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국가대표 1호 정하봉 그는 왜 소믈리에가 됐나
최현태 2018. 3. 31. 10:05
2010년 세계소믈리에대회 첫 한국대표로 출전
소믈리에는 업장 매니먼트 능력이 더 중요
두 단체로 나뉜 소믈리에 협회 통합해야
소믈리에는 업장 매니먼트 능력이 더 중요
두 단체로 나뉜 소믈리에 협회 통합해야

사람들은 아플 때는 병원에 가고 송사에 휘말리면 법률사무소를 찾는다. 하지만 축하할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생겼을 때 가는 곳은 레스토랑(Restaurant)이다. 레스토랑의 어원은 불어 ‘Restaurer’로 회복이란 뜻이다. 용기를 북돋아 주고 힘을 얻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맛난 음식과 와인을 마시면서 수다를 떨다보면 쌓였던 스트레스도 날리고 방전된 에너지가 재충전되니 레스토랑은 힐링의 공간이다. 이런 손님의 소중한 시간을 더 멋지게 연출하는 조연이 바로 소믈리에(Sommelier)다. 그들은 음식에 맞는 와인이나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의 와인을 추천해 음식과 와인을 더 반짝반짝 빛나게 만든다. 좀 더 숙련된 소믈리에라면 메뉴도 추천하고 그 음식에는 어떤 식재료와 소스를 썼는지 상세한 설명도 곁들인다. 하지만 소믈리에는 단순하게 와인과 메뉴를 추천하는 직업은 아니다. 업장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매니지먼트 능력이 더 중요한 덕목이다. 또 강의를 통해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 와인에 쉽게 접근하도록 돕고 와인 디너 기획을 통해 와인시장의 성장에 기여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도 한다. 이를 위해 소믈리에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테이스팅하며 대회에도 출전해 자신을 연마한다.

대표적인 이가 ‘소믈리에 업계의 젠틀맨’로 소문난 정하봉 수석소믈리에(41·JW메리어트동대문스퀘어서울)다. 그는 2010년 3년마다 열리는 세계소믈리에대회에 한국 소믈리에로서는 최초로 출전한 경력때문에 ‘국가대표 1호 소믈리에’라는 닉네임이 늘 따라다닌다. 뉴욕 3대 스테이크중 하나로 유명한 JW메리어트동대문 BLT스테이크와 그린핀 바를 총괄하면서 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으로 후배 소믈리에들을 이끄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를 30일 BLT스테이크에서 만났다. 그에게 소믈리에란 과연 무엇일까.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이 작품 앞에 서면 그냥 ‘참 좋다’ 정도만 느끼죠. 이때 큐레이터가 ‘18세기 후기 인상주의 그림이고 붓터치나 구도의 의미는 어떻고 작가는 당시 이런 상황이었다’고 설명하면 그림이 새롭게 보일 겁니다. 소믈리에도 마찬가지예요. 와인을 잘 모르는 손님이 한잔 마시면 ‘이거 참 좋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죠. 하지만 소믈리에가 ‘미국 최고 산지 내파밸리 와인이고 품종은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남성적인 풀보디 와인’이라고 설명하면 무궁무진한 와인의 매력을 알게 됩니다. 소믈리에는 이처럼 와인을 풍부하게 만드는 큐레이터 역을 한답니다.”

하지만 이는 소믈리에의 기본적인 업무일뿐 경영적인 측면이 더욱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소비자들이 유명 셰프의 명성을 보고 그 레스토랑을 찾아가듯 소믈리에 때문에 업장을 찾는 매니지먼트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 신뢰도가 높은 소믈리에라면 그가 만든 와인 리스트는 다른 업장과 차별화됩니다. 특히 손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이어야 손님들이 계속 찾게되죠. 소믈리에는 이런 경영적인 측면을 알아야 해요. 대회에서 입상하고 와인을 테이스팅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매니지먼트 능력이 소믈리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에요”.
실제 그는 와인 디너를 통해 소믈리에가 어떤 직업인지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부터 매달 한차례 다양한 주제로 진행하는 와인 디너는 지난 21일 103번째를 맞았는데 늘 만석일 정도로 인기가 높다. 15만원에 디너 코스와 고급 와인 6종이 페어링되는데 이는 사실 국내 특급호텔에서는 불가능한 가격이다. 이때문에 소위 ‘가성비 갑’으로 와인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자자하다.

