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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미디어] 'DUGOUT Report' 성지고등학교 조선명

조회수 2018. 2. 2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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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에도 꺾이지 않은 야구 열정

“뛰어남이란 항상 더 잘하려는 노력에서 나오는 꾸준한 결과물이다.” 전 NBA 감독 팻 라일리가 한 말이다. 지난해 ‘2018 KBO리그 리그 2차 신인드래프트’ 현장. 오늘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한 선수가 2차 4라운드 전체 37순위로 지명됐다. 대안학교 출신 첫 프로 지명자 조선명의 이야기다.

Photographer Mino Hwang   Editor Choi Yun Sik   Location LG Champions Park


# 대안학교 첫 프로 지명자

<더그아웃 매거진>과 첫 만남입니다. 독자분들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성지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작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4라운드로 LG 트윈스에 입단한 조선명입니다.


대안학교 출신 첫 번째 프로지명자인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아요.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대안학교에서 첫 프로지명자가 나왔다고 하니까 기분이 묘했어요. 새롭기도 하고 최초라는 타이틀도 있고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최초라는 타이틀이 뿌듯하기도 하겠지만 부담스럽지는 않은가요?

부담스러운 것이 몇 가지 있기는 한데… (어떤 게 있나요?) 대안학교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가장 크죠. 하지만 저의 야구를 할 수 있다면 편견은 중요치 않은 것 같아요. 꾸준히 노력할 뿐입니다.


본인이 지명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해서 드래프트 현장에 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성적도 좋지 못했고, 부족한 부분도 많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프로 지명은 꿈꾸지도 못했어요. 대학에 진학해 단점을 매우고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각오했죠. 그런데 LG가 지명을 해준 거예요. 감사한 마음이 정말 컸죠.


그럼 지명된 것은 어떻게 알았나요?

고교 감독님이 핸드폰으로 드래프트 실시간 문자 중계를 보여주셨어요. 시간이 지나도 제 이름은 나오지 않아서 ‘나는 지명이 안 되겠구나’ 싶었는데 2차 4라운드에 제 이름이 불려서 깜짝 놀랐어요.


당시 혼자 드래프트 상황을 보고 있었나요?

아니요. 선수들하고 다 같이 봤습니다. (그러면 난리 났겠는데요?) 네, (웃음) 같이 있던 선수들도 난리 났죠. 저는 너무 기쁜 나머지 감독님 핸드폰을 집어 던져서 (웃음) (다른 의미로 감독님이 깜짝 놀라셨겠어요?) 제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만… 그래서 바로 감독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도 이해하셨는지 같이 웃어주시고 축하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상위 라운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964명 중에 37순위에 지명이 됐어요. 높은 순위로 프로 무대를 밟게 됐어요.

솔직히 저도 4라운드에 지명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만약 지명된다면 7~8라운드? 사실 10라운드에서라도 제 이름이 불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4라운드에 뽑혀서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송구홍 퓨처스 감독님께서 저의 절실함, 성장 가능성과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보셨다고 말씀하셨어요. 지명 순번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구단 스카우트는 조선명 선수의 어떤 점을 보고 지명했다고 말했나요?

강한 정신력과 깔끔한 투구 폼! (뿌듯) 저희 고교 팀이 약팀이에요. 그런데 저는 마운드에 오르면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강한 편이에요. 승부욕이 대단하죠. 이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또한 야구를 오래 하지는 않았지만, 간결한 투구 폼에 구속도 괜찮게 나오는 투수라고 말해주셨어요.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는 지명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멘탈이 아닐까요? (미소) 주변 지인들과 스카우트님들, 감독님들이 이구동성 이야기를 해주세요. 강한 정신력이 저의 강점이라고요. 특히 동기들이 ‘너는 정말 강한 멘탈을 가졌다’고 말해줘요.


성지고 야구부의 훈련 장소가 있는 김포 월곶면 이장님께서 직접 현수막을 걸어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변에서 많은 축하 인사를 받았을 텐데.

