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아파도 서울에서".. 더 커지는 '의료시설 안전격차'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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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서울에서 아파야지, 여기서는 불 나면 꼼짝없이 당할까봐 걱정이 돼요."
지난달 발생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 이후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서울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긴 김모(83) 할아버지는 그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이후 서울과 지방 의료시설의 '안전 격차'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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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 불이 나 환자들이 로비에 대피해 있다. |
지난달 발생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 이후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서울 아들 집으로 거처를 옮긴 김모(83) 할아버지는 그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갈수록 기력이 쇠해져 병원을 자주 찾는 데다 지난해 두 달가량 요양병원에 머문 경험도 있는 김 할아버지에게 병원 화재는 남의 일이 아니다. 더구나 밀양 세종병원이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결국 그는 언제라도 규모가 크고 시설이 잘 정비된 대형병원을 갈 수 있는 서울행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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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대응 모범답안 지난 3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 푸드코트에서 불이 나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모포로 몸을 보호하고 장례식장 로비 등에 대피해 있다 연합뉴스 |
병원 내 화재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밀양 세종병원이 100여명의 사상자를 낸 것과 달리 신촌 세브란스 병원의 경우 다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이 300여명이 안전하게 대피했다. 자칫 대형참사로 번질 수 있던 이번 화재가 별탈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던 데에는 신속한 신고와 소방시설 작동, 화재 매뉴얼에 따른 대응 등이 제대로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먼저 밀양 세종병원 참사는 병원 관계자가 최초 화재를 인지하고도 자체적으로 불을 끄려 시도하면서 신고 시간이 지체된 반면에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화재 발생 직후 바로 신고를 했다. 또 화재와 거의 동시에 스프링클러가 가동돼 초기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방화셔터 역시 건물 내 구획별로 설치돼 있었고 제시간에 차단 기능이 작동돼 사망자 대부분이 유독가스 질식으로 숨진 밀양 세종병원과 대비됐다.
여기에 병원 직원과 의료진 등은 평소 익혔던 화재 대응 매뉴얼에 따라 환자 및 방문객을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이용객 대부분이 환자인 병원이 화재 등에 대응하는 ‘모범답안’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화재 안전시설이나 정기적인 소방훈련 등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의료기관이 허다한 지방 거주자들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처지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를 보면 의무 인증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중소병원) 중 인증평가를 신청한 비율은 10곳 중 2곳에도 미치지 않는 17.7%(406개)에 불과했다. 밀양 세종병원도 미인증 기관이었다. 중소병원을 주로 이용해야 하는 지역 거주자들은 이 때문에 “생명은 어디에서든 모두 소중한 것 아니냐”며 박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의료기관에 대한 소방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동시에 부족한 소방력 확충 등 제반 상황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진주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화재가 밀양이나 제천 참사 때와는 달리 스프링클러 등 시설이 제때 가동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지방 소도시 병원 역시 화재 안전시설을 제대로 갖추도록 하는 것은 물론 소방당국의 지속적인 점검과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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