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달째 칩거 오달수, 부산서 만났다
박현택 2018. 3. 30. 15:03
▶ 해명과 반박만 생각하다, 이후 반성과 사죄로 보낸 1달.
▶ 성관계에 대한 의사, 서로 다를 수 있어. 상대가 ‘고통’ 으로 기억한다면 사과가 먼저.
▶ ‘성폭행’은 동의할 수 없어, 그런 인생을 살지 않았다.
[부산=이데일리 스타in 박현택 기자] CCTV가 존재하지 않는 여관·모텔·호텔(방) 등의 공간에서 두 사람간에 벌어진 성행위를 두고 한쪽은 성폭행(추행)이라 말하고, 한쪽은 합의하의 성관계라며 억울함을 토로 하는 경우.
법은 양측의 진술보다 성행위 전·후의 정황에 무게를 두고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 정황에는 폭행 등의 무력 행사 여부, 방에 이르기까지의 행태(CCTV), 양측이 주고받은 문자나 전화의 내용, 성행위 이후의 태도나 양측의 관계 변화,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 고소하기 까지 걸린 시간등이 포함된다.
양측의 대립이 ‘미투운동’을 통해 촉발됐을 경우는 어떨까. 심판은 판사가 아닌 대중이 내린다. ‘대중법원’에는 고소와 송치, 조정기간이나 변론기일도 없다. 변호사도 없으며 폭로 직후 즉결 심판이 이루어진다.
대중은 폭로자의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높은 경우, 그의 주장에 더 높은 신뢰를 가진다. 폭로자의 ‘이름값’이 곧 담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익명일 경우에는 폭로의 진위에 대한 의심을 갖지만, 이 경우에도 내용 상에 포함된 혐의점과 정황이 구체적이고 세밀할 경우는 ‘거짓말일리 없다’는 판단을 한다. 다음은 ‘가해자’의 차례.
대중은 지목된 인물이 보인 해명의 태도와 내용, 대처방식에 따라 저울질을 한다. 빈약하거나 모호한 해명을 내놓을 경우 대중의 판단은 ‘유죄’로 결정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경우 ‘죄가 없다면 침묵할리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
지난달 배우 A씨는 1990년대 배우 오달수로부터 ‘여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배우 엄지영은 2003년 ‘오달수에게 모텔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오달수는 길게는 20년, 짧게는 15년전 논란이 불거지자 며칠간 침묵을 지켰다. 사과문을 내놓았으나 당시 뜨거웠던 ‘대중법원’은 그의 주장이나 정황을 믿지 않았다. 결국 대중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고 1달째 잠적했다.
25일 설득끝에 부산에서 오달수를 어렵게 만났다. 그를 만난 곳은 노모가 살고 계신 부산 영도의 한 아파트.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오달수는 상대 여성이 소리를 치며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성적 욕구를 채운 파렴치한일까, 아니면 20년전에 있었던 일에 ‘슬기롭게’ 대처 못해 무너져버린 천만요정일까.
△ 1달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어머니가 계신 여기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 거의 막걸리만 마신것 같습니다. 1달이란 시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느낍니다.
△ 그동안 긴 침묵과 간단한 (회사를 통한)입장발표, 사과문 발표만을 하고, 이후 잠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주변 지인들에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왜 침묵을 하느냐. 라는 질책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어떠한 입장이든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내놓는 것이 맞긴 합니다. 그런데 막상 갑작스럽게 ‘미투’의 대상자가 되니 매우 난해했습니다. 일단, 말 한마디라도 섣부르게 보도될까봐 두려웠고요.
무엇보다, 제 나이가 50세입니다. 그리고 두가지 일 모두 20년 전의 일입니다. 분명하고 명확한 입장발표를 위해서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수준이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머릿속 기억을 숫가락으로 ‘긁어내듯’ 시간을 다소 보낸것이 ‘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 연인감정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등의 말은 모호했습니다.
