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천 칼럼] GM 군산 공장과 페어팩스 공장

조선비즈 논설주간 2018. 3. 6.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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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의 GM 공장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선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유세가 있었다. 1919년에 문을 연 이 공장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유서 깊은 자동차 공장이었다. 오바마 의원은 “(미국 자동차 산업이 어렵지만) 이 공장은 앞으로도 수백년간 이곳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너무 성급한 발언이었다. 공화당 소속으로 제인스빌 토박이인 폴 라이언 하원의원(현 하원의장)은 그해 6월 릭 왜고너 GM 회장의 전화를 받았다. 제인스빌 공장을 폐쇄할 방침이라는 통보였다. 당시 GM은 2007년에 20억 달러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 악화로 크게 고전하고 있었다.

경악한 라이언 의원은 곧바로 제인스빌 공장 살리기에 나섰다. 다른 위스콘신주 의원들과 힘을 합쳐 세금 감면과 보조금 지급 등 모두 1억9500만 달러 상당의 지원안을 마련했다. 위스콘신주 역사에서 최대 규모의 기업 지원 정책이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제인스빌 공장은 그해 연말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문을 닫았다.

제인스빌은 인구 6만3000명의 중산층 도시였다. GM 공장이 직원 4800명으로 최대 고용주였다. 2대, 3대에 걸친 ‘GM 가족’이 적지 않았다. GM 공장 폐쇄는 날벼락이나 다름 없었다. GM에 자동차 시트 등을 납품하던 협력업체까지 문을 닫는 등 지역 경제가 쑥밭이 됐다. 실업률이 13%까지 치솟고 자살률이 2배로 높아지기도 했다.

공장 폐쇄 이후 9년이 지난 지금도 그 상흔이 남아 있다. 실업률은 4%대로 떨어져 거의 정상으로 돌아갔지만 임금 수준이 훨씬 낮아졌다. 해고 근로자들은 재취업에 성공한 경우에도 대부분 과거 생활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GM 가족’ 중에서 부친은 퇴직 연금으로 여유있는 노후를 보내는데 자식은 ‘근로빈곤층’으로 전락한 사례가 적지 않다.

제인스빌 뿐만이 아니다. GM은 2009년 파산 신청을 하고 구조조정을 거쳐 다시 살아나는 과정에서 미국내 공장을 10개 이상 폐쇄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었고, 지역 경제도 큰 타격을 받았다. 당사자들에게는 악몽이고 비극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노조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고통을 분담했다. GM이 경쟁력을 되찾은 것은 그 덕분이다.

한국GM 노조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이런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군산공장 폐쇄 방침에 대해 “GM이 본사 이익을 위해 해외공장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식의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GM 노조는 “사측이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며 구조조정 저지 투쟁에 나섰다.

GM은 요즘도 수시로 인력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작년 5월엔 미시간주 랜싱 델타 타운십 공장에서 1100명, 9월엔 캔자스주 페어팩스 공장에서 1000명, 11월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햄트램크 공장에서 1500명을 감원했다. 중소형 승용차 판매 부진에 따른 생산 감축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자리 압박이 거세지만 GM은 구조조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미국 기업에선 경기가 나빠지면 노동자를 일시 해고(layoff)했다가 경기가 호전되면 다시 고용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국에선 이런 인력 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국내 자동차 회사들은 노조의 반대로 인해 일감이 적은 생산 라인 노동자를 일감이 많은 생산라인으로 전환 배치하는 것조차 제대로 못한다. 일시 해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인력 운용의 경직성 때문에 한국GM은 군산 공장 가동률이 20% 밑으로 떨어져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공장 가동이 멈췄을 때도 원래 임금의 80%를 휴업수당으로 줘야 했다. 전세계 GM 사업장에서 이런 곳은 없다. 인력 구조조정보다 더 극단적인 공장 폐쇄로 가게 된 이유다. 노조가 무슨 염치로 GM에 대해 ‘먹튀’운운하는지 모르겠다.

GM은 지난 2월 캔자스주 페어팩스 공장에 2억65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캐딜락 브랜드의 첫 SUV 모델인 ‘XT4’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GM이 군산 공장 폐쇄하면서 미국에선 거액을 투자한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작년에 페어팩스 공장에서 감원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무시한 주장이다.

GM이 군산 공장이 아닌 페어팩스 공장에 신차를 배정한 것은 당연한 결정이다. 미국내 다른 공장을 선택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노동 유연성을 비롯해 어떤 기준으로 봐도 군산 공장이 미국 GM 공장들보다 나은 점을 찾을 수 없다. 세계 어느 기업도 GM과 다른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GM 노조는 무조건 공장 폐쇄 철회, 고용 보장, 구조조정 저지를 외치고 있다. 논리도 없고, 현실적 가능성이나 상식도 무시하는 모습이다. “GM이 본사의 이익이 아니라 한국GM 노조를 위한 경영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이런 억지와 생떼가 한국GM의 미래를 더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회사가 망가질대로 망가진 상황에서도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금호타이어 노조의 막무가내와 판박이다. 무슨 배짱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GM 노조와 민노총은 그동안 해왔던 방식대로 일자리를 파괴하는 길로 내달리고 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면 이제는 바뀔 때도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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