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바흐·브람스 듣는 듯.. 휴식과 평온을 주는 '詩같은 풍경화'



■ 문광훈의 미학 에세이 - ⑬ 코로의 그림 세계
1864년作‘모르트퐁텐의 추억’
땅·물·사람·나무 등 경계 모호
희뿌연 분위기는 ‘몽상적 느낌’
자세히 보면 사물 세심한 묘사
인상주의·리얼리즘과 다른 길
바르비종 화파의 선구자 불려
세부 충실 속에는 ‘詩的 정감’
‘쿠브롱의 기억’ 등서도 확인
장사하다 26살에 예술가의 길
유럽각국 돌며 풍광 눈에 익혀
50·60대 때 풍경화 시적 전환
자연이 주는 실질적 느낌 반영
우리는 늘 현실에 붙박여 산다. 매일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하고 오늘 할 일을 계획해야 하며 일을 마친 저녁엔 무엇을 할 것인지, 자투리 시간에는 어떤 일을 해치워야 하는지 생각한다. 노동 후 휴식은 늘 부족하고, 있다고 해도 쫓기듯 맞이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황없는 현실에서도 가끔 이 현실을 넘어가는 무엇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날의 생계에 쫓기면서도 생계 너머의 어떤 것이 있고, 또 그런 무엇이 있기를 기원한다. 나와 네가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우리와 그들이 모욕과 수치(羞恥)를 야기함 없이 만나는 곳, 여하한 믿음이나 견해 차이를 넘어 교류할 수 있는 어떤 상호 이해의 공간이 있을까? 그런 평화로운 공존의 장소가 과연 지금 여기에 있을까? 그런 이상적 공간은 좀 더 적극적으로, 시 혹은 문학이나 예술에서 상상적으로 추구되는 종류의 것이 될 것이다. 니체가 말했듯이 더 나은 현실은 오직 ‘심미적으로만’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현실은 꿈의 공간이고 시의 공간이며 예술의 공간이다. 그것은 시적인 것의 세계다.
# 시적인 것의 공간
어떤 다른 가능성은 꿈꾸는 것이고 상상력이 지향하는 것이며, 시와 예술의 언어가 그리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것을 통칭해 ‘시적인 것의 가능성’이라고 해보자. 시적인 것이란 ‘언어 속에서 예술가의 영감과 직관을 통해 만들어지고 추구되며 표상되고 형상화되는 무엇’이라는 뜻이다. 시적인 것은, 그것이 언어 속에서 상상을 통해 그려진다는 점에서 추상적이다. 그런 점에서 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시가 근본적으로 비유고 암시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것은 대상을 직접 드러낼 수 없다. 그것은 모호하고 답답하며 때로는 난해할 수도 있고, 나아가 무책임하게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시에 현실적인 것이 ‘배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현실에는 사실적·경험적 내용뿐 아니라 현실을 넘어선 이념도 들어 있다. 이 이념은 적어도 지금 현실보다는 좀 더 진실되고 선한 무엇이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미(美)는 곧 선하고 유용한 것이었다. 미는 깊은 의미에서 진실이나 선과 분리되기 어렵다.
아름다움은 헤겔이 적었듯이, ‘이념의 감각적 현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심미적 가상(假象)’의 이중적 성격이다. 미는 한편으로 감각적·구체적·개별적이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신적·추상적·일반적이다. 이것은 개별적 대상을 그리는 가운데 개별적인 것의 보편적 의미를 탐색하는 문학에서 잘 드러나지만, 예술의 일반 장르에서도 다르지 않다. 예술은 근본적으로 가장 구체적인 것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을 드러낸다. 이때 시적인 것의 범주는, 예술이 추구하는 구체적 보편성이라는 이념이 된다. 모든 예술은 삶의 구체적 보편성을 추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여기의 현실을 시적인 것의 상상적 표현 속에서 좀 더 진실하고 선하며 아름다울 수 있도록 도모할 수 있다.
이 시적인 것을 우리는 나날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가? 우리가 기존 현실과 다른 삶의 시적 가능성을 떠올리며 회상할 뿐 아니라 때로는 실현시킬 수 있는가? 그 실현이 어렵다면, 실현에의 예감이라도 가질 수 있는가? 그렇게 하기란 점점 어려워 보인다. 시적인 것의 현실적 구현은 시를 읽는 것보다 훨씬 요원해 보인다. 이 글은 바로 시적인 것의 이 드물고 연약한,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작은 가능성을 코로(Jean-Baptiste Camille Corot·1796~1875)의 그림들을 통해 명상해본 것이다.
