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용 칼럼]청와대밖에 안 보인다

박래용 논설위원 2018. 4. 9.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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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정권은 견고하다. 여론까지 우호적이다. 출범 1년 내내 70% 안팎의 지지율을 유지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취임 1년차 마지막 4분기 지지율은 김대중 63%, 김영삼 59%, 박근혜 54%(한국갤럽)였다. 역대 대통령 중 최고 기록이다. 대통령 인기가 높다보니 너도나도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걸고 들어간다. 더불어민주당은 6월 지방선거 후보자의 경력에 전·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못 쓰게 하려 했다가 안팎의 불만이 거세지자 결국 허용했다. ‘문재인’ 이름 석 자가 들어갈 경우 지지율이 10%포인트 정도 상승하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엄청난 영향력이다.

여당엔 인물이 넘쳐난다.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엔 민주당 지원자가 야당의 두 배가 넘는다. 출마자가 줄을 잇다보니 경선을 치르기로 한 지역이 광역단체장 17곳 중 11곳이다. 자유한국당은 인물난 속에 대구·경북 2곳에서만 경선을 치른다. 4년 전 지방선거 때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12곳, 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은 5곳에서만 경선했다. 버선이 뒤집히듯 신세가 바뀌었다. 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대통령의 인기와 야당이 지리멸렬한 반사이익 때문이다. 한 중진의원은 “지금 이 정도 가는 것도 대통령 때문이지, 지난 1년간 당이 한 게 뭐 있느냐”고 했다. 여당은 시민과 대통령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 야당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개 역할도 해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모든 이슈는 청와대가 주도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슈를 던지면 여당은 뒤따라가기 바쁘고, 야당을 향해 강성발언을 쏟아낼 뿐이다. 추미애 대표는 9일 “정부 발목만 잡는 한국당은 국민과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국폐’ ”라고 했다. 여당이 됐는데도 아직도 야당 같다.

여당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청와대에 끌려다니면, 야당도 여당을 상대로 하기보다는 청와대를 상대로 직접 협상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차라리 마네킹을 세워놓고 말하는 것이 더 낫겠다”면서 여당 원내대표를 제치고, 대통령과의 담판을 제안했다. 야당은 갈수록 민주당이 아니라 청와대를 정조준하고 있다. 민주당은 청와대와 야당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당 지도부는 청와대와 대통령 핵심 지지자들의 눈치만 보고 있다. 추 대표 임기는 8월, 우원식 원내대표는 5월까지다. 몇 달 남지 않은 기간 동안 달라질 것 같지 않고, 레임덕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러다 갑자기 리스크가 발생하면 감당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미투에 휘말린 안희정·박수현·정봉주·민병두 등의 성추문은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해빙무드를 타면서 운 좋게도 고비를 넘겼다. 언제든 돌발변수는 발생할 수 있고, 언제까지 운이 좋을 수는 없다.

내각은 더 심하다. 발 벗고 뛰어도 모자랄 판에 제 역할을 하는 장관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미세먼지에 손 놓고 있다가 쓰레기 대란까지 자초했다. “분리수거 대상” “환경장관이 아니라 환경 방관”이란 말까지 들었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손대는 정책마다 시끄럽지 않은 게 없다. 송영무 국방장관은 문재인 정부 주요 국정과제에 대해 진심이 우러나서 하는 건지 떠밀려서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검찰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는 또다시 검찰개혁이 물 건너갈 판이다. 강경화 외교장관은 스타일리시 장관이란 말을 듣는다. 통일부가 남북관계를 맡아주면 외교부는 대미관계를 주도하는 창구가 돼야 하는데 뒤에서 꽃만 줍고 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는 외교부 들러리를 서고, 미투는 법무부 뒤로 숨었다. 잘할 것 같지 않았지만, 너무 못한다는 말이 파다하다. 기업 같았으면 진작에 보따리 싸들고 집으로 갔어야 할 임원들이다.

그러다보니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전면에 나서는 일이 잦아지고, 야당과 직접 부닥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비정상적이다.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핵심 이슈마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고 있다. 당과 내각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있다. 청와대가 실무적인 일까지 다 진행하면 일선 공무원들은 더더욱 청와대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 정부”라고 했다. “드림팀 내각”도 공언했다. 현실은 둘 다 아니다. 대통령이 인기가 높을 땐 여당과 내각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 지지율은 신기루와 같다. 고공행진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당·청은 건강한 긴장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내각은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지방선거 이후 집권 2년차도 이대로여선 곤란하다.

<박래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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