학교 이사장님께서도 많은 축하를 해주셨어요. 이상하게 제가 사는 동네에도 플래카드가 안 걸렸는데 다른 곳에 걸려 있어서… (웃음) 당황스럽기도 했어요. 그래도 축하해주는 마음은 다 똑같으니까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지명을 받고,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어머니께서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고 있는데, 저를 뒷바라지 하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처음에는 제가 야구를 하는 데 반대를 하셨어요. 아시다시피 야구가 돈이 많이 들잖아요. 제가 뒤늦게 야구를 시작한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야구에 대한 저의 절실한 모습을 보시고 져주셨어요. 어머니께 죄송하고, 항상 감사합니다.


성지고 첫 지명자니 후배들에게는 롤모델이 될 수 있겠어요.

그렇죠. (웃음) 근데 아직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1군 무대에 올라가서 TV에 나온 것도 아니고 유니폼만 입고 사진만 찍었지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요. 후배들이 신기해하는데 아직은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제 1군 무대 딱 데뷔하고 나서 모교 방문하면 후배들의 눈빛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네요. (웃음)


후배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한번 남겨주세요.

학교 후배 중에 박지성이라는 선수가 있어요. (웃음) 축구선수가 떠오르는 이름이죠? (박)지성이가 특히 저를 잘 따라줬어요. 이밖에도 (이)승규, 새로 들어온 포수 (전)유선이를 비롯해 성지고 선수 모두가 나태해지지 말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선수들에게만 하면 성지고 감독님이 서운하실 것 같으니,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인사 한마디 부탁드려요.

한길세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가 감독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올바르게 지도해주셨기 때문에 LG라는 명문 구단에 입단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1군 무대에 올라가 보답하겠습니다.


혹시 조선명 선수의 롤모델은 어떻게 되나요?

두 분이 있어요. 류제국 선배님과 일본프로야구 기쿠치 유세이 선수! 류제국 선배님은 마운드에서 뛰어난 완급조절을 보여주시고, 더그아웃에서는 강한 리더십으로 선수단을 이끌잖아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일본야구를 즐겨보는데 투수들이 정교하게 타자들을 상대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이 중에서 기쿠치 선수의 투구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조선명 선수 투구 폼이 간결하다는 평이 많은데, 일본야구를 많이 본 영향이지 않을까요?

네. 아무래도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 야구선수들을 보면 유연성도 뛰어나고 공도 잘 던지는데, 그 모습을 많이 따라해 보려고 스스로 노력을 해요. 이것저것 시도를 많이 해보고 코치님한테 많이 물어봤습니다. 덕분에 투구 폼이 좀 더 깔끔해지고 간결해진 것 같아요.


# 조금은 늦은 꿈 ‘야구 선수’

어떤 계기로 야구를 하게 되었나요.

처음 야구를 접한 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에요.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09년에 나지완 선수의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이었고요. 그 장면이 너무 감명 깊어 같은 무대를 밟고 싶다는 꿈을 꾸었어요. 나지완 선수에게 감정이입을 한 거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러면 투수보다 타자에 더 끌렸을 텐데 투수가 됐네요.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타자로 시작했어요. 유격수가 주 포지션이었어요. 고등학교를 올라와서도 타격 성적이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깨가 좋아 코치님들이 투수를 권유하셨죠. 1학년 후반기부터 마운드에 올랐어요. (중학교 때 클럽야구를 할 때는 타자였나요?) 네, 그때도 계속 유격수로 나갔어요. 당시에는 투수로 등판할 때는 제구가 안 좋아서 볼넷을 많이 내줬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를 희망하면 대체로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야구부에 들어가게 되는데 특이하게 클럽야구를 했어요.

