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쇄·홍보 물량 몰아주겠다' 각서에 MB 캠프 연대서명했다
[서울신문]2008년 광우병 사태가 한창일 때 미국 시민권자인 50대 초반의 여성 사업가 두 명이 비슷한 시기에 청와대를 찾는다. 한 명은 각서를 들고 와 대선 전 약속했던 인쇄비를 달라고 했고, 한 명은 가타부타 얘기를 안 하고 김윤옥 여사를 만나겠다며 소동을 벌인다.
이 둘은 시점도 달랐고 서로 다른 사안으로 청와대를 찾았지만, 미국 교포라는 점과 대선 때 이명박(MB) 후보 지지자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나아가 김 여사에게 전달됐다는 명품 가방 에르메스로도 연결돼 있었다.
●그녀들의 ‘연결고리’ 에르메스 가방
기독교 장로였던 MB는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국내외로 간증을 다닌다. 미국 뉴욕의 한인 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뉴욕 교민과의 교유가 시작된다. 어쩌면 MB나 그와 연결된 교민 모두 잘못된 만남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사람이 MB의 측근으로 활동했던 김용걸(80) 성공회 신부다. 그 외에 많은 교민이 ‘명박사랑’에 가입해 적극적인 활동을 한다.
지난 12일부터 15일까지 김 신부와 두 명의 여성 사업가 중 한 명인 강모(62)씨를 미국 뉴욕에서 각각 만났다. 이들은 2시간 가까이 지난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MB의 지지자였던 이들은 한국으로 와 MB의 선거운동을 돕기도 했다. 미국에서 인쇄업을 하던 여성 사업가 강씨도 MB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자비로 구매해 미국 교민에게 나눠 주는 등 열성 지지자였다. 그러다 캠프 내 핵심 관계자와의 협의 끝에 선거 홍보물을 인쇄하기로 하고, 서울 강남에 ㈜비비드마켓이라는 인쇄 및 홍보 회사를 설립한다. 그때 그는 9800만원 상당의 홍보물을 수주했다. 하지만 그에게 건네진 돈은 5000여만원뿐이었다. 나머지는 대선 후보가 되면 인쇄물을 추가로 준다는 조건으로 ‘기부’를 요구받게 된다. “나야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요. 나중에 더 큰 일감을 준다는데….” 강씨의 얘기다.
드디어 MB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이즈음 국내외 인맥을 활용해 MB를 지원하던 김 신부도 한국을 찾아 ‘안국 포럼’을 드나들게 된다. 그는 MB가 서울시장 시절일 때부터 복장 코디네이터를 소개해 주는 등 관계가 돈독했다. MB가 대선 후보가 된 이후 김 신부가 한국을 방문(김 신부는 경선 전이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해 김윤옥 여사와 서울 중구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에서 점심을 한다.
그 자리에는 김 여사와 김 신부 외에 김 신부의 후배 주모씨, 뉴저지에서 금은방을 하는 이모(61)씨가 함께 참석했다. 이씨는 노란 보자기를 건넨다. 거기에는 3000만원 상당(이씨 주장)의 주황색 에르메스 가방이 들어 있었다. 김 여사와 이씨는 구면이었다. 이씨가 “여사님, 얼마 전 타워팰리스 선교 모임에서 뵀지요” 하니까 김 여사가 “그래요, 어쩐지 낯이 익네요” 했다는 게 김 신부의 증언이다. 이씨는 당시 교민 사회에서 주씨와 한국에서 공무원 상대로 영어교육 사업을 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가방은 식사가 끝난 뒤 수행했던 여비서에게 건네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대선 선거전이 치열했던 그해 10월 송영길 의원이 김 여사가 10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에르메스 가방(하늘색)을 들고 다닌다며 문제를 삼는다. 그 가방은 사위가 사 준 것이었지만, 이미 받아 둔 명품 가방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김 여사가 딸을 시켜서 김 신부에게 돌려준다. 김 신부는 이 가방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몇 달 지나고 나서 이씨에게 전달한다. (김 신부는 “이씨가 미국에 있어서 줄 수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당시 뉴욕의 한 교민 방송에서 김 여사의 하늘색 에르메스 가방이 한국의 언론에 문제가 됐다는 보도를 한다. 이를 들은 이씨는 자신이 준 가방(주황색)을 문제 삼는 줄 알고 방송사에 전화를 해서 “그 가방을 내가 줬는데 왜 그러느냐”고 따지고, 방송사는 이를 녹음해 내보내면서 교민 사회에 가방 전달 사실이 퍼진다. (김 신부 증언)
대선 막바지인 12월 뉴욕의 교민 신문기자가 한국에 취재를 나온다. 기자가 가방 관련 문제를 한국 언론 등에 알리겠다고 하자 캠프에 비상이 걸린다. 가방뿐 아니라 그 안에 3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 전 의원은 결국 김 여사 측근에게 금품 문제를 확인했고, 결국 강씨가 받을 인쇄비 가운데 28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처리한 후 캠프 측에서 그 돈을 교민 신문기자에게 주고 무마했다는 게 강씨의 얘기다. 강씨는 당시 “쇼핑백에다가 돈을 넣어 왔으며, 자신에게는 대선 이후 편의를 봐주겠다는 말에 영수증을 써 줬다”고 말했다. 그는 그다음날인 12월 6일 각서를 받았다.
●강씨, 각서이행 요구하며 정두언 찾아가
하지만 강씨는 대선 홍보물도 따내지 못하고, 대선 뒤 편의제공도 받지 못하자 각서 이행을 요구하며 정두언 전 의원을 찾았다. 정 전 의원은 강씨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게 소개했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정 전 의원 소개로 청와대를 찾아갔고, 거기서 민정수석실 김모 국장을 만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뿐이었고, 다음부터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또 다른 여성 사업가 이씨는 가방을 건네받았지만,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한창이던 6월쯤 청와대를 찾아가 김 여사 면담을 요청하며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뉴욕의 이씨 지인은 “이씨가 ‘김 여사를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듣고 싶어서 찾아갔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했다. 이처럼 이씨가 김 여사를 만나기를 원했던 것은 가방 안에 3만 달러의 거금이 들어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가방만 돌아왔기 때문이라는 설도 유포됐었다. 이와 관련, 김 여사는 돈과 가방을 돌려 줬지만 중간에서 배달 사고가 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뉴욕 교민 사회에서는 이씨가 김 여사와 여권 관계자를 상대로 수억원을 요구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MB 정권이 끝나고 이 문제를 상세히 보도했던 임종규 뉴욕 뉴스메이커 선임기자는 “이씨가 대가를 요구한 것은 맞다”면서 “이후 경찰청 특수수사대가 이를 강도 높게 조사하고 나서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뉴욕 김성곤 기자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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