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 "면역항암제 사용 절차 완화를"

허지윤 기자 2018. 4. 11.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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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적용 폐암·흑색종 항암제 키트루다·옵디보말기 환자들 “다른 암 치료에도 쓰게 해달라” 보건당국 “안정성, 치료효과 검증안돼 협의해야"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효령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별관에서 네이버 면역항암카페 회원 약 50명이 ‘면역항암제 급여화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허지윤 기자

꽃샘추위로 찬 바람이 매섭게 불었던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효령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별관 건물 앞 거리에 가발을 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니 도로 한 편을 채웠다. 이들 70여명은 네이버 ‘면역항암' 카페 회원과 말기 암 환자 가족이다. 면역항암제의 허가초과 사용(오프라벨) 금지를 철회해달라고 모인 것이다.

이들이 손에 든 피켓에는 ‘신약 1% 가능성이라도 하루라도 써 보고 싶다’, ‘독약으로 연명하며 누워 있기보다는 신약으로 사람처럼 살다 가고 싶다’, ‘부작용 두려워 신약을 피해가기엔 우린 너무 위태로워요'라고 쓰여 있었다.

이들이 거리로 나온 것은 새로운 항암 치료제로 급부상한 면역항암제 처방 절차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현행 제도상 생사의 갈림길에 선 말기 암 환자가 면역항암제 처방을 받으려면 빨라도 두달은 기다려야 한다. 처방 기다리다가 가족과 이별하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를 내세우며 일부 면역항암제가 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이후 생겨난 문제다. 심평원은 면역항암제의 부작용을 우려해 허가한 암 종류를 제외한 다른 암에 대해 처방을 받으려면 여러 단계를 거치도록 했다.

◇ 면역항암제 처방 논란 왜?

면역항암제는 1세대 항암 화학요법과 2세대 표적항암제에 이은 3세대 치료제로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다.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도 적고 치료효과도 좋아 주목받고 있다. 현재 허가받은 면역항암제는 △BMS의 여보이(CTLA4 억제제, 흑색종 적응증)와 옵디보(PD-1 억제제, 폐암·흑색종·위암·신세포암·방광암·두경부암 등) △머크의 키트루다(PD-1 억제제, 흑색종·비소세포폐암·두경부암·요로상피세포암 등) △로슈의 티쎈트릭(PD-L1 억제제, 폐암) △화이자와 머크가 공동개발한 바벤시오(PD-L1 억제제, 희귀피부암·방광암) △아스트라제네카의 임핀지(PD-L1 억제제, 방광암) 등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개발했고, 시장이 초기 단계라 가격이 월 1000만원 정도로 비싸다. 암 환자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금액이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을 적용해달라”는 환자들의 요구가 이어졌고, 보건당국은 작년 8월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는 머크의 키트루다와 BMS의 옵디보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했다. 키트루다와 옵디보는 흑색종과 비소세포폐암 치료용 면역항암제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면서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경우 연간 1억원에 달하는 약제비 부담이 약 340만~460만원(60㎏ 기준, 본인 부담률 5% 적용 기준)으로 줄었다. 비소세포폐암은 전체 폐암 환자의 80%가량 된다.

건강보험 적용으로 폐암 환자는 혜택을 받게 됐지만, 다른 암 환자는 되레 역차별을 받는 문제가 생겼다.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에는 폐암 환자에게 사용되는 머크의 키트루다와 BMS의 옵디보 등 면역항암제를 위암이나 유방암 등 다른 암 말기 환자도 처방받았다.

그런데 급여화로 흑색종과 비소세포폐암에 효과를 보이는 키트루다나 옵디보를 다른 암 환자가 처방을 받으려면 ‘새로운 기준과 절차'를 거쳐야 했다. 예컨대 키트루다나 옵디보를 처방받으려면 의료기관(병원) 내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혈액종양분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암 관련 수술을 하는 외과계 전문의,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다학제적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심평원의 ‘사전 승인'을 받게 한 것이다.

보건당국 입장에서는 폐암과 흑색종 등 일부 암종에 치료 효과가 있는 약을 유방암이나 위암 등 다른 암종에 쓰는 것은 안정성과 유효성(치료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데 나라가 정한 복잡한 절차가 방해하는 셈이 됐다.

