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그날의 기억, 다시 이어가려 합니다
[경향신문] ㆍ70주기 앞둔 ‘제주 4·3’
올해는 ‘제주 4·3’이 70주년을 맞는 해다. 흔히 애기동백으로 표현되는 4·3의 아픔이 그동안 70번이나 피었다 졌다. 2000년 제정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의하면 4·3은 1947년 3월1일이 시초였다. 이날 5만명 이상이 모인 3·1절 기념대회에서 제주도민들은 통일조국을 외쳤다. 하지만 그 결과는 혹독했다. 7년7개월 동안 무려 3만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40여년 동안 입에 올리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뿐만 아니라 유족들은 ‘연좌제’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다. 다행히 1987년 민주화항쟁 이후 사회 곳곳에서 진상규명 운동을 벌여 그 실태가 조금씩 알려져 왔다.


한라산 동남쪽 중산간의 표선면 가시리 마을. 4월이면 노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다. 4·3 희생자 분포지도를 보면 유독 많은 희생자를 낸 마을이다. 98세의 한신화 할머니는 아직도 4살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고 있다. “아들 양복수가 살았다면 올해 74살이야. 아마도 나처럼 백발이 성성하겠지….” 아들 얘기가 나오자마자 할머니는 눈시울을 적셨다. “밤에 경찰이 와서 마을을 다 불 질렀어. 남편과 가족들은 사방팔방 도망갔어.” 미처 도망을 못 간 할머니는 4살 아들을 안고 서귀포경찰서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저 밭일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왜 고문을 당해야 했는지 영문을 몰랐다.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할머니의 손가락은 지금도 기역(ㄱ)자로 꺾여 있다. “꾀부린다고 장작으로 후려쳤어.” 결국 할머니는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갔고 아들은 고아원에 맡겨졌다. 1년 후 할머니는 형무소에서 나왔지만 다시는 아들을 만날 수 없었다. “고아원에 찾아갔는데 아들이 죽었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어. 하지만 나는 지금도 믿기지가 않아….” 참았던 눈물을 흘리던 할머니는 나직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복수야, 복수야, 어여 날 찾아오렴.”


제주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힐링의 섬’이지만 학살과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토벌대의 초토화작전을 피해 깊은 산속으로, 동굴로 도망을 가야만 했다. 피란 주민들이 움막을 짓고 살았던 사려니 숲속의 ‘북받친밭(이덕구 산전)’에는 밥을 짓던 무쇠솥이 녹슨 채 아직 녹지 않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구좌읍 주민들이 숨어 지내던 큰곶검흘굴(대림동굴)에는 타고 남은 숯덩이와 깨진 사기그릇이 어둠 속에 숨겨져 있었다. 곤궁한 피란처의 흔적은 제주 곳곳에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주사람들에게 4·3은 되살리고 싶지 않은 비극적 역사다. 생존자들은 “살암시민 살아진다”(살다보면 살아진다)는 생각으로 모진 세월을 견뎌왔다. 4·3 70주년을 앞둔 제주는 마을 담장마다 꽃을 피운 붉은 동백꽃이 시리도록 예뻤다. 제주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제주 4·3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치유와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 4·3은 대한민국의 슬픈 역사다.
<제주 | 사진·글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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