중학교 때 친구들이 먼저 주니어 야구단에서 야구를 했어요. 당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야구를 하고 싶어서 어머님께 말씀드렸죠. 결국 허락을 받고 주니어 야구단에 입단했습니다. 어찌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야구를 시작하게 됐는데, 주니어 감독님께서 저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결국 중3 때 야구선수를 하자고 결심이 섰죠.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는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무작정 야구선수를 하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제 가능성을 봤어요. 다른 선수들도 경험했겠지만 경기를 하다 보면 어떤 순간에 제가 경쟁에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이런 경험을 몇 번 느끼면서 ‘촉’이 왔죠. 좀 더 열심히 하면 될 것 같다는 믿음도 쌓였고, 만약 프로를 못 가더라도 대학에 가서 노력해 프로에 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주니어 팀에 있었던 특성상 학교에 있는 야구부에 입단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많은 팀에서 거절을 당할 때 심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지 않았나요.

거의 모든 학교에서 입부 거절을 당했어요. 정신적으로 위축이 돼 밥도 잘 못 먹었고요. 어린 나이에 너무도 냉정한 평가를 받아서 포기를 하고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야구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겠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지 않았죠.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야구와 관련된 분들도 계시고 아닌 분들도 있지만 응원을 많이 해주셨어요. 덕분에 마음을 다시 다잡고 더 노력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조선명 선수가 정신적으로 단단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아무래도 이런 힘든 시기가 성장의 발판이 됐어요.

그렇죠. 실패를 맛봐야 성공을 아는 거잖아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고 저는 잘 모르겠지만 실패와 관련된 말들이 참 많은데…. (웃음) 어린 나이에 시련을 온 몸으로 겪어 봤기 때문에 더 단단해지고 멘탈도 강해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나를 거절했던 사람들에게 갚아주자 이를 갈았죠. (웃음)


# 성지고등학교 야구부

일반 고등학교가 아닌 대안학교 성지고에 입학했어요. 어떤 이유였나요?

절실함이 제일 컸어요. 야구를 정말 하고 싶어서 야구를 할 수 있다면 어디든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고등학교에 연락을 했어요. 테스트를 보러 가기도 했는데 어떤 곳에서는 주니어 팀에 있었단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그러다가 주니어 팀에 있던 코치님이 성지고에서 야구부를 창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코치님께서 야구가 정말 하고 싶으면 어머니와 상의를 하고 야구부에 들어오는 것이 어떻겠냐 하셨죠.


그런데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말씀은 드리기 어렵지만 정말 심하게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밥도 안 먹고 집에도 안 들어가고 시위를 했어요. 그럴 정도로 야구가 너무 절실했어요. 경기도 뛰고 싶고, 경쟁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머니와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했어요. 결국 허락을 받고, 성지고 야구부에 들어가게 됐죠. 막상 들어가 보니까 인원도 적고 대안학교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하지만 저에게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어요. 고등학교 야구부라는 소속 자체가 너무 행복했기 때문이었어요.


힘들게 성지고 야구부에 들어오게 됐는데, 첫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처음 들어갔을 때 다른 고등학교에서 오신 선배님들도 계셨고 다른 중학교에서 온 동기들도 있었는데 저는 그때 체격조건이 좋지 못했어요. 다들 키도 크고 몸집도 커서 ‘쉽지 않겠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죠. 아무리 인원이 적어도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팀 첫 창단부터 함께 하면서 훈련하는데 여러모로 환경이 열악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학교에 운동장이 없다 보니까 김포에 훈련장이 생기기 전에는 여러 야구장을 전전했죠. 몇 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서 풀만 무성한 곳에서 야구를 했는데 정말 열악했던 것 같아요. 그때 ‘여기서 야구를 해야 하나’ 하면서 의지가 좀 흐려질 때도 있었어요. 그때마다 동료들이 있어서 극복할 수 있었죠.


그래도 이후에는 김포에 연습 구장도 생기고 전용 버스도 생기고 지원이 많아진 것 같아요.