-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듯 합니다. 아무리 오래된 기억이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몇가지 당시 정황 등이 기억 났고, 몇몇은 소위 제게 ‘유리한 정황’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제가, ‘합의하의 관계‘라고 생각할만 했던 정황들, ’성폭행‘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유들 말이죠. 문제는 그것들이 몇가지 기억났다고 하여 ‘옳커니’하고 언론등에 말씀드리기가 어려웠고, 또 싫었습니다.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만약 ‘여관에서 그때 내가 어떻게 했고, 그분은 무슨 말을, 어떤 행동을 했고’ ...와 같은 말들을 뱉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에게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용기를 내신 두 분 입장에서는 (같은 상황을)조금 다르게 기억을 하실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 발언에 담긴 내용이 공개되어 괜한 수치심까지 드릴 수 있기 때문에 또 침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두 분이 겪은 고통을 존중하고 또 사과하고 싶기 때문이며, 그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무시한 채 ‘세밀하게’ 반박을 하면서 진흙탕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그럼에도 ‘성폭행’, ‘성추행’이라는 주장이 등장한 가운데, 최소한의 명백한 반박이 없다면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다시 한번 두 여성분께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 오달수가 강간범, 성폭행범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20대 치기 어린 시절,저와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은 여성분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고, 어린시절의 저를 꾸짖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두분의 말씀으로 인해 ‘강간범’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성관계에 대한 의사, 서로 다를 수 있어. 상대가 ‘고통’ 으로 기억한다면 사과가 먼저.
▶ ‘성폭행’은 동의할 수 없어, 그런 인생을 살지 않았다.
[부산=이데일리 스타in 박현택 기자] CCTV가 존재하지 않는 여관·모텔·호텔(방) 등의 공간에서 두 사람간에 벌어진 성행위를 두고 한쪽은 성폭행(추행)이라 말하고, 한쪽은 합의하의 성관계라며 억울함을 토로 하는 경우.
법은 양측의 진술보다 성행위 전·후의 정황에 무게를 두고 유·무죄를 판단한다. 그 정황에는 폭행 등의 무력 행사 여부, 방에 이르기까지의 행태(CCTV), 양측이 주고받은 문자나 전화의 내용, 성행위 이후의 태도나 양측의 관계 변화, 피해자가 사건 발생 후 고소하기 까지 걸린 시간등이 포함된다.
양측의 대립이 ‘미투운동’을 통해 촉발됐을 경우는 어떨까. 심판은 판사가 아닌 대중이 내린다. ‘대중법원’에는 고소와 송치, 조정기간이나 변론기일도 없다. 변호사도 없으며 폭로 직후 즉결 심판이 이루어진다.
대중은 폭로자의 사회적 지위와 명망이 높은 경우, 그의 주장에 더 높은 신뢰를 가진다. 폭로자의 ‘이름값’이 곧 담보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익명일 경우에는 폭로의 진위에 대한 의심을 갖지만, 이 경우에도 내용 상에 포함된 혐의점과 정황이 구체적이고 세밀할 경우는 ‘거짓말일리 없다’는 판단을 한다. 다음은 ‘가해자’의 차례.
대중은 지목된 인물이 보인 해명의 태도와 내용, 대처방식에 따라 저울질을 한다. 빈약하거나 모호한 해명을 내놓을 경우 대중의 판단은 ‘유죄’로 결정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경우 ‘죄가 없다면 침묵할리 없다’는 생각을 가진다.
지난달 배우 A씨는 1990년대 배우 오달수로부터 ‘여관에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고, 배우 엄지영은 2003년 ‘오달수에게 모텔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오달수는 길게는 20년, 짧게는 15년전 논란이 불거지자 며칠간 침묵을 지켰다. 사과문을 내놓았으나 당시 뜨거웠던 ‘대중법원’은 그의 주장이나 정황을 믿지 않았다. 결국 대중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고 1달째 잠적했다.
25일 설득끝에 부산에서 오달수를 어렵게 만났다. 그를 만난 곳은 노모가 살고 계신 부산 영도의 한 아파트.
그의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오달수는 상대 여성이 소리를 치며 거부하는 상황에서도 ‘차분한 표정’을 지으며 성적 욕구를 채운 파렴치한일까, 아니면 20년전에 있었던 일에 ‘슬기롭게’ 대처 못해 무너져버린 천만요정일까.
△ 1달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 어머니가 계신 여기 부산으로 내려왔습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아, 거의 막걸리만 마신것 같습니다. 1달이란 시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느낍니다.
△ 그동안 긴 침묵과 간단한 (회사를 통한)입장발표, 사과문 발표만을 하고, 이후 잠적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주변 지인들에서 ’골든타임’을 놓쳤다. 왜 침묵을 하느냐. 라는 질책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분들의 말씀을 이해합니다. 어떠한 입장이든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신속하게 내놓는 것이 맞긴 합니다. 그런데 막상 갑작스럽게 ‘미투’의 대상자가 되니 매우 난해했습니다. 일단, 말 한마디라도 섣부르게 보도될까봐 두려웠고요.