정 수석소믈리에는 최근 와인 디너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직접 강의도 곁들인다. “와인 디너를 오래 기획하다보니 고객이 충분히 만족하도록 구성하는 역량은 충분히 갖추게 됐죠. 하지만 매번 와인 얘기만 하다보니 콘텐츠가 너무 빈약하다고 느꼈어요. 특히 대중이 좀 더 쉽고 편안하게 와인에 다가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그래서 올해 1월 디너부터는 와인과 인문학을 결합했답니다”. 1월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시작, 2월에는 스페인 천재 건축가 가우디와 초현실주의 작가 살바도르 달리, 3월은 유럽문화 근간인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선정해 그 나라 와인과 매칭하는 식으로 디너를 진행한다. 그는 충실한 강의를 위해 디너때마다 최소 5권의 이상이 관련 책을 독파한다.
정 수석소믈리에는 이처럼 대중과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기획이 <와이 낮 술(Why not sul)>이다. ‘왜 낮술은 안되느냐’는 뜻을 담았는데 오후 2∼4시에 간단한 카나페 등을 곁들여 와인 한 잔하며 손님들과 다양한 주제를 놓고 수다를 떤다. 3월에는 ‘와인 미라클’, ‘사이드 웨이’. ‘어느 멋진 순간’ 등 와인 영화에 등장하는 와인들을 소개하며 낮술을 즐겼다. 4월에는 와인과 여행을 주제로 풀어갈 계획이다. 또 영업인 다 끝난 밤 10∼12시에 손님을 만나는 ‘심야주방’도 지난 16일부터 시작했다. 업장의 문을 닫고 직원들이 없는 주방에서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대표하는 끼안티 클라시코 와인 등을 놓고 르네상스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직까지 와인을 어렵다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에요. 따라서 소믈리에는 단지 와인을 추천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들이 와인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여러 시도를 해야해요. 이를 통해 와인 시장 성장하는 기여하는 것이 소믈리에의 중요한 임무이기도 하죠”.

그는 버스킹 공연이 어우러진 ‘와인 앤 버스커’ 행사를 매년 봄·가을에 기획해 중소 와인수입사들의 매출 증대도 적극 돕고 있다. 올해는 지난 23∼25일 열렸는데 소비자들이 평소 접하기 어려운 호텔과 레스토랑 공급 전용 와인 100여종을 엄선해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 와인 시장의 가장 큰 문제가 대형마트 위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호텔과 레스토랑은 와인 판매가 줄고 있어요. 소비자들이 다양한 와인을 즐기려면 호텔과 레스토랑 등 온트레이드 시장 활성화가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수입사들이 대부분 중소규모라 대기업 수입사들과 마트에서 경쟁하기란 불가능하답니다. 수입사도 돕고 마트 와인 외에도 다양한 와인이 있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리려고 와인 앤 버스커를 올해 7번째로 진행했답니다”. 실제 행사 매출은 모두 수입사들의 몫이다. 호텔이 얻는 이익은 매우 적지만 와인시장 활성화를 위해 소믈리에가 어떤 일을 해야하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메리어트호텔이 한국에 진출한 이후 최초의 소믈리에이기도 하다. 22살의 대학생 시절이던 1998년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에는 서울 신촌의 재즈바 재즈필에서 바텐더로 일하면서 서비스업이 성격과 잘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2003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반포 메리어트 호텔에 입사는 그는 룸서비스, 연회장, 뷔페식당을 거쳐 2005년 국내 메리어트 호텔 최초로 소믈리에가 됐다. 호텔을 이용한 한 미국인이 “레스토랑 직원이 와인 맛도 모르고 심지어 품종도 모른다”며 총지배인에게 항의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호텔은 와인을 잘 아는 직원을 수소문했고 입사전부터 영국에 본원을 둔 전세계 공인 와인 학위 WSET를 공부한 정 수석소믈리에가 낙점됐다.

그는 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이며 국가대표 1호 소믈리에인 만큼 고민도 많다. 후배 소믈리에들의 질적 성장을 돕는 막중한 임무도 소홀히 할 수 없는 탓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는 10월 15일 일본 쿄토에서 열리는 제4회 아시아-오세아니아 소믈리에 대회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회 우승자는 2019년 벨기에 제 16회 세계소믈리에대회 자동진출권을 얻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이 대회에서 톱3가 겨루는 결승전에 진출한 한국 소믈리에는 없다. 세계소믈리에대회 역시 정 수석과 2013년 이용문 소믈리에(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2016년 오형우 소믈리에(코스모엘앤비) 등 3명뿐이며 10명이 겨루는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다. 일본은 이미 1995년에 우승자를 배출했는데 아직까지 유일한 아시아 소믈리에 기록이다.

올해 아시아 오세아니아 대회에는 안중민 소믈리에(SPC그룹), 조현철 소믈리에(더 키친 살바토레 쿠오모)가 출전하는데 역대 국가대표중 가장 준비가 잘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어 결선진출을 바라보고 있다. 정 수석은 단장격으로 이들을 이끌고 대회에 출전한다. “안 소믈리에는 프랑스에서 7년, 조 소믈리에는 호주에서 6년동안 와인 공부를 해 탄탄한 실력을 지녔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 소믈리에로는 최초로 결승에 진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함께 테이스팅 훈련을 하고 있다. 한국 소믈리에가 세계 수준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 국제소믈리에협회와 한국소믈리에협회로 이원화된 협회 통합도 그가 공을 들이는 사안이다. 국내에 소믈리에 규모는 500명 정도에 불과하지만 협회가 나뉘어져 하나로된 목소리를 내며 발전을 도모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 수석소믈리에는 “일본소믈리에협회는 무려 1만2000명이며 협회에서 자체 잡지를 발행할 정도로 와인 시장을 이끌고 있죠. 세계소믈리에대회 우승자를 배출한 것도 이런 기반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후배들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 주고 소믈리에의 발전을 위해서는 두 단체가 반드시 합쳐야 합니다”라고 역설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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