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대국' 길을 묻다] 지역 문화콘텐츠, 관광자원으로 가공.. 스토리텔링의 힘!

김라윤 2018. 2. 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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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일본 콘텐츠투어리즘 / 명탐정 코난·짱구·러브 라이브 등 유명 애니메이션 배경이 된 지자체 / 추리·보물찾기 형식 명소 여행 마련 / 지역 유명문인과 작품 관광상품화 / 즐겨 착용하던 옷 입어볼 수 있게 해 / 특정 타깃 만화 관광정보책 제작도
“‘짱구’(일본 만화 ‘짱구는 못 말려’의 주인공)도 이 지역의 유명인사입니다. 이 외에 ‘러브 라이브’ ‘아노하나’ 등 10여 편의 유명 애니메이션이 모두 사이타마현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2월13일 일본 사이타마현 청사에서 만난 관광과 직원 요시타케씨는 ‘역사적 명소가 많지 않아 관광객 유치 전략을 세우는 게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애니메이션 성지’인 사이타마를 찾는 일본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사이타마현 차원에서도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콘텐츠 관광’ 진흥에 애쓰고 있다.

현청 관광과로 들어가는 입구 주변에도 유명 애니메이션들의 포스터와 캐릭터 입간판이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현 당국은 관내 10여개 애니메이션 명소를 선정한 뒤 방문객들이 ‘입장 확인’ 도장을 받으며 관람을 즐길 수 있도록 ‘스탬프 랠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정해진 기간 동안 ‘명소 순례’를 모두 마치면 선착순으로 깜찍한 가방 등 기념품을 준다. 2013년부터는 지역의 전통축제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축제(아니타마사이)에 매년 300만엔(약 3000만원)가량의 예산을 지원하는 등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지역관광에 힘쓰고 있다.
◆쿨재팬(Cool Japan) 콘텐츠 투어리즘
이처럼 일본은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영화·게임·드라마·패션·음식 등 자국의 대중문화 콘텐츠를 앞세워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시간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고이즈미 정권은 문화콘텐츠 강국으로서 일본의 위상을 높이 평가하는 국제적 관심을 포착하고 관광·문화콘텐츠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쿨재팬(Cool Japan) 전략’을 세우고 공격적으로 투자했다.
승승장구하던 일본 경제가 거품이 꺼지며 극심한 침체를 겪은 1992~2002년만 보더라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줄곧 0.9% 수준에 머물렀지만 문화콘텐츠 분야는 달랐다. 같은 기간 일본의 문화상품 수출 총액은 5000억엔(약 5조232억원)에서 1조5000억엔(약 15조695억원)으로 3배 이상 확 늘었다. 이를 두고 미국의 저널리스트 더글러스 맥그레이는 2002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국민총매력지수(GNC: Gross National Cool)’라는 표현을 쓰며 일본의 문화적 힘을 언급했다. 이 표현은 일본의 새 관광 브랜드 슬로건(쿨재팬)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후 일본 정부는 경제산업성 제조산업국 안에 ‘쿨재팬실’을 별도로 설치하고, 지방정부와 관광협회 등 관광업계 관계자들이 관광산업 진흥에 대중문화 콘텐츠를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콘텐츠의 매력으로 관광객을 이끈다
일본의 지방자치단체마다 스토리텔링 요소를 접목한 관광 프로그램이 활발하다. 관광객들이 지역 내 명소 여행을 완결된 추리게임(명탐정 코난투어 시리즈 등)과 보물찾기 등 게임 형식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컨대 관광객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지역을 방문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만화 캐릭터들이 증강현실로 구현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서비스도 있다. 또 가나자와, 유와쿠 온천 등 반드시 특정 지역을 방문해야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들까지 제작돼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인 P.A.WORKS가 제작한 ‘코이타비’의 경우 작품의 배경지에서 앱을 다운받아 모바일을 이용해야만 시청할 수 있다. 이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찾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지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나 축제 등에 참여하면서 지역 주민들과도 소통하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자기 지역 출신의 유명 문인과 그의 작품을 관광상품에 접목한 곳들도 있다. ‘더럽혀져 버린 슬픔에 오늘도 바람마저 세차게 분다…’. 같은 달 21일 야마구치현 유다온천의 관광유람진흥센터에서 주문한 커피잔 받침에 새겨진 글귀다. 일본의 대문호인 나카하라 주야가 생전에 쓴 시 몇 구절과 함께 그려진 만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센터매니저 나오키씨는 “나카하라 주야의 시를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접하고 좋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기획한 종이받침인데 많은 방문객이 사랑해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 건물 2층에는 시인이 즐겨 착용하던 것과 동일한 디자인의 검정색 모자와 검정 외투가 걸려 관광객들이 입어볼 수 있도록 했다. 나오키씨는 “관광객들이 마치 시인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해보라는 취지에서 진행하는 이벤트”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문학관이나 박물관 등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일본 홋카이도의 삿포로 상공회의소가 출판사(에어다이브)에 의뢰해 삿포로의 맛집들을 20대 여성들의 직장생활, 연애담 등 일상 이야기에 녹여 소개한 만화책 표지. 에어다이브 제공
아예 관광 타깃층을 대상으로 지역의 매력을 어필하고 관광정보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만화책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삿포로 상공회의소가 전문 출판사에 의뢰해 제작한 ‘삿포로 여자들의 식사’가 대표적이다. 20∼30대 여성들이 삿포로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각종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그려낸 만화인데, 읽다 보면 삿포로의 맛있는 음식점 정보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스토리의 힘과 산학협력

