽) 모습. 출처=416기억저장소
“아들은 수업 후 퇴근하는 엄마를 기다려 매일매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단원고에서 안산세무서로 가서 엄마를 만나 단원고 건너편 길로 다시 되돌아 집까지 걸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416기억저장소에 기록된 한 세월호 유가족의 증언에선 아들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이 묻어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힘든데 왜 걸어 다니냐’고 했지만 엄마와 아들은 ‘손잡고 걷던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가족은 안산의 어느 길을 걸으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웃었다. 엄마도 아들이 기다릴까봐 퇴근하고 약속장소인 세무서 버스정류장까지 매일 달렸다. 416 기억저장소에는 이렇듯 유가족과 시민이 직접 기록한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기억저장소는 유가족과 시민이 나서 직접 세월호 관련 기록물을 저장한 장소다. 참사 기록을 숨기기 급급했던 정부를 대신해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20여일 뒤인 2014년 5월 5일부터 스스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자체적으로 시민기록단을 구성했고 이어 기록관리전문단체, 시민단체 등 28개 단체가 모여 기억저장소가 출범했다. 이들은 추모 포스트잇, 예술가들의 세월호 헌정작품, 희생자들의 생전 방 모습부터 일기장, 어록, 생활기록부까지 방대한 기록물을 수집·기록했다. 학계에선 시민과 유가족이 직접 기록물을 수집한 사례는 국내 기록물 역사상 세월호가 최초라 평가한다.

경기도 안산 416기억저장소 서가에 저장된 기록물 보존 상자들. 기록물 상당 수는 분향소 옆 컨테이너에 보관돼 있는 상황이다. 출처=416기억저장소
기억저장소는 올해로 세월호 4주기를 맞았지만 그와 함께 고민이 생겼다. 오는 18일 정부합동분향소를 철거하면서 분향소 옆 3개 컨테이너 서고에 담긴 기록물들이 갈 곳 없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기억저장소는 안산시와 함께 새 보관 장소를 물색하고 있지만 세월호에 대한 지원을 반대하는 주민들과 유휴부지 부족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과 유가족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인력·예산의 어려움도 뒤따르고 있다.

12일 기억저장소에 따르면 이곳에 저장된 기록물 수는 2016년 기준 40만여 건이 넘는다. 지난해 조사한 전자기록물 용량도 15.65TB(테라바이트)에 달할 정도다. 현재 기억저장소는 이런 방대한 자료들을 안산 상록구청과 일반건물 2개 서고, 분향소 옆 3개 컨테이너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 기억저장소는 희생자 개인기록뿐 아니라 피해자 가족 활동기록, 시민의 추모 기록까지 수집해 기록물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중이고 분류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증가하는 자료에 따라 보관 장소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런 기록물들이 갈 곳을 잃게 됐다. 안산시와 기억저장소가 나서 분향소 옆 컨테이너를 대신할 보관 장소를 물색하고 있지만 기록물의 양이 워낙 방대하고 인근 주민들의 세월호 지원에 대한 반대가 거세 난항을 겪고 있다. 최근 고잔동 일대는 재개발이 활발해 적절한 유휴 부지를 찾기 어려운 데다 일대는 ‘세월호 추모공원 반대’가 적힌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도배돼 유가족과 반대 주민 간의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옆에 위치한 컨테이너들. 현재 유가족 사무실, 관련단체 사무실, 416기억저장소 기록물 저장 서고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안승진 기자
안산 시민 최모(62)씨는 “사고 하나에 얼마나 많은 예산을 써야 하나”며 “안산시 지원이 아니라 유가족 스스로 예산을 해결해야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시 관계자는 “세월호 기록물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국가기록원의 요청에 따라 416 기억저장소 기록물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지만 반대하는 측의 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있다”고 말했다.

소수 인력이 기록물을 정리하는데 어려움도 뒤따른다. 참사 직후 각종 단체와 수십 명의 전문가가 나서 시민 스스로 남긴 기록물의 수집·보관에 힘썼지만 현재는 직원 6명, 유가족 운영위원 6명 정도가 기억저장소를 이끌고 있다. 소수 전문가나 자원봉사자들이 기록물 전시와 분류를 돕지만 사실상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보관 환경도 어려움 중 하나다. 기록물과 물품을 제대로 보관하기 위해선 통상 24도의 온도, 50도의 습도를 유지해야하지만 현재 상당수 기록물을 컨테이너 속에 둘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경기도 안산시 416기억전시관 내부 모습. 416기억저장소에 보관된 기록물들은 기억저장전시관과 각 지역에서 열리는 세월호 관련 전시에 활용된다. 안승진 기자
기억저장소 이은화 기록관리팀장은 “2015년까진 기록물을 위해 많은 활동이 이어졌지만 지금은 활동이 느슨해진 상황”이라며 “기록물 수집에 참여하며 논문 등 본인 과제만 끝내고 나가는 분도 있어 일부 유가족이 상처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자원봉사와 노력으로 탄생한 희생적인 작업인 만큼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익환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캐나다, 호주, 영국 등 선진국들은 시민들이 기록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정부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며 “공공적인 일이라는 측면에서 공공기관이 기록관리 활동을 지원해 유가족이 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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