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낭산까지 아우른 신라의 거대사원터 위용 드러내다
국내 발굴사상 최대규모 대석단 기단 건물지
터 내부 회랑과 십이지신상 기단건물터 주목
학계 "신라 불교사 왕경역사 새롭게 봐야"
[한겨레]
국가사적인 경주시 구황동 낭산 기슭(전 황복사터)에서 신라 왕실사원으로 추정되는 거대 사찰터가 발견됐다. 인근에 자취가 남아 있는 국찰 황룡사의 위세에 버금가는, 국내 발굴 사상 최대 규모의 대석단 기단 건물터와 대형 회랑을 비롯해 십이지신상을 새긴 건물 기단과 연못 등 크고 작은 유적들이 무더기로 드러났다. 유적 안에서는 금동입불상, 보살입상 등 불상 7점을 비롯해 1000점 이상의 유물도 쏟아졌다.
2년 전부터 낭산 일대를 조사해온 성림문화재연구원은 31일 낮 현장 설명회를 열어 발굴 성과를 공개했다. 조사는 전 황복사터 석탑 동쪽으로 약 30m 떨어진 경작지에서 지난해 8월부터 진행됐으며, 발굴 과정에서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건물터 기단을 필두로 대석단 기단건물터와 딸림건물터, 회랑터, 담장터, 배수로, 도로터, 연못터 등이 잇따라 확인됐다고 한다.
왕실사원 성격과 관련해 주목되는 곳은 탑 아래의 대석단 기단 건물터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터에 덧붙여 동-서쪽 축선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동·남쪽 면에 돌을 다듬은 장대석을, 북쪽 면에는 자연석을 쌓아올려 약 60m에 이르는 대석단을 꾸린 뒤 중앙부 북쪽에 돌계단을 놓았다. 내부에 대형 회랑을 돌린 독특한 얼개는 경주의 기존 신라 유적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가람 배치 방식을 보여준다. 조사단은 특수 용도의 건물이거나 이곳에 있었다고 추정해온 신라 고찰 황복사의 중심 건물일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건물터 뒤에 3층석탑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문-탑-금당의 일반적인 고대 가람 배치와 다른 문-금당-탑의 배치구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해졌다.
십이지신상 기단 건물터는 토끼, 뱀, 말, 양의 십이지신상 4구가 각각 조각된 석재가 불규칙한 간격으로 기단 쪽에 놓여 있다. 대석단 건물터와 함께 사원의 주요 전각터로 보인다. 1928년 일본 학자 노세 우시조가 여기서 십이지신상을 발굴조사했다가 다시 묻은 내력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 5월 전면부의 십이지신상 4구를 90년 만에 재발굴(<한겨레> 2017년 9월5일치 18면)한 데 이어 후속 발굴로 터의 앞쪽 윤곽이 드러났다. 8세기 중후반께 유물로 가늠하는 기단부 십이지신상은 김유신묘의 십이지신상과 함께 조형미가 가장 뛰어난 신라 십이지신상의 걸작으로 꼽힌다. 축조 당시 이 상들의 탱석(버티는 돌)은 다른 왕릉에서 옮겨와 기단석으로 재사용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토기와 기와다. 대체로 7~9세기께 유물들로 화려한 장식 갑옷을 입은 신장상(불법을 지키는 신)이 새겨진 화상석, 치미(지붕 용마루 끝 날개장식) 등이 확인돼 격조 높은 건물이 들어섰음을 실증한다. 금동불입상, 금동보살입상 등 불상 7점도 같이 나와 유적 일대가 7~10세기 왕실사원으로 맥을 이었음을 보여준다. 주변 도로터 등의 배치 구도를 고려할 때, 남산 동쪽인 경주 보문동 일대까지 통일신라 도시계획인 바둑판 모양의 방리제가 실시됐다는 것도 알 수 있다는 게 조사단 쪽의 설명이다. 현장을 본 주보돈 경북대 교수(신라사)는 “신라인의 사상과 종교적 성소였던 낭산 일대를 중심축으로 거대한 왕실 사원이 만들어져 부근 도심 평지의 황룡사와 나란히 배치되는 구도를 이루면서 왕경의 핵심 경관을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고 짚었다.
낭산 동쪽 기슭은 황복사 탑으로 전해지는 삼층석탑이 있어 전 황복사터로 불리운다. 황복사는 654년(진덕여왕 8년) 의상대사가 출가한 고찰로, 1942년 전 황복사터 삼층석탑을 해체할 당시 나온 금동사리함 뚜껑에서 ‘종묘성령선원가람'(宗廟聖靈禪院伽藍)이란 명문이 드러나 신라왕실의 종묘 구실을 한 사원으로 추정돼 왔다. 탑 안에서 나온 금제여래입상·금제여래좌상(국보)은 신라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최고 명품들로 평가받는다. 경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성림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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