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강강술래와 윷놀이
[경향신문]

어려서 명절이나 잔치마다 강강술래였다. 손만 잡으면 강강술래 빙글빙글 돌고는 했다. “전라도 우수영은 우리 장군 대첩지라. 장군의 높은 공은 천수만대 빛날세라. 술래술래 강강술래. 술래소리 어디 갔나 때만 찾아 잘 돌아온다… 먼데 사람 듣기 좋고 곁에 사람 보기 좋게 강강술래. 높은 마당이 얕아나 지고 얕찬 마당은 짚어나 지게 욱신욱신 뛰어나보세… 은팔지는 팔에 걸고 약초 캐는 저 큰 아가. 니야 집이 너 어데냐. 내야 집은 전라도 땅. 검은 구름 방골 속에 열두우칸 지하 집에. 화초병풍 둘러치고 나귀에다 핑깅(풍경)달고. 응그랑쩡그랑 그 소리 듣고. 나알만 찾아 어서 오소. 강강술래.” 천국에 가면 성형수술 때문에 얼굴 원본대조를 하느라고 길게 줄을 서야 한단다. 돋보이려는 욕망들이 지어낸 그런 줄서기 말고, 둘러서서 다 같이 욱신욱신 뛰어나보는 강강술래의 여인들. 조선하늘 맑은 여인들이 빚어낸 잔치 풍경들. 가족이 또 이웃이 손을 잡고서 달과 별을 반기고 해와 구름과 동무했다. 우주가 내려앉은 태극기를 공중에 매달고서 우리는 누대를 그렇게 한 덩어리 한겨레였다.
얼음판을 지치는 쇼트트랙. 헤집고 시원하게 달리는 선수들을 구경한다. 하계 운동에 양궁이 세계 으뜸이라면 동계엔 빙상 쇼트트랙이다. 미장이가 다져놓은 듯 반듯한 얼음판을 숨차게 달려가는 선수들. 마치 윷놀이만 같아라. 윷놀이도 설날에 빠질 수 없지. 돼지와 개, 양, 소 그리고 말을 가리키는 도, 개, 걸, 윷, 모. 우리가 ‘동 났다’라고 할 때 쓰는 동. 한 동 두 동… 그렇게 네 동이 먼저 나면 이기는 놀이. 암만 빨리 달려도 뒷덜미를 붙잡히면 어김없이 꼴찌로 나앉아야 한다. 모가 나는 행운보다 말을 더 잘 써야 한다.
전 세계에 윷놀이는 오직 한국 사람만 하는 놀이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윷을 가르쳐주면 쉽게 따라서 한다. 어렵지 않은 놀이다. 사막에서 묵을 때 하도 심심해서 윷판을 만들어 날밤을 새웠다. 국민 혈세로 한식세계화 어쩌다가 쪽박을 찬 그런 코미디와는 격이 다른 문화전도사. 내가 그런 사람인데 알아주지 않으니 이렇게 글로 남겨보는 센스.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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