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차력사
[경향신문]
요새 아이들은 차력사가 무엇인지 모를 거다. 약장수랑 둘이 쿵짝짝이던 차력사. 약장수들은 마블 주인공처럼 생긴 차력사를 한 명 대동하고 동네에 나타났다. 공터에다 간이무대를 마련하고 구경꾼들을 그러모았다. 차력사는 근육질 몸에 반질반질 기름을 바르고, 장발 머리엔 띠를 동여매고서 붉은 신호등 같은 얼굴을 반짝거렸다. 약장수는 낯선 경상도 말을 썼다. 차력사와 “롱가서 묵을라꼬예(나눠 먹겠다).” 고급 경상도 말을 처음 듣게 된 나. 지금도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롱가서 묵는다는 말이 퍼뜩 떠오르게 된다.
차력사는 입에서 불을 뿜고, 손바닥으로 못을 박는가 하면 주먹으로 배를 쳐도 요동치지 않았다. 소주 됫병을 손바닥 수도로 내리치는 장면에선 관객들 모두 자지러졌다. 행여 피를 보지 않을까 염려는 뚝. 전광석화처럼 유리병을 산산조각 냈다. 철사로 몸을 조인 뒤에 끊어내는 묘기도 선보였다. 근육 사이로 핏줄이 금방 터져나올 것 같았다. 으랏차차 기합과 동시에 철사줄은 사방으로 뜯겨져나갔다.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소설가 김영현의 단편 <차력사>도 나랑 기억이 똑같았다. 이름은 박팔갑산. 칠갑산도 아니고 팔갑산. 소설 속 나는 어려서 학교 공터에서 그를 만난 뒤 훗날 쇠전의 야바위꾼들 속에서 다시 보고, 세월이 흘러 파랑새호텔 나이트클럽에서 또다시 만나게 된다. “타아~.” 늙은 사내의 기합소리. 땀에 전 주름살투성이의 뺨. 소설가는 차력사에게서 “세상의 추잡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폭풍우 속에 혼자 서 있는 사람과도 같은 외로움과 야성”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지금 박팔갑산은 어디에 살고 있을까. 내가 어려서 봤던, 꽁꽁 묶인 철사줄을 단숨에 끊어버리던 괴력의 사나이가 궁금해진다. 정작 괴물다운 괴물이 사라진 빈자리. 쇠꼬챙이보다 못한 아랫도리나 탈랑거리는 괴물들이 차지하고 있음이렷다. 약장수는 이 약을 사먹어야 이처럼 강골이 된다고 침을 튀겼지만, 차력사는 밥을 먹어야 한다고 딴소리를 했다. 약장수가 차력사를 흘겨보는 사이 자리를 뜨던 아짐씨들. 가설무대에다 무시(무) 방귀를 뿡뿡 사질러댔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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