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C] 옛날 옛적 가계부엔?.."촌지나 선물 가득"
숫자 일기 가계부는 가치 있는 사료
일제 강제로 장려..물가 잡는 용도
1930년대 주부 본격 작성
촌지 장부 등 범죄 증거물이 되기도
[한겨레]
가계부의 역사가 긴 만큼 가계부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827)의 유품에는 가계부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가계부를 보면 기초적인 덧셈도 틀린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통해 우리는 그가 산수엔 소질이 없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실용품이나 물가 등 당시 실물경제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는 사료이기도 하다. 요즘에 와선 범죄 증거로도 사용된다. 비리 범죄의 결정적 증거는 뭐니 뭐니 해도 ‘장부’ 아니겠나. 이렇듯 숫자로 된 일기인 가계부는 그 자체가 메시지고 역사적 의미다. 옛 기사를 통해 가계부와 관련된 천태만상 사연을 살펴봤다.
일제, “가계부를 쓰라”
그날그날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가계부를 작성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일본은 조선인들에게 가계부 쓰는 것을 사실상 강요했다. 이유는 물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등 전쟁으로 인한 군수산업의 호황 그리고 갑작스러운 근대화는 당시 조선의 물가를 빠르게 상승시켰다.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조선총독부는 1922년 9월 13개 항목의 ‘절약 선전’을 발표했다. 가계지출을 줄여서라도 물가를 잡겠다는 속셈이었다.
말이 선전이지 사실상 강제나 마찬가지인 정책이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신문을 보면 “총독부가 물가조절을 위한 절약선전을 개시하고, 이를 각 도지사에게 통첩”했다고 쓰여 있다. 권유가 아닌 강압적인 정책이라는 게 드러난다.
총독부의 절약선전 항목을 보면 “의복은 유행을 좇지 말 것”, “양복은 기성품을 입을 것”, “조선복은 염색된 제품을 장려할 것”, “금주, 금연할 것”등 일상적인 가계지출을 억제하는 쪽으로 잡혀 있다. 실제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전쟁이었지만, 엉뚱하게 식민지 조선인을 탄압하는 용도로 변질된 것이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가계부 장려” 항목이다. 당시 조선에서 가계부를 쓰는 가정이 적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제는 가계부 작성을 통한 계획적 소비, 즉 소비 억제를 꾀한 것이다.
서구 근대화 상징
당시 가계부를 쓰는 조선 가정이 적었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1928년 <동아일보> 8월10일치엔 ‘가정주부들의 주의할 용돈’이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은 “서양 사람들이 활동사진(영화)이나 소설 속처럼 화려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서양 여자들처럼 살림을 영악하게 하는 이도 드물다”며 “타국 여자들은 물건을 현금으로 산 뒤 가계부를 만들어 한 푼이라도 쓰면 반드시 기입한다. 조선 가정에서 가계부를 얼마나 쓰고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질타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일찍 발달한 서구에서 쓰는 가계부가 일종의 근대화의 상징으로 대접받은 것이다.
이 칼럼에는 당시 조선인들의 소비 습관이 나와 있다. 칼럼은 “조선 부인들은 하인이나 다른 사람을 시켜서 물건을 구입해 물건을 잘 못 고르고 무책임하게 값을 비싸게 치른다”고 비판하고 있다.
가계는 주부가 책임진다?
가계부 작성 독려는 여성 권리의 향상이라는 뜻하지 않은 효과도 냈다. 가정에서 아무런 경제적 권리가 없던 여성(특히 며느리!)이 가계의 중심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일보> 1931년 3월10일치 ‘날마다 계속하여 가계부를 정리, 차차 취미와 실익을 얻는다’란 기사에선 “한 가정에선 식구가 몇이든 가사 회계를 주부가 책임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수입은 반드시 주부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승낙을 얻은 뒤 지출하고 그 결과를 주부에게 보고한다”며 가정 내 경제권을 여성이 잡아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여성의 가계 장악을 사회가 곱게만 본 것은 아니다. 당연히 반대 여론이 있었다. 기사는 “개인(가족 구성원)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 아니냐”는 반대 여론을 소개한 뒤 “개성이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의 견실한 번영을 위한 것”이라고 반론한다.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쓰는 현대 한국 가정 경제 구조가 정착된 건 가계부의 힘이었던 걸까?
촌지 가계부로 덜미
일제 강점기 근대화의 상징이었던 가계부는 현대에 와선 범죄 증거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가계부는 뇌물 액수 등을 기록하는 장부 역할을 했다.
1997년 6월 한 초등학교 교사의 촌지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 교사의 남편은 당시 한국교육방송공사(EBS) 간부였는데 다른 비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이 집을 압수수색하던 중 아내인 교사의 ‘촌지 가계부’를 발견한 것이다. 교묘하게 학생들의 생활기록부를 개조해 만든 것이었다.
1년여에 걸쳐 자기 반 학생 30여명을 번호순으로 정리해 부모한테서 받은 촌지를 낱낱이 기록한 사실상 뇌물 장부였다. 김아무개 20만원, 이아무개 15만원, 박아무개 상품권 10만원, 립스틱, 향수 등 받은 현금과 물품 기록을 자세하게 기록해 검찰도 놀랄 정도였다고.
가계부를 분석한 검찰 관계자는 “매월, 계절마다 촌지나 선물을 줬다. 빈칸인 학생이 없었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모든 학생의 부모로부터 촌지를 받았다는 얘기다. ‘촌지 가계부’ 작성자인 교사는 “친정아버지와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받은 조의금”이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부정한 돈 받은 사람들의 얼굴은 두껍기가 그지없다.
단순 사기에서 대형 대입 비리로
단순 사기가 가계부로 인해 대형 입시 비리로 바뀐 사건도 있다. 1993년 2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대입 비리가 터졌다. 돈을 받고 대학을 들어간다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자 시민들은 분노했다. 이 사건은 처음에 단순 사기로 묻힐 뻔했다.
한 서울 사립대 총장의 누나가 “딸을 입학시켜 주겠다”며 7000만원의 돈을 받은 게 사건의 발단이다. 돈을 건넨 부모는 기다렸지만, 2년이 지나도록 딸은 입학을 하지 못했다. 실망한 딸이 연필깎이 칼을 삼키는 등 자살 소동을 벌이자, 격분한 부모가 경찰에 투고를 하면서 내사가 시작됐다.
처음 경찰은 단순 사기 사건이라 판단했다. 입학을 못 시켰으니 사기라고 볼 정황은 충분했다. 하지만 수사를 진행하던 도중 발견된 총장 누나의 가계부에 “망우리 할아버지 3건 2억6000”이란 메모가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 됐다. 망우리 할아버지가 대입 브로커의 대부인 서아무개씨였던 것. 대리시험을 본 학생과 현직 고교 간부급 교사까지 연루된 이 사건은 59명이 구속되고, 76명이 수배되는 희대의 대입 부정 사건으로 남았다. 이쯤 되면 가계부가 사회정의를 위해 한몫했다고 볼 수 있지 않나.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한겨레>, <경향신문>, <동아일보> 참조
가계부
가정의 수입과 지출을 기록하는 장부. 제3자의 시각에서 가족 혹은 개인의 소비습관을 파악할 수 있어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기에 유용하다. 수입과 지출을 적은 뒤에는 분석과 반성,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에는 종이가계부뿐 아니라 스마트기기용 가계부 앱도 많다. 한국 가계부의 시초는 어사 박문수(1691~1756) 집안에서 쓴 <양입제출>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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