문화콘텐츠를 지렛대로 한 관광상품 개발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내 중소도시의 명소를 알리는 효과가 있다. 또 유적지나 문화재가 많지 않아 관광지에서 소외된 지역에 고유의 매력을 입히는 역할도 톡톡히 한다. 특정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열성 팬이 된 사람들에게는 만화의 배경지역이 꼭 방문하고 싶을 만큼 각별한 의미를 지닌 공간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가 관광객들에게 지방 소도시에 대한 관심의 불씨를 지핀 사례는 P.A.WORKS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도야마현 난토시에 본사를 둔 이 회사가 제작한 ‘꽃이 피는 첫걸음’ ‘트루 티어즈’ 등은 작품 자체의 재미와 인기가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배경지역에 대한 관심까지 증폭시켜 수많은 애니메이션 팬과 관광객을 해당 지역으로 유인했다.

P.A.WORKS의 노부히로 기쿠치 전무는 “애니메이션 팬들이 만화 상영 기간에만 애니메이션을 즐기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다양한 이벤트와 체험을 통해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만나고 즐길 수 있기를 원했다”며 “그래서 시 당국과 협력해 캐릭터 증강현실 어플 개발에 대한 논의 등을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역사적으로 전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데도 애니메이션에서 중요한 장치로 사용돼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되곤 한다”며 “스토리에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유와쿠온천에서 매년 개최되는 ‘유와쿠 본보리 마쓰리’의 2017년 포스터. 일본의 유명 애니메이션 ‘꽃이 피는 첫걸음‘에 등장한 가상의 마쓰리가 지역 주민의 제안으로 2011년부터 매년 실제 행사로 열리고 있다. ©2012 Hanairo Committee 제공
실제 이시카와현 가나자와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꽃이 피는 첫걸음’에 소개된 가상의 축제(유와쿠 본보리 마쯔리)는 주민들의 제안에 따라 실제 지역 축제로 발전했다. 2011년 시작해 대표적인 지역 행사로 자리 잡은 이 축제가 열릴 때마다 팬은 물론 일반 관광객도 많이 참가한다. 기쿠치 전무는 “처음에 시작했을 때는 제작사가 적극 관여했으나 점점 거리를 두려 한다”며 “단순히 애니메이션 팬만을 위한 게 아니라 지역 사람들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지역 축제로 성장해 많은 사람이 즐기길 원한다”고 말했다. 현재 P.A.WORKS는 산하에 별도의 재단을 두고 난토시, 홋카이도 대학교의 관광고등센터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난토시 지역관광 발전을 위한 전략들을 논의하고 있다. 
‘일하는 소녀’를 테마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P.A.WORKS의 최신작 ‘사쿠라 퀘스트’는 테마 자체를 ‘지방관광 활성화 전략’에 맞췄다. 지역관광협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가상의 시골마을인 ‘마노야마’를 부흥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상을 생생하게 담은 작품이다.

기쿠치 전무는 “향후 P.A.WORKS와 국내외 연구자는 물론 지역 진흥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까지 포함한 학회를 만들 계획”이라며 “문화콘텐츠를 매개로 지역 관광과 경제 활성화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댈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현지 취재에 자문을 담당한 건국대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정수희 박사는 “우리나라도 국내 지역 관광의 차별화 등을 위해 우수한 대중문화 콘텐츠를 지역관광 전략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며 “아울러 한류와의 연계를 통해 새로운 국가단위 문화관광 전략 수립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이타마·도야마·야마구치=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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