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라이즈' 찰리 채플린, 日서 암살 당할뻔한 사연(ft.새우튀김)

뉴스엔 2018. 3. 1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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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을 살린 건 일본인 비서의 기지였다.

1931년 일본에 방문했던 찰리 채플린이 암살 당할 뻔했다는 것.

당시 일본 총리 이누카 와 쓰요시의 암살 계획이었다.

그 이유는 찰리 채플린이 암살 당할 뻔한 날 먹었던 새우튀김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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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김명미 기자]

찰리 채플린을 살린 건 일본인 비서의 기지였다.

3월 18일 방송된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는 찰리 채플린 암살 작전에 대한 사연이 소개됐다.

영국 출신 전설적 배우이자 감독인 찰리 채플린은 지난 1914년 영화 '메이크 어 리빙'으로 데뷔, 콧수염과 옷차림으로 자신만의 캐릭터를 구축하며 최고의 스타로 우뚝 섰다. 이후 1964년 75살이 된 찰리 채플린은 자서전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뜻밖의 이야기가 있었다. 1931년 일본에 방문했던 찰리 채플린이 암살 당할 뻔했다는 것.

1932년 5월 찰리 채플린은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바로 그의 비서 고노 도라이치 때문이었다. 고노 도라이치는 일본 출신으로, 미국에 건너와 16년째 찰리 채플린의 개인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 때문에 찰리 채플린이 그의 나라인 일본을 처음으로 방문하기로 한 것.

그 시각 일본에서는 엄청난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일본 총리 이누카 와 쓰요시의 암살 계획이었다. 이 암살 계획은 당시 극우파 해군 장교들이 주도한 것으로, 당시 일본의 저성장이 총리의 탓이라고 생각해 그를 죽이고 쿠데타를 일으키기로 한 것이다. 그러던 중 찰리 채플린이 일본의 총리를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은 찰리 채플린 또한 암살하기로 했다.

암살 계획 당일, 이들은 총리의 저택에 침입해 무자비하게 총을 난사했고, 결국 총리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찰리 채플린은 멀쩡히 살아 있었다. 당시 비서 고노 도라이치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총리와의 환영회를 미루자고 했기 때문. 결국 찰리 채플린은 비서의 권유로 튀김을 먹으며 스모를 관람했고, 그 바람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는 훗날 5.15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일본 내에 군사 내각이 성립되고, 일본이 국군주의에 접어들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또 이 사건을 계기로 찰리 채플린과 고노 도라이치는 더욱 돈독한 우정을 쌓게 됐다.

흥미로운 건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 찰리 채플린이 세 번이나 더 일본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찰리 채플린이 암살 당할 뻔한 날 먹었던 새우튀김이 너무 맛있었기 때문이다. 또 찰리 채플린과 비서는 이러한 사건에도 불구, 2년 뒤 사소한 다툼으로 결별하게 됐다.(사진=MBC 캡처)

뉴스엔 김명미 mm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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