무엇보다, 제 나이가 50세입니다. 그리고 두가지 일 모두 20년 전의 일입니다. 분명하고 명확한 입장발표를 위해서는 ‘어렴풋이 기억나는’ 수준이어서는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머릿속 기억을 숫가락으로 ‘긁어내듯’ 시간을 다소 보낸것이 ‘침묵’이 되고 말았습니다.
△ 연인감정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등의 말은 모호했습니다.
-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듯 합니다. 아무리 오래된 기억이지만, ‘전혀 기억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몇가지 당시 정황 등이 기억 났고, 몇몇은 소위 제게 ‘유리한 정황’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제가, ‘합의하의 관계‘라고 생각할만 했던 정황들, ’성폭행‘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유들 말이죠. 문제는 그것들이 몇가지 기억났다고 하여 ‘옳커니’하고 언론등에 말씀드리기가 어려웠고, 또 싫었습니다.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만약 ‘여관에서 그때 내가 어떻게 했고, 그분은 무슨 말을, 어떤 행동을 했고’ ...와 같은 말들을 뱉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저에게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용기를 내신 두 분 입장에서는 (같은 상황을)조금 다르게 기억을 하실수도 있습니다. 또한 제 발언에 담긴 내용이 공개되어 괜한 수치심까지 드릴 수 있기 때문에 또 침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두 분이 겪은 고통을 존중하고 또 사과하고 싶기 때문이며, 그 고통과 인고의 시간을 무시한 채 ‘세밀하게’ 반박을 하면서 진흙탕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그럼에도 ‘성폭행’, ‘성추행’이라는 주장이 등장한 가운데, 최소한의 명백한 반박이 없다면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다시 한번 두 여성분께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저 오달수가 강간범, 성폭행범은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살지 않았습니다. 20대 치기 어린 시절,저와의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은 여성분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싶고, 어린시절의 저를 꾸짖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두분의 말씀으로 인해 ‘강간범’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성관계에 대한 의사가 양쪽이 다를 때, 강압으로 인해 관계가 맺어졌다면 이는 성폭행에 해당합니다. A씨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성폭행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 남녀가 성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에 대한 의사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의 크기가 클수록 ‘성폭행’에 해당하게 되겠고요. 만약 저와 관계를 맺은 상대 여성이 그 기억을 ‘고통’으로 인식한다면, 거두절미하고 일단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 ‘내가 성폭행을 했다’라고는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소리를 질렀는데 오달수가 눈깜짝도 안하고,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는 부분이요. 물론, 여성분의 입장에서 당시 관계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제 얼굴이 추악하게 기억에 남았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고 들은 대중은 여성을 ‘제압’하는 오달수의 모습을 그리게 됩니다. 만약 그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면, 저는 싸이코패스 또는 영화에서나 보는 연쇄살인마 아니겠습니까. 조금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 A씨를 만난 과정을 알려주십시오.
- 8~90년대, 당시 가마골 극단은 1년에 2번씩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단원들을 모집했습니다. 제가 A씨를 만난것도 그 일환이었죠. 그 후엔 2주 정도 교육(연기지도)을 받고, 이어 ‘너 배우, 나 연출’ 식으로 직접 무대도 연출해보고, 또 배우로 서보기도 하는…소위 동아리 또는 동호회 정도의 차원이었던 것이죠. 당시만해도 ‘실력파 배우 양성소’, ‘스타 등용문’은 전혀 아니었던 셈입니다.
공연은 가마골 소극장에서 했는데, 관객이 10명이 넘으면 오늘은 ‘많이 보러왔다’고 말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89년도, 그러니까 21살 무렵에 잡무도 보고, 그림도 그려주는 등의 일을 하면서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A씨는 (나중에 주변을 통해 기억해보니) 14기였고, 저와 (문제가 된) ‘쓰레기들’에 함께 작업한 것은 1993년 제가 25살, A씨가 극단에 들어온지 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 입니다.