암 환자들의 이 같은 지적에 보건당국은 협의체 논의를 거쳐 올해 3월 ‘사용 후 심의·승인받는 제도’를 추가 도입하는 개선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환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개선안의 요지는 다학제적위원회 구성 요양기관 중 일부에 ‘사후 승인제 추가 도입’, 다학제적 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는 요양기관도 사전신청 가능토록 하는 ‘사전 신청 가능 사용 기관 확대’ 등이다. 심평원은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허가초과 항암요법 사용제도 개선안’을 예고하고, 이달 12일까지 의견 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다.

◇ “치료받으러 해외로 가는 현실…지방 환자들 차별”

‘사후 승인제’를 추가해 환자 접근성을 확대했다는 보건당국의 설명과 달리, 새로운 개선안에 대한 환자들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남성은 “말기 암 환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면역항암제를 쓰려고 하는데, 까다로운 면역항암제 허가 외 처방 절차 탓에 결국 말기 암 환자였던 아내가 치료제를 처방받지 못하고 최근 숨졌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후 승인제도 조건이 까다로워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심평원 개선안을 보면 면역항암제 사후 신청 요건으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3명 이상,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1명, 외과계 전문의 3명, 상근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1명 이상’으로 구성된 다학제 위원회가 협의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는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인력이 충분치 않은 지방 병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이버 면역항암 카페 한 회원은 “광주광역시에 살고 있는데, 인근에 혈액종양분야 전문의가 4명이 모일 수 있는 곳은 전남대병원, 전북대병원밖에 없다”며 “여기서 안 되면 서울로 올라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사전·사후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적응증 외 암 환자에게 옵디보나 키트루다를 사용할 경우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임의비급여'에 대한 규제도 걸림돌이다. ‘임의비급여’ 비율이 5%가 넘는 의료기관은 부당 청구로 간주해 병원이 현지조사 등을 받고 진료비 환수와 업무 정지, 과징금 등이 부과된다.

병원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규제이기 때문에 면역항암제 허가외처방을 꺼릴 수밖에 없다. 비용이 비싸더라도 제때에 면역항암제를 처방받고 싶은 환자들이 약을 얻을 방법이 막혀 있고, 민간보험사만 득(得)인 제도라고 주장한다.

암세포에 달라붙어 공격하는 면역 세포.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제공

면역항암 카페 관계자는 “민간보험 가입자들의 경우 임의비급여 처방 금액을 실손보험으로 일부 수급하게 되는데 민간 보험사들은 당연히 임의비급여 처방이 늘어나는 게 좋을 리 없다”며 “심평원 임의비급여 제재는 민간보험사의 손해를 막기 위한 처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 “환자 심정 이해하지만 원칙 필요”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병원 암센터 소속 A 종양내과 교수는 “말기 암 환자의 절실한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원칙은 필요하다”며 “항암 신약의 허가 외 처방(오프라벨) 규제는 엄격히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문의나 요양병원 등의 입장에선 이익(돈)이 되니 환자들의 면역항암제 처방 조건 완화를 주장할 수 있겠지만 입증되지 않은 영역에까지 치료제를 쓰도록 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타당치 않을뿐더러 규제를 지나치게 풀면 잘못된 의료행위를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건당국의 규제를 단순히 ‘차별’ 문제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강희정 심평원 약제관리실장은 “환자들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하는 심정을 잘 알고 있지만, 적응증의 범위를 벗어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해 환자들이 더 고통을 받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규제가 아니라 방어선”이라고 강조했다.

B대학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 역시 “면역항암제도 부작용 이슈가 있다”며 “일반적인 면역시스템에서 어느 한 곳을 차단하거나 억제하면서 중대한 다른 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면역항암제는 약 30%의 환자에게서만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에 적합한 환자를 선별하는 기준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평원 관계자는 “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며 “환자 측이 요구하는 투명성, 전문성, 현실성 등을 개선안에 담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심평원은 허가초과 항암요법 사용제도 개선안에 대한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오는 6월 고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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