# 정취 있는 그림 - 자연 풍경화
나는 코로의 그림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귀하게 여기며, 나아가 흠모(欽慕)한다. 왜 그러한가? 거기에는 어떤 분위기-자연의 말 없는 모습 속에서도 어떤 정신과 기운이 느껴지고 그래서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드물고도 소중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날 때면,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마치 바흐와 브람스, 슈만을 듣듯이 그의 그림을 하나둘씩 들춰보곤 한다. 어떤 그림에는 잠시 머물지만 어떤 그림에는 오랫동안 시선을 주며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휴식과 평온을 얻는다.
코로의 풍경화는 흔히 ‘정취 있는 그림’ 혹은 ‘정취 있는 풍경화’로 불린다. 정취가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낸다면, 정취 있는 그림이란 이런 감정과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다. 그러니까 그의 풍경화는 외면적이라기보다 내면적이다. 하지만 이 내면성에서도 외면적 가시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풍경화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의 인물화도 상당히 내면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정취가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풍경화다. 코로의 풍경화는 자연의 풍경이면서 동시에 정취가 녹아 있는 풍경화, 내면적 풍경화다.
코로 특유의 정감 넘치는 풍경화는 초기에 그려진 이탈리아나 프랑스 풍경화에도 나타나지만 후기의 그림들, 이를테면 ‘큰 나무 두 그루가 있는 초원’(1865~1870)이나 ‘작은 새 둥지’(1873~1874) 혹은 ‘쿠브롱의 기억’(1872)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모르트퐁텐(Mortefontaine)의 추억’(1864)이라는 작품을 감상해 보자. 모르트퐁텐은 파리에서 북동쪽에 위치한 교외다.
# 형태의 해체와 구축
이 그림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화면의 좌우에 따로 떨어져 서 있다. 왼쪽 나무는 키가 작고 그 잎이 성글다. 폭풍우에 가지가 부러진 듯이 꼭대기는 잘려져 있다. 반면 오른쪽 나무는 더없이 풍성하다. 무수한 가지가 좌우로 드넓게 퍼져 있어 푸른 잎과 그늘의 규모는 화면의 거의 전부를 뒤덮을 정도다. 두 나무 건너편으로 잔잔한 호수가 펼쳐져 있고, 호수 너머에는 또 다른 숲과 산언저리가 어슴푸레하게 보인다. 한 여인이 왼쪽 나무 곁에 서서 열매를 따는지, 두 팔을 뻗고 있다. 아이들이 바닥에서 줍는 것은 꽃이나 그 열매인지도 모른다.
그림 전체에는 무엇인가 뿌옇게 서려 있다. 김인지 연기인지, 아니면 안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코로 특유의 이 희뿌연 분위기는 그의 그림에 어딘지 모르게 몽상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에서는 먼 곳뿐만 아니라 가까운 곳도 그 윤곽이 뚜렷하지 않다. 먼 곳과 가까운 곳이 뒤섞이듯이, 땅과 물, 사람과 나무 그리고 산 사이의 경계도 지워져 있다. 그러면서도 사물은, 자세히 보면 잎새든, 사람의 옷차림이든 몸짓이든 매우 세심하게 묘사돼 있다. 마찬가지로 나무의 잎새도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묘사에는 하얗게 칠해진 색점이 큰 역할을 하는 듯하다.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코로 그림에 묘사된 대상의 윤곽이 인상주의에서처럼 분해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것은 희미하고 어슴푸레한 분위기 속에서도 사물의 형태를 완전히 해체하기보다는 어느 정도까지 유지한다. 나무는 그지없이 풍성한 신록을 이루지만, 그럼에도 줄기 하나하나는 무수한 곁가지를 낳으면서 점차 가늘어진다. 그것은 거미줄처럼 정밀한 묘사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묘사는, 이를테면 동시대 화가였던 쿠르베(G. Courbet·1819~1877)의 리얼리즘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쿠르베는 말했다. “나는 내가 보는 것만 그린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천사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천사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전반적 사실주의적 경향에는 1850년을 전후로 한 서구의 급격한 현실 변화인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대중화 경향이 상응한다. 산업혁명과 도시화가 진전되면서 도시와 농촌 간의 빈부 격차가 생겨나고, 인간은 이윤을 지향하는 대규모 생산구조 아래 하나의 톱니바퀴로 전락하면서 대량실직과 빈곤이 발생한다. 노동자 계급이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변혁운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요구를 하는 것도,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1848)을 출간하는 것도 바로 이즈음이다. 발자크와 졸라는 이 처참한 현실을 소설로 드러냈다.