저는 기수에 맞추어 들어온것이 아니지만, 선배들께서 ‘너도 기수 개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8기 정도의 기수를 받은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A씨의 3년정도 선배인 셈이었죠. 저 역시 4~5년차 정도되는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배우였습니다. 대중적인 제 이름값은 ‘0’ 이었고, 제가 A씨에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보장해준다’라는 개념자체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 연인감정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성분이 특정되는 걸 원치 않기에 세밀한 상황설명은 배제하겠습니다. 93년 5월 ‘쓰레기들’ 공연을 했습니다. ‘쓰레기들’은 제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연출’이라하면 대단한 권력이라고 상상하실줄 모르겠으나, 실상은 ‘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었습니다. ‘달수 니 연출 한번 연출 해볼래?’ 하길래, 연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예 한번 해볼게요’ 라고 말하며 맡게된 수준이었죠. A씨는 XXX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저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요. (오달수는 A씨가 맡은 보직을 기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즉 배우를 맡은 단원들은 각자 직장에서 퇴근후 모여서 몇시간 가량 연습을 하고는 집으로 갔지만, A씨와 저는 (연출부였기에)남아서 회의도 하고, 수정 보완과 같은 작업도 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공연은 주중 1번, 주말 2번. 2개월 가량 지속됐으며 93년 5월에 첫 공연 7월에 재공연을 했고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A씨와 소위 ‘썸’을 타는 정도의 관계였다고 기억하며, 젊은 남녀가 관계를 맺게된 것이라고 기억합니다.
△ 엄지영씨와의 만남은.
- 처음 만난 시점이나, 만나게 된 계기가 (엄지영의 말처럼) 극단 간 ‘조인 공연’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 기억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고요.
저는 2001년 이혼한 상황이었고, 2003년 당시 저는 35세, 엄지영씨도 약 30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엄지영씨가 방송에 출연하신 날, 저는 엄지영님의 말씀을 듣고 이미 성숙한 두 남녀간에 모텔에서 벌어진 일들이 제가 아는 단어, ‘성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따져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반박하고 픈 마음도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이후에는 그 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지난 기억에 대한 깊은 사죄를 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남녀가 성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그에 대한 의사가 서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의 크기가 클수록 ‘성폭행’에 해당하게 되겠고요. 만약 저와 관계를 맺은 상대 여성이 그 기억을 ‘고통’으로 인식한다면, 거두절미하고 일단 사과를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스로 ‘내가 성폭행을 했다’라고는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소리를 질렀는데 오달수가 눈깜짝도 안하고, 차분한 표정’을 지었다는 부분이요. 물론, 여성분의 입장에서 당시 관계가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제 얼굴이 추악하게 기억에 남았을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고 들은 대중은 여성을 ‘제압’하는 오달수의 모습을 그리게 됩니다. 만약 그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면, 저는 싸이코패스 또는 영화에서나 보는 연쇄살인마 아니겠습니까. 조금도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 A씨를 만난 과정을 알려주십시오.
- 8~90년대, 당시 가마골 극단은 1년에 2번씩 직장인 등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단원들을 모집했습니다. 제가 A씨를 만난것도 그 일환이었죠. 그 후엔 2주 정도 교육(연기지도)을 받고, 이어 ‘너 배우, 나 연출’ 식으로 직접 무대도 연출해보고, 또 배우로 서보기도 하는…소위 동아리 또는 동호회 정도의 차원이었던 것이죠. 당시만해도 ‘실력파 배우 양성소’, ‘스타 등용문’은 전혀 아니었던 셈입니다.
공연은 가마골 소극장에서 했는데, 관객이 10명이 넘으면 오늘은 ‘많이 보러왔다’고 말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89년도, 그러니까 21살 무렵에 잡무도 보고, 그림도 그려주는 등의 일을 하면서 극단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A씨는 (나중에 주변을 통해 기억해보니) 14기였고, 저와 (문제가 된) ‘쓰레기들’에 함께 작업한 것은 1993년 제가 25살, A씨가 극단에 들어온지 3개월쯤 되었을 때의 일 입니다.
저는 기수에 맞추어 들어온것이 아니지만, 선배들께서 ‘너도 기수 개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8기 정도의 기수를 받은것으로 기억합니다. 즉 A씨의 3년정도 선배인 셈이었죠. 저 역시 4~5년차 정도되는 프로도 아닌 아마추어 배우였습니다. 대중적인 제 이름값은 ‘0’ 이었고, 제가 A씨에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며 ‘보장해준다’라는 개념자체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 연인감정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여성분이 특정되는 걸 원치 않기에 세밀한 상황설명은 배제하겠습니다. 93년 5월 ‘쓰레기들’ 공연을 했습니다. ‘쓰레기들’은 제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연출’이라하면 대단한 권력이라고 상상하실줄 모르겠으나, 실상은 ‘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었습니다. ‘달수 니 연출 한번 연출 해볼래?’ 하길래, 연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예 한번 해볼게요’ 라고 말하며 맡게된 수준이었죠. A씨는 XXX 보직을 맡았기 때문에 저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요. (오달수는 A씨가 맡은 보직을 기재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즉 배우를 맡은 단원들은 각자 직장에서 퇴근후 모여서 몇시간 가량 연습을 하고는 집으로 갔지만, A씨와 저는 (연출부였기에)남아서 회의도 하고, 수정 보완과 같은 작업도 해야 했음을 의미합니다. 공연은 주중 1번, 주말 2번. 2개월 가량 지속됐으며 93년 5월에 첫 공연 7월에 재공연을 했고요.
