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다가오는 '목말사회'] '과잉행동장애' 아이 방관하는 사회.. 속만 끓이는 부모

윤지로 2018. 2. 26.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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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함께 대신 열외.. 짐이 된 아이들 / 상처받는 학부모 / 교사가 "쟤는 정신이 이상한 아이" / 친구들 앞에서 대놓고 언어폭력 / "그냥 집에서 가르치시라" 압박도 / 억울한 교사들 / "ADHD 학생 달래느라 수업 피해 커 / 정서 불안 교육법 배운 적 없는데 / 교사에 책임 다 넘겨 스트레스 극심" / 무관심한 정부 / 인력·예산 부족.. 관련 통계도 없어 / "핵가족·경쟁 등 사회 문제가 원인 / 국가가 문제 해결 적극 나설 때"
머잖아 우리나라는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해야 하는 ‘목말사회’가 됩니다. 이미 지난해부터 생산가능인구는 줄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서 주인공은 ‘출생아 수’, ‘합계출산율 몇명’ 같은 양적 목표였습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의 삶과 그들의 무게는 ‘아이는 행복’이라는 일방적인 구호에 가려져 있거나 조연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세계일보는 창간 29주년을 맞아 저출산·고령화의 새로운 해법을 고민해보는 ‘다가오는 목말사회’를 연재합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체벌이나 잔소리로는 1%도 고칠 수 없대요. 그런데 학교에서 말 안 듣는 아이들한테 제일 많이 하는 게 잔소리잖아요. 저희 아이는 계속 지적을 받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가 날 정도로 손을 물어뜯었어요. 그런 상황에서도 죄 지은 사람처럼 머리를 조아리는 건 학부모 쪽이었어요.”(ADHD 학부모 이보화(가명·여)씨)

“요즘엔 심각한 정서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명씩 있어요. 어린 학생 중에는 갑자기 교실을 뛰쳐나가는 경우도 있고요. 선생님이 아이를 데려오려 나가면 그 한 명 때문에 나머지 29명의 수업은 그걸로 끝이에요. ADHD 부모님의 속상한 마음 충분히 이해하지만 교사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아요.”(A초등학교 최경희 교사)

머잖아 우리나라는 젊은이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는 ‘목말사회’가 된다. 목말사회의 충격을 줄이려면 아이를 많이 낳는 것 못잖게 건강한 사회 일원으로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함께’보다는 ‘열외’를 먼저 경험한다. 아이의 문제행동은 자녀를 잘못 기른 부모나 학생을 통제하지 못한 교사 잘못이 되고 만다.

◆“왜 모든 게 부모 탓인가요”

이보화씨는 아들 대현(올해 14)군의 문제를 초등학교 1학년 때 알았다. 담임교사는 “대현이가 수업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멍하니 있다”고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이씨는 그 길로 아들을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2년 정도면 충분히 효과를 볼 것이라던 놀이치료는 6년 넘게 이어졌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조용한 ADHD’ 진단이 나와 약도 먹였다. 처짐과 불면증, 식욕감퇴 등 온갖 부작용이 나타났다.

담담하게 대현군의 치료과정을 전하던 이씨가 울컥하는 감정을 내보인 건 교사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대현이가 5학년 때였어요. 학년이 시작되자마자 담임선생님을 만나 아이에 대해 말했죠. 금방 사라지는 증세가 아니니 기다려 달라고, 조금만 이해해 달라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은 ‘나도 전에 심리를 공부해 봐서 잘 안다’고 하시더군요.”

아이들 마음을 잘 안다던 교사는 2학기가 되자 대현이가 집에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학교에 홈스쿨링을 희망한다고 써서 내라고 했어요. 담임이 권했다는 말은 하지 말고, 엄마인 제가 홈스쿨링을 원한다고 적으라더군요.”
초등학교 1학년 때 ADHD 진단을 받은 승우(가명)군이 고등학교때 그린 그림. 어려서부터 미술을 좋아한 승우군은 대학에서도 미술을 전공할 계획이다.
김경림씨 제공
놀라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모든 상황이 대현이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며칠 뒤 대현이의 짐을 정리하러 학교에 들른 이씨는 대현이의 서랍에 있는 연습장을 보고서야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챘다. 11살 대현이의 연습장엔 담임을 악마로 표현해서 저주하는 그림이 빼곡했던 것이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이씨는 대현이 친구들과 학부모로부터 교실에서 벌어진 일을 전해듣고는 가슴이 무너졌다.

“대현이를 대하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었어요. 아이들이 떠들면 ‘대현이도 정신이 이상한데, 너희들도 대현이 닮아서 그러느냐’고 한다든가, 친구들 보는 앞에서 대현이가 멍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거예요. 언어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요. 집중을 못할 뿐 인지가 떨어지는 아이도 아닌데 매일 그런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씨는 “학교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도 크다”고 토로했다.

