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19) 삼국사기 - 위정자에게 보내는 경고

박완규 2018. 3. 16. 21: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학사들과 대부들이 오경(五經)이나 제자(諸子)의 서책과 진·한시대 이래의 역대 중국 사서에는 간혹 넓게 통달해 자세히 말하는 이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일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망연해져서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매우 한탄할 일이다. … 이제 마땅히 박식하고 뛰어난 재사를 얻어 일가(一家)의 역사를 이루어 만세에 전해 해와 별처럼 밝게 할 일이다.”

고려 중기 유학자 김부식이 인종의 명을 받아 완성한 ‘삼국사기’를 바치면서 함께 올린 표문인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의 한 구절이다. 인종의 말을 빌려 ‘삼국사기’를 편찬한 취지를 설파했다. 당 시대의 지식인들이 중국 학문을 받아들일 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균형감각을 가질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삼국사기’는 우리나라 고대의 삼국을 서술 대상으로 한 고려의 관찬(官撰) 사서(史書)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우리나라 역사책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김부식은 묘청의 난을 진압하고 문하시중 자리에 올랐다가 개혁론자들의 복권으로 정치적 입지가 위축되자 자리에서 물러난 뒤 ‘삼국사기’ 편찬을 주관했다. 1145년 71세 나이에 ‘삼국사기’를 완성하고 1151년 생을 마감했다.

‘삼국사기’는 우리나라 고대를 돌아볼 때 반드시 읽어야 할 기본 텍스트다. 고대국가의 흥망과 신화, 전설, 신앙, 풍속 등에 관한 다양한 기록이 담겨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고대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고, 우리 전통문화의 원형을 이해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삼국사기’ 말고는 고대사의 원전(原典)으로 삼을 만한 책도 없다. ‘삼국사기’가 편찬된 지 130여년 후인 1281년 일연이 쓴 ‘삼국유사’가 있지만, 본사(本史)가 빠진 채 ‘나머지 일’인 유사(遺史)를 담은 사료라는 한계가 있다. ‘삼국사기’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고대사를 복원할 수 없다는 게 역사학계의 평가다.

‘삼국사기’는 본기(本紀) 28권, 지(志) 9권, 표(表) 3권, 열전(列傳) 10권으로 이뤄진 기전체의 역사서다. 본기는 천하를 좌우하던 제왕들의 사적을 쓴 것이다. 삼국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가 제후들의 사적을 기록하는 세가(世家)에 고려 역대 왕들의 사적을 다룬 것과 대비된다. ‘삼국사기’는 고구려의 살수대첩이나 신라의 대당 전쟁도 주체적으로 기술했다.


‘삼국사기’는 고조선·부여 등을 독립 항목으로 다루지 않고 신라에 관한 기록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이덕일은 저서 ’유물로 읽는 우리 역사’에서 “김부식 개인이 감당해야 할 비판이라기보다는 기전체라는 ‘삼국사기’의 서술 체제가 받아야 할 비판”이라고 했다. “본기, 지, 표, 열전으로 구성되는 기전체는 그 내용을 다 채울 만큼 풍부한 자료가 있어야 비로소 서술이 가능한 체제”라는 것이다. 고조선 등을 별도로 상세히 쓸 만큼 자료가 충분치 않았을 것이다. 다만 김부식이 유학 테두리에 ‘삼국사기’ 서술을 제한한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게 우리나라 역사의 자주성을 드러낸 ‘삼국유사’다. 그러므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나라를 잘 다스려야 한다’는 김부식의 역사관이 담겨 있다. 고구려본기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편찬자는 논평하여 말한다”로 시작된다. 김부식의 말이다.

“위아래가 화합하고 백성들이 화목할 때는 비록 큰 나라라 하여도 이를 빼앗지 못했지만, 국정을 의롭게 처리하지 못하고 백성을 어질게 다스리지 못해 사람들의 원성을 불러일으키게 되어서는 허물어져내려 걷잡을 수가 없었다. … 그러한즉 무릇 국가를 가진 이가 강포한 관리의 구박과 세도가의 가혹한 수탈을 방임해 인심을 잃게 된다면, 비록 정치를 잘해 어지럽히지 않고자 하고 보존해 멸망하지 않으려 한들, 이 또한 억지로 술을 마시고서 술취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역사가 위정자에게 보내는 엄중한 경고다. 나라 안팎으로 위기에 몰린 당시 상황에서 김부식이 왕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였을 것이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풍경과 상처’에서 “고대사는 살육과 판타지를 중언부언하지 않는다. 김부식은 거대한 혼돈을 두어 마디의 문장으로 내리찍는다”면서 “김부식의 역사 속에서는 ‘기근이 일어나 자녀를 파는 자가 있었다’는 단말마의 인간고와 ‘흰 개가 대궐 담 위로 올라왔다’는 공포의 판타지가 동격의 기사로 대접받고 있다”고 했다.

“정사를 쓰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지금도 저 흰 개는 짖고 있다, 우리는 해독되지 않는 것들의 울음과 짖음을 해독되지 않은 채로 후세에 전한다, 저 개는 인간세(人間世)의 들판을 향해 짖고 또 짖으리, 아마도 김부식들은 그런 두려움에 가위눌려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김부식이 진삼국사기표의 끝에 남긴 말을 떠올리게 한다.

“비록 명산에 비장할 만한 것은 아니오나 깨진 항아리에 바르는 일은 없기를 바라나이다. 제 구구한 망언을 하늘의 해가 비추고 있나이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