굉장히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저는 이 과정에서 A씨와 소위 ‘썸’을 타는 정도의 관계였다고 기억하며, 젊은 남녀가 관계를 맺게된 것이라고 기억합니다.
△ 엄지영씨와의 만남은.
- 처음 만난 시점이나, 만나게 된 계기가 (엄지영의 말처럼) 극단 간 ‘조인 공연’이었는지 등에 대해서는 제 기억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다만 전체적으로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고요.
저는 2001년 이혼한 상황이었고, 2003년 당시 저는 35세, 엄지영씨도 약 30세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엄지영씨가 방송에 출연하신 날, 저는 엄지영님의 말씀을 듣고 이미 성숙한 두 남녀간에 모텔에서 벌어진 일들이 제가 아는 단어, ‘성추행’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따져묻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 반박하고 픈 마음도 들었던게 사실입니다.
이후에는 그 분이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모습을 떠올렸고, 지난 기억에 대한 깊은 사죄를 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 2~30대의 오달수에게
-이제 제 나이가 딱 지천명, 50살이 되었습니다. 20대와 30대는 물론 성인이었지만,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제가 벌써 철이들어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부처님’이 되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실수와 어리석은 짓, 경솔한 행동을 했었고, 반성하고 돌이켜 보며 이제 50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20대는 사실 지금보다 더 겁많고 부끄러움 많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 여성을 억지로 끌고가 그가 소리를 지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성폭행을 하는 그런 (용기아닌) 용기, 무식함은 지금도, 그때도 없습니다. A씨를 만난다면, 그것만큼은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성폭행이 아니었다’ 라는 것을 말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 ‘미투’가 있기 전가지 주옥같은 작품들이 줄을 이어 대기중이었고, 기획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가 있고, 제작자가 있고, 투자·배급사가 있습니다. 이번 일로 저 하나가 무너지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출연이 예정돼 있던,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의) 죄없는 스태프들, 제작사, 투자·배급사, 또한 다른 배우들까지 피해를 보는것은 너무나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제가 아는 제작사 분들은 그저 영화 한편 잘 만들어보겠다고 ‘모든 걸’ 쏟아넣는 분들인데, 제가 민폐를 끼쳐 자칫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위험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선량한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박현택 (ssalek@edaily.co.kr)
-이제 제 나이가 딱 지천명, 50살이 되었습니다. 20대와 30대는 물론 성인이었지만, 철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 그때부터 제가 벌써 철이들어있었다면, 지금쯤 아마 ‘부처님’이 되어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 많은 실수와 어리석은 짓, 경솔한 행동을 했었고, 반성하고 돌이켜 보며 이제 50살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기억하는 20대는 사실 지금보다 더 겁많고 부끄러움 많았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 여성을 억지로 끌고가 그가 소리를 지름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성폭행을 하는 그런 (용기아닌) 용기, 무식함은 지금도, 그때도 없습니다. A씨를 만난다면, 그것만큼은 이해받을 수 있을거라 확신합니다. ‘성폭행이 아니었다’ 라는 것을 말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 ‘미투’가 있기 전가지 주옥같은 작품들이 줄을 이어 대기중이었고, 기획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영화에는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가 있고, 제작자가 있고, 투자·배급사가 있습니다. 이번 일로 저 하나가 무너지는 것은 괜찮습니다만, (출연이 예정돼 있던, 이미 촬영을 마친 영화의) 죄없는 스태프들, 제작사, 투자·배급사, 또한 다른 배우들까지 피해를 보는것은 너무나 죄송스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제가 아는 제작사 분들은 그저 영화 한편 잘 만들어보겠다고 ‘모든 걸’ 쏟아넣는 분들인데, 제가 민폐를 끼쳐 자칫 길거리로 나앉아야 하는 위험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선량한 그들에게까지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박현택 (ssal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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