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칠레의 치토스엔 '체스터 치타'가 없다, 왜?

박용필 기자 2018. 2.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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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칠레에서 파는 치토스 봉지엔 ‘체스터 치타’가 없다. ‘체스터 치타’는 치토스 광고에서 치토스를 먹으려다 매번 실패하는 마스코트다. ‘m&m’ 초콜릿 포장도 다르다. 흰 장갑을 낀 ‘m&m맨’이 없다. 네슬레의 ‘운동 과잉 토끼’ 역시 마찬가지다. 2년 전부터 시행 중인 ‘비만 금지법’ 때문이다.

미국 뉴욕에서 2016년 9월21일 열린 공식 치토스 전시회에서 마스코트 ‘체스터 치타’가 전시돼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뉴욕타임스는 7일(현지시간) 칠레에서 벌어지는 ‘비만과의 전쟁’을 조명했다. 칠레는 2016년부터 ‘비만 금지법’을 시행 중이다. 아이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만화캐릭터를 포장에 사용할 수 없고, 같은 이유로 완구가 담긴 초콜릿 제품도 판매할 수 없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포테이토칩 등을 학교 근처에서 팔지 못한다. 내년부터는 오전 6시부터 밤 10시 사이 텔레비전, 라디오 등에서 관련 제품 광고가 전면 금지된다. 콜라 등의 탄산음료에는 18%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세금이 부과된다. 고체로 된 식품 100g당 열량은 275㎈, 소금은 400㎎, 설탕은 10g, 포화지방은 4g을 넘어서는 안된다. 어기면 ‘정지 표지판’ 모양의 거대한 검은색 경고 문구를 새겨야 한다.

이 법은 칠레의 슈퍼마켓 풍경을 바꿨다. 제품 포장에서 “건강한” “순수한” “미네랄과 비타민이 강화된” 등과 같은 문구를 볼 수 없다. 대신 “설탕과 지방이 많이 함유돼 있고, 칼로리가 높다”는 검정색 대형 경고 문구들이 종종 눈에 뛴다. 주부 패트리샤 산체는 “제품 표기를 눈여겨 본 적은 없지만 이 거대한 문구에는 눈이 갈 수밖에 없다”며 “내가 못 보면 아이가 본다”고 했다. 칠레 국립대학의 카밀라 코발란 교수는 “특히 아동들의 주의를 끄는 효과가 입증됐다”며 “문구를 본 아이들은 학교나 가정에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떠올린다”고 했다.

때문에 업체들은 경고 문구를 달지 않으려 제품 성분을 자발적으로 재조정한다. 네슬레는 자사 제품의 당도를 낮췄고, 맥도널드는 ‘해피밀’에 체리 토마토 등 과일을 추가했다. 코카콜라는 최근 18개월 사이 32가지의 저당분 음료를 새로 출시했다. 전체 제품의 65%에 해당한다. 칠레 식품업계에 따르면 법 시행 이후 성분이 재조정된 식품은 1500개가 넘는다. 칠레에서 시판 중인 식품의 20%에 달한다.

영국 런던 ‘m&m 월드’에서 2016년 12월14일 마스코트 복장을 한 도우미가 행사 참가자와 함께 서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뉴욕타임스는 칠레의 조치를 두고 ‘유례가 드문 승리’라고 평가했다. 미국, 인도,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다국적 기업들은 매번 압력을 행사해 규제를 무력화했다. 칠레에서도 의회 공청회장을 메운 로비스트들이 번번이 법안 의결을 무산시켰다. ‘비만 금지법’은 2012년 통과됐지만 세부 규칙은 2015년에서야 만들어졌다. 그러나 2016년 법은 결국 시행됐고, 칠레 소비자서비스국은 만화 캐릭터를 지우지 않고 버티던 네슬레와 켈로그에 소송을 제기했다. 뉴욕타임스는 비만으로 매년 400만명이 조기 사망하는 현실을 어떻게 바꿔야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승리”의 배경엔 세계 최고 수준의 비만율이 있다. 칠레 보건국에 따르면 칠레 6세 아동의 절반 이상, 성인의 3분의 2가 비만이나 과체중이다. 2016년 비만 치료에 든 의료비용은 약 8억달러(약 8712억원)로 전체 보건 예산의 2.4%에 달했다. 2030년에는 4%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범미주보건기구(PAHO)는 20~30년 전까지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칠레와 중남미 국가들의 비만율이 치솟게 한 주범으로 ‘초간편 가공식품 섭취’를 꼽은 바 있다. ‘정크 푸드’ 퇴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정치인, 과학자, 시민단체가 뭉쳤다. 의사 출신 기도 히라르디 상원의원은 “테러보다 설탕으로 죽는 사람이 더 많다”며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2014년 취임한 소아과 의사 출신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의 지지를 얻으면서 규제법안은 결국 기업들의 반발을 극복했다.

에콰도르나 브라질 등에서 ‘비만 금지법’을 벤치마킹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칠레에서의 앞날은 밝지 않다. 다음달 취임하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 당선인은 2011년 이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던 장본인이다. 2010년부터 2014년 사이에도 대통령을 지냈던 그는 당시 법안 제정 요구에 맞서 ‘식습관 개선 교육’과 ‘적절한 운동 장려’ 캠페인을 벌이자고 주장했다. 식품업체들이 규제법안의 대안으로 내세웠던 안이기도 하다. 피녜라 당선인은 당선 직후 “개선을 위해” 이 법을 다시 한번 살피겠다고 했다. 피녜라 차기 내각 상당수는 다국적 식품 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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