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사상가 크리스테바, 불가리아 공산정권 스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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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여성 사상가 줄리아 크리스테바(76·사진)가 냉전 시대 불가리아의 첩보원으로 활약했던 사실이 공개됐다.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는 그가 1971년부터 국가보위부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으나 크리스테바가 얼마나 오랜 기간 첩보원으로 활약했는지 불가리아 공산정부로부터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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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 과거사委 “암호명 사비나로 佛서 활동” 보고서
“보위부 요원으로 일하다 佛유학
대표 지성들과 학계서 어울리며
예술 · 대중매체 분야 첩보 수집”
세계적인 여성 사상가 줄리아 크리스테바(76·사진)가 냉전 시대 불가리아의 첩보원으로 활약했던 사실이 공개됐다.
파리에 거주 중인 크리스테바의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으나 이러한 사실은 세계적인 정신분석자이자 철학자, 소설가인 크리스테바의 명성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 등에 따르면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는 28일 자국 출신의 프랑스 여성 철학자 크리스테바가 ‘사비나’라는 암호명으로 과거 불가리아 공산정부의 국가보위부 제1부 소속 협력요원으로 활동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이 부서는 예술과 대중매체 분야를 감시하고 첩보를 수집하는 일을 했다.
불가리아 과거사위원회는 그가 1971년부터 국가보위부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고 밝혔으나 크리스테바가 얼마나 오랜 기간 첩보원으로 활약했는지 불가리아 공산정부로부터 어떤 금전적인 보상을 받았는지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국가보위부는 냉전 시대 소련의 KGB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유지한 불가리아 공산정부의 정보기관으로 첩보원과 협력자를 합쳐 약 10만 명의 요원을 뒀다. 1989년 공산정부가 무너지면서 국가보위부 역시 해체됐다. 크리스테바는 1965년 프랑스 정부 장학금을 받고 프랑스로 건너가 유학한 뒤 파리에서 학문 활동을 해왔다.
그는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롤랑 바르트 등 프랑스의 지성들과 함께하며 ‘사랑의 역사’ ‘시적 언어의 혁명’ ‘공포의 권력’ 등 30권이 넘는 저서와 소설을 펴냈다. 크리스테바는 1974년 발표한 ‘시적 언어의 혁명’에서 의미의 세계란 단순히 구조나 체계가 아니라 상징계와 기호계의 상호작용이라는 이론을 전개했고 이후 인간의 무의식과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벌인다. 그는 남편 필리프 솔레르와 함께 전위적 문학 계간지 ‘텔켈’을 이끌며 프랑스 지식인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1960년 창간돼 20년 이상 발간된 이 잡지는 프랑스 68혁명의 정신적 한 흐름을 담당했다.
한때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중국 공산주의를 추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크리스테바를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 100인에 선정하기도 했다.
크리스테바는 1973년부터 파리 제7대학(디드로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이 대학 명예 교수로 있으며 미국 컬럼비아대 초빙 교수도 지냈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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