김경림(여)씨는 일찌감치 대안학교로 방향을 돌렸다. 김씨의 아들 승우(가명·올해 19)군은 다섯살 때 한글을 떼고 유치원에서 친구들에게 책을 읽어주곤 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 후 만난 담임은 뜻밖의 얘기를 했다. 승우가 한글을 몰라 교과서도 못 찾고, 수업도 전혀 못 따라온다는 것이다.

당시 김씨는 직장이 멀어 하루 한 시간밖에 승우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 때문인가 싶어 직장 근처로 학교를 옮겼지만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3학년이 돼도 승우는 계속 지적받는 아이였고,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됐다. 병원에서는 ADHD라고 했다. 김씨는 학교에 진단명을 알리는 대신 대안학교를 택했다.

“학교에 말해봐야 더 배제될 것 같았어요. 진단이 내려진 이상 승우는 교육이 아니라 치료의 대상이 되는 거잖아요. 승우의 문제행동은 학교 교육 때문이 아니라 승우와 저의 잘못 때문이라는 배제의 명분이 생긴 거죠.”

대안학교에 입학한 지 한 학기가 지나자 승우는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6학년 때 일반학교로 돌아와서도 더는 문제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승우는 별 문제없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다음 달 대학에 진학한다.


◆“교사의 심적 고충도 심해”

대현이와 승우 같은 학생을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 교사의 잘못만은 아니다.

경기 광명시 A초 최경희 교사는 학교 현장에서도 답답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반 아이가 갑자기 뛰쳐나가면 수업 진행이 안 돼요. 보조교사든 상담사든 도움을 좀 받으면 좋겠는데 그런 인력이 없어요. 그래서 어떨 땐 교감선생님이 나서기도 해요. 작년엔 교사에게 침 뱉고 욕하면서 하루 종일 공격성을 보이는 아이가 있었어요. 이런 아이를 매일 7~8시간씩 보면 녹다운돼요. 담임 혼자 그런 일을 몇 년간 겪다 보면 짜증과 분노가 쌓이고 병가를 내는 경우도 생기죠.”

그는 “사실 사범대·교육대에서 수업하는 방법만 배웠지, 정서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교사들도 솔직히 잘 모른다”며 “그런데도 모든 상황을 교사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심적 고충이 상당하다”고 전했다.

◆정서문제, 사회가 나서야

‘교사에게 상처받았다’는 부모와 ‘우리도 힘들다’는 교사들의 고충 속에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바로 사회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고 하지만 정부 통계조차 없다.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에 대한 정신질환 실태조사는 지난해 처음 시작돼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실태 파악이 부실하니 대책도 듬성듬성 구멍이 나 있다.

교육부는 2009년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을 돕기 위해 학내 상담실인 ‘위클래스’를 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6000여 초등학교 중 위클래스가 설치된 곳은 2168곳(35.9%)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전문상담인력이 있는 곳은 절반(1103개교)뿐이다.

학교 밖 자원은 컨트롤타워 없이 뿔뿔이 흩어져 있다. 보건복지부가 시군구의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벌이는 아동청소년 정신건강증진사업이 그나마 대표적인데 올해 예산은 32억5000만원, 센터 1곳당 2500만원꼴이다.

여성가족부도 디딤센터를 운영한다. 학령기 아동이 기숙생활을 하며 심리치유를 받는 곳인데 이용 희망자들이 많아 최장 4개월의 프로그램이 끝나면 재이용은 불가능하다.

교육부는 2003년 학교와 사회 복지시스템을 연결해 줄 교육복지사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시행 15년이 되도록 학교에 배치된 교육복지사는 1684명으로 전체 학교의 15%도 안 된다.

정부의 무관심은 사설기관 관리에서도 드러난다. 민간 심리상담센터는 심리를 ‘치료’하는 곳이지만 일반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치료비 상한도, 환불규정도 없다. 학원 교습비 공개 같은 최소한의 지침도 없다. 서유헌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장은 “ADHD 등 정서문제는 핵가족화, 경쟁적 사회분위기, 과도한 학습부담 등 사회 전반의 문제가 표출된 것”이라며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인천 지역 중학교에서 오랜기간 학생상담부장을 맡은 안보경(여) 교사도 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마음이 아픈 이유는 따지고 보면 사회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부모가 너무 바빠서 혹은 교육적 돌봄에서 소외되었을 수도 있죠. 이건 아이는 물론 부모나 교사 개인의 잘못이 아니에요. 결국 아이는 사회가 같이 길러야 하는 것 아닐까요.”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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