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지옥' 구호품 전달, 자비란 없다

2018. 3. 14. 09:3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구호물자도 닿지 않는 시리아 동구타의 삶은 처참하다. 지난달 18일 공습 개시 이후 8일 현재까지 8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군 공격에 맞서 반군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내세운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지난 4일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현지 언론사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이날 아사드 대통령은 동구타 군사작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다마스커스|EPA연합뉴스

봉쇄와 공습, 포격이 계속되고 식량과 의약품은 이미 바닥났다. 국제사회가 도움을 전하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상의 지옥’이라 부른 시리아 동구타의 현실이다.

국제적십자사위원회는 8일(현지시간) 예정했던 동구타 구호물자 전달을 잠정 연기한다고 밝혔다. 정부군 공세가 이어지면서 구호물자 수송단의 안전조차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당초 유엔은 시리아 당국에 동구타 주민 7만명을 위한 구호물자 전달을 허가 받았다. 구호물자 2만7500명분을 5일에 먼저 전달하고 나머지 물자는 8일 전달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두 차례 전달 모두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유엔과 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정부군이 안전한 물자 전달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9시간 만에 끝난 구호활동

5일 1차 전달부터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날 유엔과 적십자·적신월사는 트럭 46대에 식량과 의약품을 싣고 동구타 북쪽 두마 마을에 진입했다. 지난달 18일 정부군이 대대적인 동구타 공습에 나선 이후 처음이었다. 수송단을 이끌고 동구타에 진입한 유엔 인도지원조정국(OCHA) 시리아 조정관 알리 알자타리는 “물자 전달을 위해 가능한 한 오래 마을에 머물고 싶다”며 “이튿날까지 마을에 머물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소망과는 달리 수송단은 진입 9시간 만에 동구타를 빠져나왔다. 정부군의 공습과 포격이 계속되면서 예상보다 훨씬 이르게 구호활동을 종료해야 했다.

린다 톰 OCHA 대변인은 “구호물자를 트럭에서 내리는 동안에도 폭격이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알자타리 조정관은 “두마에 들어서기 전부터 커다란 폭격음을 들어야 했다.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폭격을 피해 서둘러 동구타를 빠져나온 탓에 물자 전달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트럭 10대는 아예 문도 열지 못했다. 수송단은 주민 2만7500명을 위해 5인분 식량봉투 5500개를 준비했지만 절반밖에 전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송단은 시리아 당국이 차량 진입 전 검문을 벌여 의료물자 70%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수술용품과 신장투석기구, 인슐린 등을 빼앗겼다. 결국 트럭 3대는 거의 빈 채로 동구타에 진입했다. CNN은 “동구타에는 즉각적인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만 1000명이 넘는다”면서 “그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지난달 24일 시리아 전역에서 지체 없는 30일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현재 시리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러시아는 26일 동구타 한정으로 하루 5시간 휴전에 나선다고 선언했다. 동구타에 갇힌 40만 주민이 대피할 수 있도록 인도적 회랑을 개설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러시아는 공격이 없는 5시간 동안 구호품을 전달할 수 있고 주민들도 탈출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국제구호단체들은 비현실적인 계획이라고 비판했다. 적십자는 “검문소 통과에만 최대 하루가 걸린다”면서 “5시간 안에 수송단을 보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식량과 의약품을 싣고 지난 5일(현지시간) 시리아 동구타 두마 마을에 진입한 국제적신월사 트럭 옆으로 다리를 잃은 동구타 주민이 지나가고 있다./두마|AFP연합뉴스

기약 없는 동구타의 평화

이런 상황에서 당국의 허가까지 얻어 수송단 차량이 동구타 안으로 진입했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수송단 차량이 마을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면 반대로 시민들의 피난도 이어질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었다. 그러나 그 수송단 차량은 공습과 포격 탓에 예정보다 일찍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5일 전하지 못한 물자까지 같이 전하려 했던 2차 전달계획은 아예 연기됐다. 〈뉴욕타임스〉는 9시간 만에 종료된 1차 물자 전달 상황을 지적하며 “장애와 불확실성이 도드라졌다”고 적었다.

구호물자도 닿지 않는 동구타의 삶은 처참하다. 기본적인 식량 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도 크게 올랐다. 동구타에서 빵 한 묶음 가격은 전국 평균보다 22배나 높다. 5세 이하 아동 12%가 사실상 영양실조 상태다. 정부군의 포격과 공습으로 부상자가 넘쳐나는데 의료진과 의약품, 진료장비, 전기 모두가 부족하다. 현지에서 활동 중인 한 의사는 지난달 중동전문매체 〈미들이스트아이〉 인터뷰에서 “부상자들을 실어나를 앰뷸런스가 부족해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지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달 18일 공습 개시 이후 8일 현재까지 8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군 공격에 맞서 반군은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내세운다. 시리아 정권을 비호하는 러시아는 반군이 투항한다면 가족들과 함께 동구타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반군은 거부했다.

수송단이 처음 동구타에 진입했던 지난 5일, 하산 타키에딘이라는 이름의 주민은 소셜미디어에 ‘정부군이 계속 포탄을 떨어뜨리고 있는 상황에서 구호물자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나는 구호물자 전달에서 아무런 긍정적인 점도 찾을 수 없다’고 적었다. 포격을 피해 이웃과 함께 지하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그는 동구타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힘들게 소셜미디어에 접근했다면서 ‘포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공격이 계속되는 한 상황은 달라질 수 없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은 지난 4일 동구타 군사작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테러세력이 동구타 내에서 여전히 활개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인 보호를 위해서라도 공격을 이어가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정부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서방국가들의 비판은 “터무니 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모든 것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구타는 수도 다마스커스 바로 인근이다. 아사드는 동구타의 반군이 언제든 다마스커스를 겨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상의 지옥’ 동구타는 아직도 기약 없는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심진용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im@kyunghyang.com>

© 주간경향 (weekly.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신문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