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롤링페이퍼-30대ⓑ] "절망감에 계속 화..세월호 이후 사회 마주봐"

“저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고 우리가 잊혀지는 것입니다. 가장 큰 위로는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잊지 않는다는 것, 그건 기억하는 것이요 기록하는 것일 겁니다. 1년 뒤에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2년 뒤, 3년 뒤, 10년 뒤, 100년 뒤에도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하는 길이라 저희는 믿습니다.
세계일보는 이에 세월호 4년을 맞아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세월호 이야기를 최대한 채록하거나 인터뷰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지지를 부탁합니다.
*자신만이 기억하는 세월호 이야기나 기억, 관련 자료가 있다면 세계일보로 사연이나 자료를 보내주십시오.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독자 모두와 공유하겠습니다. 보내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 번호 02-2000-1181.

◆“언론 보도 유감...조기 재난안전교육 절실”
회사원 손강국(30)=“당시 취업준비생이어서 집에서 포트폴리오 작업 중이었던 것 같다. 인터넷 기사로 사고 소식을 접한 후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사히 구조됐으면 바랐다. 그런데 아무리 실시간이라지만 언론사마다 전달하는 사고 내용도 다르고 구조 상황도 달라 화가 났다. 언론사들이 구조현장에 있던 사람을 아무나 붙잡고 인터뷰하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정리를 해 구조대책본부 등에서 일괄적으로 언론사에 자료를 줄 순 없었는지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조금만 대처가 좋았더라면, 그런 상황에 대한 교육이 미리 이루어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세월호 사고 당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노력한 분들에게는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재난피해 대피요령이나 재난 발생시 취해야 할 행동 등에 대해 별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해외여행 등 국내가 아니라도 언제 어디서 사고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안전에 대한 조기교육이 필요하다. 다시는 대형 참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하나쯤 괜찮겠지’라는 생각은 버리고 모두가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다.”

◆“절망감에 계속 화...끝까지 보도하길”
회사원 신고운(31) =“당시 회사가 서울역 부근에 위치해 서울역의 큰 TV로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본 기억이 있다. 아마 오전 10시쯤이었을 거다. 출근길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왜인지 그때 괌에 여행 간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서 생사 확인을 했다. 친구가 한동안 연락이 안 됐던 상황이라 친구에게 ‘한국에서 큰 사고가 나서 너와 연락이 안된 게 너무 무서웠다’며 화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해양업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왜 아이들을 구할 수 없는지 왜 배에서 끌어내지 못하는지 등에 관해 물으며 화냈다. 나도 모르게 계속 어딘가에 화를 내고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국가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 슬프고 절망적이었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구나’라는 생각에 슬픔을 넘어 절망했다. 나에게 세월호는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겼다.
국가의 무능을 목도했다.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지, 과연 나에게 국가는 어떤 것을 해 주는지 등 많은 고민을 하게 됐다. 한 명의 지도자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지도 알게 됐다.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라면 정치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됐다는 거다. 어른들이 청년을 지배하는 이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것이 투표밖에 없다는 생각에 전보다 더욱 우리나라를 바꾸는 것에 참여하게 됐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세월호 리본을 꾸준히 달고 다녔다. 세월호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 일을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이 지금 ‘운 좋게’ 살아있는 우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고 문제가 말끔히 해결돼야, 후에 이러한 비극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명명백백 모든 국민들이 제대로 알 수 있게 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 중 누군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을 수 있다. 남의 안전이 아닌 우리의 안전을 위해, 많은 어른의 안전불감증으로 희생된 아이들을 위해 세월호를 잊지 말고 그 모든 것이 명백해질 때까지 함께 바라보고 계속 보도됐으면 한다.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이제 옛말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지금도 눈물...각자 위치에서 원칙 지켜야”
외국계 회사원 김민(31)=“해외 인턴십을 마치고 귀국해 지인 회사 일을 잠시 돕고 있었다. 당시 디자인 팀장님이 ‘배가 뒤집혔다던데?’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난다. 곧이어 ‘전원 구조’라는 보도가 나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의 삶과 철학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사건이 되리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참사였다. 무능력한 리더십과 무책임한 관료주의, 성과 만능주의, 부정부패, 자신의 안전만 꾀하는 인간의 욕망이 어린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서울시청 앞에 내걸린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문구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대한민국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중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고쳐나가는 중이다. 그걸 희망이라 생각하면서 작은 위안을 찾는다.
지난 6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정치인은 법을, 관료들은 규정을, 시민들은 원칙을 지키는 사회에 한 발짝 더 다가갔으면 한다. 각자의 위치에서 윤리의식을 갖고 제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우리 자신으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올 것이다.”

◆“세월호로 비로소 우리 사회 마주봐”
콘텐츠 기획자 송평강(32)=“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 같은 업무를 준비 중이었다. 사내에 비치된 TV에서 익숙하지 않은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원 구조’라는 속보 자막을 보고 여느 사건들처럼 안심했지만, 이내 구조되지 못하고 배가 뒤집히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전 중에 마무리될 것만 같았던 끔찍한 재해는 그날 온종일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충격이 되고 말았다.
아직도 의문인 건 구조가 제대로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속보를 전하는 TV 스튜디오에는 인양 전문가가 등장해 인양 방법과 비용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었다. 한미군사작전으로 팽목항 인근에 미군함, 해군 등 모여 있었기 때문에 훈련을 중단하고라도 가서 구조해줄 줄 알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구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참 민망하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로 우리 사회에 대해 제대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지난 과거부터 한국은 민중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않았던 사례들을 보게 됐다.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외면하고, 상식적이지 않은 변명들로 국민을 폄하해왔다. 4.19, 5.18, 6.10 등 민중이 불의한 권력에 직접 맞서 승리하고 민중이 써가는 역사에 대해 마주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게 됐다.
개인이라는 국민 한 명이 모이면 무엇이든지 이길 수 있는 위대함을 알게 됐다. 나 역시 생각에서만 그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움직임을 하게 됐다. 내 가방 한 면에 세월호 배지가 있다. 가방마다 붙어 있고, 나가는 곳마다 가방을 들고 간다. 그거 이제 떼어도 되지 않느냐라고 물어온다. 유가족과 지인들은 그 아픔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외면했고 그들을 진심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위로해 본 적도 없다. 적어도 나의 작은 행동들로, 그들을 위로하는 최소한의 행동이 됐다.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을 정치적으로 이용했고 여야는 세월호를 희생양 삼아 서로를 비난했고 언론은 세월호를 덮기 위해 이슈를 양산해냈다. 그 모두에게 놀아난 국민의 일부는 세월호를 ‘자식팔이’라 매도했다. 표면적으로는 고요해 보이던 바다가 집어삼킨 세월호처럼 우리 사회가 표면적으로만 서로를 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내 일이 아닌 일에 대해 외면하고 비난하는 검은 속내가 드러났다고 본다.
전쟁 이후 급성장한 우리나라는 그만큼 사회 문제에 대해선 외면한 외적 성장만이 존재해왔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다양한 사회 문제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것은 개인을 위한 일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사회를 위한 일이다. 우리가 사회를 외면하게 된다면 어느 순간 우리는 사회에서 외면당하게 될 것이다.
가장 가슴 아픈 역사는 실수를 답습하는 역사가 아닐까.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소통이 있었다면 그 날과 그 날 이후의 아픔들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제 그 실수를 넘어서는 보다 성숙한 시민의 역사가 쓰여졌으면 좋겠다. 이것을 위해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도 아닌 나부터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김건호·김용출·김지연·이동수·하정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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