KBO리그에서 창단 팀 격려금이 나와 김포에 연습 구장이 생겨 전에 비해 환경이 많이 좋아졌죠. 그때부터는 저와의 싸움이 됐어요. 제가 당시에는 너무 말라서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몸을 키우는 것이 특히 힘들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본 적이 없는데, 처음 하니까 온몸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버텨야 된다는 생각 하나로 계속한 것 같아요. (정신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정신력은 성지고로 오면 다 강해질 수 있습니다. (웃음)


성지고에 들어오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했다고 들었어요. 지금과 3학년이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어떤 면에서 발전한 것 같아요?

최종적으로 3학년 때 기량이 가장 발전 했다고 생각해요. 1학년 때는 마운드에 올라가면 벌벌 떨기만 했죠. 2학년이 돼 긴장감이 덜했어요. 마운드에 올라가서 무작정 던졌어요. 그러다가 3학년 때 문영천 코치님을 만나면서 많이 발전한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게 코치님이 저를 딱 보자마자 간절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정말 간절하다고 했죠. 그래서 던지는 걸 보시더니 야구를 너무 모른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등판하면 힘으로만 던졌는데 완급조절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시고 투구 폼에 대해서도 정교하게 교정해주셨어요.


성지고에서 뛰면서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아무래도 첫 승?

첫 승 말고 좀 안 좋은 쪽이에요. 이 경기가 제 인생 터닝 포인트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경기인데 2016년에 서울디자인고등학교 전이었어요. (그 경기에서 팀은 이기지 않았나요?) 팀은 이겼지만, 경기 막바지 9회 1아웃에 올라가 제구가 엄청 흔들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후회가 되네요. 2아웃까지 잡고, 2스트라이크 2볼 상황이었거든요. 제가 위닝샷으로 직구를 던지려고 했는데 볼이 빠져서 백네트를 맞혀버렸죠. 그래서 백네트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별명까지 알려주고 인터뷰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렇죠. 신선하지 않나요? (웃음)



# 프로야구 선수 조선명

입단식을 마쳤어요. LG 선수들을 만났을 텐데 당시에 어땠나요?

처음에는 TV로만 보던 선배님들을 직접 만나니 꿈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눈앞에서 대단하신 분들을 뵈니 꼭 훌륭한 선수가 돼서 이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어요. 그리고 워낙 덩치도 크시고 해서 처음에는 무섭고 정신도 없었는데 생각보다 온화하시고 말도 걸어주셔서 긴장이 많이 풀렸어요.


혹시 등번호 배번은 받았나요? 받고 싶은 번호가 있다면 몇 번인가요?

지금은 육성 선수라 등번호가 107번인데 받고 싶은 번호는 17번이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17번이 어머니가 좋아하는 숫자이기도 하고, 말씀드렸던 기쿠치 선수가 17번이기도 해요. 류제국 선배님 등번호 11번도 물려받고 싶어요. 그런데 류제국 선배님은 왠지 영구결번이 되실 것 같아서 포기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야구 선수로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으신가요?

진짜 류제국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에이스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주고 믿음직한 선수! 10년 뒤에는 LG 하면 생각나는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에요.


2018시즌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가는 게 목표예요. 체격 조건이 좋지 못해 육성 선수로 빠졌기 때문에 고집을 부리고 싶지 않아요. 최우선이 건강이기 때문에 부상당하지 않고 오래 팀에 머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선명 선수에게 야구란?

음… 야구란 (한참 고민 뒤에) 애인이요. (대부분 인생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애인은 굉장히 신선하네요.) 아무래도 이제는 같이 있으면 좋고 헤어지면 슬플 것 같아서요. 더 이상 야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제가 그만큼 간절했고 힘들게 노력해서 왔기 때문이에요. (결혼까지 하고 싶은 애인인가요?) 이미 결혼했죠. 무덤까지 평생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의 말과 눈빛에는 절심함과 열정이 가득했다. 늦게 시작한 야구지만 부족함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시작은 미비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조선명에게 가장 어울리는 한마디가 아닐까.


                                                      더그아웃 매거진 82호(2월호) 표지

위 기사는 대단한미디어에서 발행하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8년 2월호(82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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