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남의 시로 가꾸는 정원] [4]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장석남 시인·한양여대 교수 2018. 3. 2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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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샤갈의 마을에는 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김춘수(1922~2004)


지난 춘분(春分)날 전국에 큰눈이 내렸습니다. 때아닌 장관을 바라보는 마음 흐뭇했습니다. 절로 우리네 시의 학생들은 이 시를 떠올렸을 듯싶습니다. '샤갈'은 러시아의 이름난 화가. 자서전에 그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이 '물통'이라고 썼더군요. 그것을 닮은 인물이었을 겁니다. 우리 이웃 중 누구라고 해도 되겠지요. 다만 그의 그림을 닮아 세상을 구김 없이, 따스하게 바라볼 줄 아는 이라면.

봄을 맞아 희망의 기운 가득한, 관자놀이에 정맥이 새로 돋은 사내가 눈발을 바라고 섰습니다. 그 성성한 시선을 어루만지며 축복의 언어들이 내려옵니다. 하여 아직 남아 있는 '겨울 열매'는 청록의 '올리브빛'으로 환치됩니다. 그 밤 아낙들은 왜 '아궁이에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불'을 피웠을까요?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허공 가득 흰 눈발, 관자놀이의 푸르름, 올리브의 연두, 그리고 아궁이 붉은 불빛으로 이어지는 채색이 '샤갈의 마을'답습니다. 올해 우리가 당면한 모든 농사 잘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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