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숨결..켜켜이 쌓인 역사의 더께

도재기 선임기자 2018. 4. 4.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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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한성백제박물관 ‘고려 건국 1100년 특별전’
ㆍ고려 영국사 위에 지어진 조선 도봉서원터 출토 유물 첫 전시

한성백제박물관이 ‘천 년 만에 빛을 본 영국사와 도봉서원’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도봉서원 출토 금강령(왼쪽), 금강저, 물고기 모양의 방울(탁설·가운데). 한성백제박물관 제공

서울 도봉산 자락에 자리한 도봉서원터는 우리 역사의 더께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유적이다. 지층마다 한 시대가 아로새겨져서다. 도봉서원은 정암 조광조를 추모하기 위해 1573년 창건됐고, 1696년에는 우암 송시열도 배향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유서 깊은 서원이었다.

희귀 문화재인 고려시대 ‘걸이 향로’.

2012년 도봉서원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그런데 땅을 파자 고려시대 불교유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고려 불교미술의 걸작인 금동 금강령과 금강저, 청동 걸이향로와 그릇들, 석각편 등이다. 탁본으로만 전해지던 ‘영국사 혜거국사비’ 일부가 발견되고, 가장 오래된 천자문 석각, 유일한 고려 석경(불경을 새긴 돌)도 확인됐다. 도봉서원이 ‘영국사(寧國寺)’ 위에 지어진 것이다.

도봉서원터 출토 유물을 통해 1000년 만에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난 영국사와 고려 불교, 나아가 조선의 도봉서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역사 흐름을 살펴보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이 고려 건국 1100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특별전 ‘천년 만에 빛을 본 영국사와 도봉서원’이다. 6월3일까지 이어지는 전시회에는 발굴 유물 70여점이 최초로 일반에 선보이고, 도봉서원 관련 자료 등 모두 100여점이 출품됐다.

전시장 들머리에서 관람객을 압도하는 것은 금강령·금강저다. 금강저는 번개 모양을 형상화한 고대 인도의 무기로 번뇌를 없애 깨달음을 얻게 하는 지혜를 상징하는 동시에 사악함을 쫓아낸다는 의미도 지닌 밀교 의식용구다. 금강령은 요령에 금강저가 융합돼 소리로 중생의 불성을 깨우친다.

은은한 금동빛의 금강령(높이 19.5㎝)에는 오대명왕과 범천·제석천·사천왕 등 11구의 불교존상이 극히 정교하게 돋을새김됐다. 자세히 보면 갈고리 모양의 고(고)가 시작되는 곳에 사리공으로 보이는 구멍도 있다. 제작 기법은 물론 보존 상태도 현존하는 금강령 중 가장 빼어나 고려 초기 금속공예를 대표할 만하다. 보물 176호인 ‘송광사 금동 요령’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금강령과 한 쌍인 금강저는 손잡이에 연꽃무늬를 세밀하게 새기고 양쪽 5개의 고가 동물의 입에서 나오는 형상으로 세련된 조형미까지 돋보인다. 비늘까지 표현한 물고기 모양의 방울(탁설)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김은정 학예사는 “뛰어난 조형성의 금강령은 11구의 존상, 사리공이 있는 유일한 것으로 국보급으로 평가받는다”며 “유물 옆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통해 조각 세부를 자세히 보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향로와 향완·화로·대야·그릇·숟가락 등 불교의식에 사용된 70여점의 청동제 공양구도 영국사의 사세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둥근 몸체에 고리가 달린 ‘걸이향로’는 5점밖에 없는 희귀한 유물이자 현대적 미감마저 느껴진다. ‘도봉사’란 명문도 있다. 굽다리 그릇에는 ‘계림공이 시주했다’는 뜻의 ‘계림공시’란 명문이 있어 고려 숙종(재위 1095~1105)이 즉위 전에 발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국내서 가장 오래된 천자문 유물 ‘석각천자문’.

‘묘법연화경’을 돌판에 새긴 유일한 고려시대 석경과 천자문이 새겨진 석각천자문, 영국사 혜거국사비 탁본도 눈길을 잡는다. 전시장에는 특히 계명대 행소박물관 소장품인 ‘금강령과 금강저’ ‘을유명 청동종’, 토지주택박물관의 ‘청동구층탑’ 등 다양한 유물도 함께 선보여 이해를 돕는다.

시대 변화로 영국사는 쇠락해졌고, 결국 그 터에 도봉서원이 창건됐다. 당시 도봉서원은 한양 인근의 핵심 서원으로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시서화를 남긴 심신수련장이었다.

겸재 정선의 ‘도봉추색도’(부분). 한양대박물관 소장

조광조 문집인 <정암집>, 송시열 문집으로 1668년 도봉서원을 들렀을 때 지은 시 ‘제도봉서원’이 실린 <송자대전>, 도봉서원의 건립 과정 등을 기록한 ‘도봉서원기’가 수록된 율곡 이이의 문집 <율곡전서 권13>, 여기에 조선후기 대표 화가인 겸재 정선의 ‘도봉추색도’, 현재 심사정의 ‘도봉서원도’ 등의 전시 자료가 도봉서원을 잘 말해준다. 김영심 전시기획과장은 “이번 특별전은 처음 전시되는 유물이 많아 흥미로울 것”이라며 “고려 불교와 영국사, 도봉서원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도봉서원터는 발굴이 계속된다. 영국사터 아래에서 남북국시대 유물이 나오기 때문이다. 조선, 고려시대를 훌쩍 넘어 또 한 시대가 응축돼 있는 것일까.

한성백제박물관은 특별전과 연계, 6월12일까지 매주 화요일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회도 열고 있다. (02)2152-5800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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