그러나 삶의 현실주의적 흐름에도 불구하고 시적이고 서정적이며 전원시적 경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날의 일상과 노동에 주목하면서도 이때의 일이 레핀(I. Repin)이나 멘첼(A. Menzel)의 그림에서처럼 반드시 고역이나 고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의 노동은 고통이면서 이 고통을 넘어선 기쁨이기도 하다. 노동은 마땅히 고역 이상의 기쁨이고 보람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삶의 노동이 ‘할 만하고 해야만 하는’ 일-고귀한 일과 하나로 되는 예를 우리는 보게 된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준 예가 아마도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1857)일 것이고, 넓게는 이른바 바르비종 화가의 작품들일 것이다. 코로는 이 바르비종 화파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의 그림은 회화사적 관점에서 보면 1850년대 이후의 현실주의적 흐름 속에 있지만, 그래서 기본적으로 대상의 묘사에 충실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세부 충실에는 어떤 꿈과 시적 정감이 어려 있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물리적 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어떤 기운-아우라가 담긴 듯한 느낌을 준다. 뉘앙스나 여운은 그런 아우라가 남긴 흔적이다.
# 빛과 색채와 공기의 놀이
코로는 유복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옷 장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 수업도 오랫동안 받았다. 그림이나 스케치는 처음엔 심심풀이 삼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평생의 과업이 된다. 그는 26세 무렵 장사 수업을 그만두고 예술가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29세 무렵 로마로 가 3년 동안 그림을 그린다.
코로만큼 유럽의 이곳저곳을 두루 다닌 화가는 드물 것이다. 그는 프랑스나 네덜란드 그리고 스위스를 걸어 다니며 자연의 풍광을 눈에 익혔다. 그의 마음속 은사는 프랑스의 위대한 풍경화 전통을 시작한 푸생(N. Poussin)과 로랭(C. Lorrain)이었다. 하지만 그의 풍경화가 처음부터 그렇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여행하며 자연연구에 골몰했지만 그의 풍경화는 50, 60대를 지나서야 나오기 시작한다. 그 이전까지 자연풍경은 주로 성서적·신화적 장면의 배경으로 자리했다. 그러다가 전환점이 된 것이 바로 이 작품 ‘모르트퐁텐의 추억’이었다. 이 그림을 다시 보자.
‘모르트퐁텐의 추억’에서 두 그루의 나무는 마치 바람이 부는 듯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건너편 호수는 잔잔하기 그지없다. 나무나 사람이나 이쪽의 땅이나 저쪽의 호수는 그윽하고 조용하면서 풍성하고도 느긋하다. 그리하여 더없이 시적이고 서정적이다. 그러나 ‘시적’이라고 할 때, 그 의미를 우리는 다시 한번 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때 시적인 것은 단순히 몽상가적으로 희미하거나 모호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코로의 그림에서 그것은 희미하고 어슴푸레하면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물의 윤곽을 잃지 않고, 그 형태를 유지한다는 뜻이다. 현실과 꿈, 구체와 초월 사이의 긴장 관계가 유지된다고나 할까? 여기에서 관건은 빛의 작용으로 인한 분위기의 창출이다. 바르비종 화파나 인상주의 화가들이 표현하고자 한 것도 빛의 이 미묘한 효과였다.
코로 풍경화의 시적 성격은 대상을 무화시키지 않는다. 사물의 윤곽은 나무와 그 잎의 정교한 세부에서 드러나듯이, 분명한 윤곽을 지니기 때문이다. 색채는 흩뿌린 듯이 번져 있지만, 선은 어느 정도 유지된다. 그리하여 선과 형태는 높은 수준에서 상호균형을 이룬다. 이 균형 속에서 사물의 전체-자연의 원형질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시적인 것은 이 전체로서의 근본형식을 겨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빛과 공기와 색채의 상호작용을 포착하려 애썼다. 선과 형태가 어울리는 가운데, 그래서 빛과 공기와 색채가 서로 노니는 가운데 자연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근본형식을 보인다. 코로의 풍경화는 부드러운 색채와 분명한 형태에 힘입어 자연의 충만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연의 객관적 현상에 침잠하지만, 대상을 해체시키기보다는 빛 속에서 그 낱낱의 세부를 새롭게 결합시킨다. 이렇게 하여 전혀 새로운 풍경화-‘내밀한 풍경화(paysage intime)’가 태어난다.
코로 풍경화는, 푸생이나 로랭이 보여줬듯이, 자연현상을 아카데미적으로 이상화한 것도 아니고, 또 그 후 낭만주의자들이 했듯이 더 멋지거나 신성하게 변용하지도 않았다. 그의 그림은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하고 관찰함으로써 얻은 실질적 느낌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그는 자연을 쉼 없이 연구했지만 이 연구보다 더 중시한 것은 관찰이었다. 이 관찰을 통해 그는 자연의 근본형식과 모티브를 발견하고자 애썼던 것이다. (문화일보 1월 16일자 22면 12 회 참조)
충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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