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읽기] 이중적 성도덕과 괴물의 탄생 / 김누리

2018. 2. 25. 17: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투(Me Too) 운동'의 거센 해일이 한국 사회에 휘몰아치고 있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미투는 또한 성적 착취가 전사회적이고 전방위적임을 폭로한다.

특히 한국 사회의 이중적 성도덕은 심각한 문제이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미투(Me Too) 운동’의 거센 해일이 한국 사회에 휘몰아치고 있다. 법조계에서 시작된 쓰나미는 문화예술계와 학계를 덮치더니 이제 종교계에까지 이르렀다. 사계의 권력자들이 사나운 분노의 물살에 쓸려 허둥대며 떠내려간다. 이는 거대한 문화혁명의 전조인가, 아니면 그저 일과성 해프닝인가.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미개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얼마나 야만적인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우리네 일상이 매순간 인간성의 막장과 조우하는 아우슈비츠였음에 경악한다. 미투는 또한 성적 착취가 전사회적이고 전방위적임을 폭로한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의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으며, 문화계에서 법조계까지 사회적 경계를 모른다.

만연한 성적 착취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에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이중적 성도덕은 심각한 문제이다. 공적 담론 수준에서는 성에 대해 지극히 억압적인 도덕적 엄숙주의가 지배하지만, 사적 차원에서는 성이 일상적으로 거래되고, 광범위하게 소비되며, 은밀하게 착취된다. 이러한 이중성이- ‘청산되지 않은 과거’와 더불어- 한국 사회에 배어 있는 악취의 근원이자, 한국 사회 미성숙성의 심층 원인이다.

이중적 성모럴 아래 성장한 한국 남성에게는 자신이 ‘괴물’이 되었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사회화 과정 자체가 곧 괴물의 탄생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한국에서 학교 교육을 받고 군대 생활을 거친 남자가 과연 성숙한 성의식을 갖는 것이 가능할까? 여성을 철저히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문화 속에서 ‘성적 미성숙’ 상태를 넘어설 수 있을까?

왜곡된 성문화와 이중적 성도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올바른 성교육이 필요하다. 독일의 성교육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에서는 68혁명 이후 1970년대 초부터 교육개혁이 이루어져, 초등학교부터 성교육을 비중 있게 시행해왔다. 성교육을 중시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성교육이 민주주의 교육의 핵심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자는 불의한 권력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가져야 하는데, 강한 자아는 바로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서만 길러진다. 성을 억압하고 죄악시할수록, 아이는 강한 죄의식을 내면화하고, 죄의식이 강한 아이일수록 권위에 굴종하는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된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권위주의적 성격 이론’이 독일 성교육의 철학적 배경이다. 독일 성교육의 제1원칙은 ‘성에 대해서 윤리적 판단을 금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을 선과 악을 가르는 윤리의 영역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관점에 입각한 것이다. 그래선지 나는 독일 청소년 중에서 성과 관련하여 죄의식을 가진 아이를 본 적이 없다.

우리도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청소년을 죄의식에서 해방된 당당한 성적 주체로 교육하여, 권위주의적으로 왜곡된 성문화를 지양하고, 민주주의의 교육적 토대를 확장해야 한다.

이윤택은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자책했지만, 미투 사태의 본질은 ‘나쁜 인간의 더러운 욕망’이 아니라, 미성숙한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이다. 문제는 저들이 예외적인 악인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세계의 왕’으로서 사회의 병리성을 전형적으로 체현한 인물들이라는 데 있다. ‘정상성의 병리성’(에리히 프롬)이 문제인 것이다. 이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문화혁명에 버금가는 대변혁이 필요하다. 미투 운동이 시대착오적이고 위선적인 이 땅의 성문화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전환의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 한겨레 절친이 되어 주세요! [신문구독]
[사람과 동물을 잇다 : 애니멀피플][카카오톡]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