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한 수'..트럼프에 평창올림픽 계기 북미대화 타진
빅터 차 내정 철회로 제기된 '대북전략 엇박자' 관측 불식
트럼프 대통령 가족 평창 방문도 논의..靑 "여전히 협의 중"
(서울=연합뉴스) 박경준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미 간 대화 채널 복원이라는 구상을 이행하는 데 본격적으로 착수한 모습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무르익은 남북 해빙 무드와 대화 분위기를 북미 대화로 이어지게 해 북핵 문제 해결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에 시동을 건 것이다.
문 대통령은 2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30분간 전화 통화를 하고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협력하자는 뜻을 다시금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이번 통화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 정책의 중요한 전기가 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 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며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은 올림픽 기간에 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모이는 만큼 이를 대화의 모멘텀으로 삼아달라는 적극적인 주문일 뿐만 아니라 북미대화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발판을 까는 중요한 '한 수'를 둔 것으로도 읽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3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과 미국의 최고위급 인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올림픽을 계기로 양측이 만난다면 북미 간 대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긴장이 한껏 고조된 북미 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다자외교 무대에서 북미 대화를 고려해 보라는 메시지를 행간에 담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잇따른 북한의 핵실험·미사일 도발과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으로 북미 관계가 거의 최악 수준으로 치달은 상황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가 만난다면 그 자체만으로 북핵 문제 해결의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조성된 남북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해빙 무드'를 반드시 살리고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를 역설해 왔다.
지난달 2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현재의 대화 분위기가 올림픽 시기에만 그친다면 그 후 우리가 겪을 외교안보상 어려움은 가늠하기 어렵고 다시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회의에서 '기적처럼 만들어낸 대화의 기회'라는 표현까지 썼던 점은 문 대통령이 이번 올림픽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올림픽 기간에는 평화 모드가 유지되지만, 그 뒤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는가'라는 취지로 되물었다"며 "문 대통령은 남북 관계도 개선되고 북한도 전례 없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문 대통령의 제안을 수용할지 주목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내는 데 협력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한 것은 긍정적인 대목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 4주 전만 해도 많은 국가가 평창올림픽 참가를 두려워하고 참가 취소를 검토했지만, 지금은 아무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며 "올림픽의 성공과 안전을 기원하고 100% 한국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전화 통화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올림픽에 가족을 보내는 문제 역시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백악관이 최근 공개한 올림픽 고위급 대표단 명단에 가족이 빠졌지만, 양국이 여전히 이를 협의 중이라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번 통화는 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공조 의지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최근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 철회를 둘러싸고 일각에서 제기된 한미 간 엇박자 우려를 잠재우는 데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빅터 차가 백악관의 북한 선제타격 구상인 '코피전략'에 반대해 '낙마'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미 정상이 '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대북 정책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에 관한 우려도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가 2일(현지시간) '코피전략'이라는 단어에 대해 "백악관과 행정부 어디에서도 이 말을 쓰지 않는다"고 단언하면서 빅터 차 낙마와 관련해 "정책이 관건이 아니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최대한의 대북 압박을 강조했다는 점은 이번 올림픽에서 북미 대화가 성사되는 데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 앞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통화하면서 대북 압박 기조를 재확인함과 동시에 한미일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한 것도 이런 전망과 맥이 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청와대의 발표에는 빠져 있었지만, 백악관은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발표하면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인권 상황 개선의 중요성을 논의하고 이 문제의 해결에 협력하는 데 서로의 책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담긴 북한 인권 관련 내용을 높게 평가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동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한미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는 이어가면서도 그동안 견지해 온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북 대화와 제재·압박 병행'이라는 원칙의 뼈대는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대북 제재·압박 원칙과 더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문제 역시 양국이 기존의 입장 차이를 확인한 대목이다.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간 무역불균형 문제가 해소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고 문 대통령은 현재 진행중인 한미 FTA 협상에 대해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치른다는 의지와는 별개로 한국과의 무역에서 실리를 놓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성실히 임하겠다'는 기존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수준의 답변을 내놓은 문 대통령은 현재는 남북·북미대화가 우선 현안이라는 판단 아래 시간을 두고 FTA 재협상을 풀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보인다.
kj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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