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귀하고 귀한 것
[경향신문]
새싹 봄싹이 싹싹 올라왔다. 뒷산 골짝 참꽃과 산목련도 만개가 머지않았다. 아침나절 그토록 기다리던 봄비가 내렸다. 따스한 침묵을 깬 후둑 후두둑 빗소리에 가슴까지 흠씬 파고들었다. 성북동 길상사 관세음보살상이 성모 마리아상을 닮았듯 그만그만 빼닮은 잎싹들이 도처에서 피어나고 있어라. 살아 있는 모든 게 참말 귀한 순간들이다.
어원을 살펴보면 귀하지 않을 때 ‘귀찮다’라고 한단다. 하기 싫거나 성가시면 ‘귀찮다’고 하는데, ‘귀치않다’가 줄어서 된 말. 마른 시래기들 달려 있던 뒷벽에다 살림을 차린 딱새. 귀하고 귀한 알을 낳을 봄날. 개울에 얼음이 녹을 때마다 나는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 새의 기운찬 울음소리를 떠올려 본다. 엇비슷 귀한 것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 허투루 귀찮게 여길 게 도무지 없다. 공경. 우러러 모심. 정성을 다 쏟는 사랑. 온전히 아껴가면서 맞잡은 손을 떠올리면 눈가에 물기부터 맺히는 사랑. 벚꽃 날리는 가로수를 따라 걸으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어찌 잊을까.
여성에게 함부로 대한 흉측하고 민망한 소식들이 나라를 뒤덮고 있다. 세숫비누 세탁비누로 쓱싹 씻어내고 싶은 얘기들. 손 한번 잡는 일도 한없이 떨렸던 처음들. 두고두고 미안한 작별과 부디 잘되라는 기도와 기억이 그래도 이 세계를 ‘넉넉하고 살 만하게’ 지탱하고 있음이겠다. “어떤 죄인의 눈물은 너무 깨끗하여 내가 되레 죄인이었다”는 박은정 시인의 글귀를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는 시절이다. 진실한 눈물이 흐르지 않는 세상은 비가 와도 해갈되지 않는 불모지 사막이나 마찬가지.
양귀비 염색약을 발라도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우리 동네 한 텔레비전은 하루 종일 켜놓아 누가 보지 않아도 중계방송을 하고 드라마를 했다. 할머니가 병원에서 퇴원한 날까지 몇주 동안을 혼자 그랬다. 귀하고 귀한 시청자가 돌아왔는데도 축하공연도 없었다. 사람은 각자가 귀한 인생을 살아야지 티브이 속 드라마 주인공은, 아니올시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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